레이어 조각의 3도 인쇄처럼, 부조를 겹쳐 드러내 보인 ‘얼굴의 내면성’
레이어 조각의 3도 인쇄처럼, 부조를 겹쳐 드러내 보인 ‘얼굴의 내면성’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4.05.10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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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색으로 뛰어놀든 표정 속 내면은 변치 않는 얼굴의 본질 이야기해”
김병진 조각가/단국대 교수
김병진 조각가/단국대 교수

지난 4월 세지화랑에서 개최된 김병진 조각가의 개인전 <MAKING FACES>는, 시적 서사의 함축성을 유지하되 평면 위에서 오브제 조각들을 색색의 레이어로 표현하는 그의 변화를 주목할 만하다. 금속세공과 컬러링에 모두 능숙한 그는 색과 선, 조각과 회화의 벽을 허물며 오픈모빌북처럼 환조화 된 부조, 한 호흡으로 조합한 얼굴들을 유니크한 일러스트 사진전처럼 구현해 낸 것이다. 회화조형이라는 틀을 유지하며 색, 형상, 그림자라는 얼굴의 3요소를 마치 3도 인쇄처럼 레이어링하는 평면과 입체조각을 통해, 존재의 일그러짐 속에서도 변치 않는 본질에 변화무쌍하게 접근하는 이번 시도는 작가의 눈으로 본, 곡절 많고도 유쾌한 ‘얼굴의 내면성’ 이야기이기도 하다. 

착시의 탈을 쓴 가면, 이제 저 곡선레이어 모음을 ‘얼굴’이라 부르자

김병진 조각가는 50대에 접어들어 나이를 먹을 때마다 달라지는 의미, 이따금 보이고 읽을 수 있게 된 것들을 향해 “과연 진짜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비로소 얼굴에서 내면성이라는 요소를 바라보게 되었다고 한다. “예술은 강요가 아닌 느낌이다”라는 지론으로 조각회화와 회화조각을 자유로이 콜라보하고, 순수미술과 일러스트, 공공설치미술의 공존도 이뤄낸 그였지만, 감정을 소리로 표현하는 동물과 달리 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내거나 숨길 수 있는 인간의 얼굴 이면은 꽤 난해한 주제다. 따라서 김 조각가는 식물을 3가지 레이어 이미지로 표현하던 기존 작업의 연장선이자, 나이가 들면서 느낄 수 있는 관점의 변화를 가장 잘 요약하는 얼굴을 나타내고자 조각의 레이어들에 각각 색을 입혔다. 

그래서 LOVE라는 글자 조각을 무수히 중첩시켜 온갖 사물을 만들어낸 ‘스틸하트’ 시리즈가 동물, 하트, 풍선, 도자 등의 형상이자 글자의 새로이 조합된 통합체(syntagme)를 보여주었다면, 이번 작품들은 얼굴의 이면을 보여주기 위한 레이어들의 계열체(paradigme) 모음이라는 차이가 있다. 이리하여 중첩과 모음의 성향인 그의 회화조형은 얼굴을 나타낼 때 글자 대신에 얼굴을 구성하는 이목구비의 곡선형상들을 먼저 나눈 후 레이어링해, 색을 3도 인쇄의 원리로 겹겹이 배열한 도해(圖解) 혹은 환조가 된 부조 상태다. 그래서 과거에는 거미줄 같은 형상에 가까이 가면 자잘한 LOVE 글자의 투조 조합을 볼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저 3도 인쇄 같은 금속의 색, 형상, 그림을 멀리서 보면 곡선 레이어들이 비로소 어디서 본 듯 익숙한 사람의 이목구비 요소들과 표정으로 느껴진다는 차이가 있다. 레이어를 수단이자 목적으로 해석한 이 새로움을 통해 김 조각가는 알 수 없는 감정을 ‘가면’으로 상징하는 클리셰의 식상함도 가볍게 뛰어 넘은 동시에, 낱개는 조합이 되어야 의미를 담는다는 언어구조적 이치를 기호학 대신 조각미술이라는 장르에서도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표정’은 가면도 뚫는 내면성의 상징, 표정이 중첩되면 얼굴이 된다

얼굴의 이면성을 이렇게 표현한 그의 시도는 해석방식도 다양하다. 김주옥 평론가는 연관성 없는 특정 패턴에서 표정과 형상을 읽어 내는 파레이돌리아(변상증)현상 및 “알 수 없음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잠재우는 위안행위”로 보기도 했다. 그에게는 같은 속성을 다른 내용과 이미지로 표현하되, 명확한 형상이지만 한 번에 간파하기 어려운 숨은그림찾기 같은 아이러니와 유쾌한 상징성을 간결하고도 직관적으로 요약하는 기질이 있다. 이는 과거 각각 불교, 기독교, 천주교인 그의 가족구성원이 부친의 제사를 모시며 생긴 에피소드에서 착안해 십자가로 불상을 만든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쥘 르나르가 긴 사물을 2단어로, 헤밍웨이가 큰 슬픔을 4단어로 요약한 시처럼, 김 조각가 또한 필연적으로 뒷면을 갖게 되어 역설적으로 상징성이 흔해지는 입체 대신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요소를 상징할 수 있는 평면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평면의 레이어링, 중첩을 이용해 부조 하나하나를 잇고 환조형태로 만들어 입체의 한계를 극복한 그의 작품에는 의외성도 여전하다. 

아크릴과 금속, 그림과 조각의 교집합인 그의 곡선형태 금속판들은 차량도색페인팅기법으로 유광/무광처리했으며, 전시장에 들어서면 청색과 푸른색 조합처럼 시인성이 또렷한 컬러톤은 조각전시장에 많은 무채색톤을 원색으로 치우고 마치 메트로폴리탄의 화려한 얼굴사진전에 온 느낌도 준다. 사실 그의 ‘레이어링’의 통시론적 변화와 시대정신은 이런 공간성 외에 지역 특성을 스토리텔링하던 공간설치미술에서도 잘 다져져 왔었다. 전경련의 존재감을 수천 개 전구로 나타내거나, 과거 갯벌이었던 개포동의 상징물로 조개를 고르고, 하남의 과거가 고니도래지였다는 그의 메시지처럼 다양한 표정으로 가면을 뚫는 이번의 주제, 얼굴의 내면성은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우리의 생애주기별 하루와 일상이 모여 10년 단위로 표정주름이 되는 것을 보여주는 그의 반복은, 나이가 들면 얼굴값을 해야 한다는 어른의 무게와 창작자로서의 책임감, 교육자이기도 한 작가의 모습과 다시 중첩된다. 

생애 ‘반백년’을 맞이했지만 의도에 얽매이지 않고자 하는 작품들 덕분에, 전시장에서 끝나지 않고 SNS의 프로필처럼 시크한 테마에도 종종 인용되는 그의 바람은 소박하고 긍정적이다. 그저 자신의 작품을 책임지고, 창작을 잇는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서로 다른 요소를 존중하고, 누구나 그의 작품 앞에서 도슨트가 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작가의 언어를 계속 남기기를 바란다. 전시 중에도 내년 2월 경 개인전을 준비하고, 수차례 미국에서의 대형미술프로젝트를 경험한 그는, 조만간 워싱턴 D.C의 새로운 공공미술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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