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고, 해야 하기에, 자연스럽게 행할 뿐입니다”
“할 수 있고, 해야 하기에, 자연스럽게 행할 뿐입니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1.12.15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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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수안사&보현사 묘담 주지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수안사&보현사 묘담 주지스님

불교에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사물의 현상이란 시기가 되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란 의미다. 이는 반대로,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노력하고 신경을 쏟아도 이뤄지지 않으니 무리하여 집착하고 괴로워하지 말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수안사와 보현사에 몸담고 있는 묘담스님에게 있어 ‘삶’이란 그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릴 적 불교를 만나 1981년 출가하고 이후 40년을 불자로 살아온 시간이, 35년 전 동네 아이들에게 빵을 나눠주고 싶었던 마음과 지금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려는 마음이,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과 지구를 보듬고 아끼고자 하는 그 마음들이, 묘담 스님에게는 더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난 하나하나의 ‘인연(因緣)’인 것이다.

따스함이 담긴 자비애빵, 실천하는 나눔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다
묘담 스님은 21살의 나이에 출가해, 어느덧 61세가 된 지난 40년의 세월을 근성 큰스님과 함께 불자로서 살아왔다. 근성 큰스님께서는 1957년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보현사를 창건하고 일생을 포교에 전념하신 분으로, 정직하고 청정하게 법당을 일구고 여러 불자들을 보살피는 데에 평생을 써왔다. 비록 근성 큰스님께서는 뜻하지 않은 건강악화로 8년여 간의 투병 끝에 지난해 입적하셨지만, 그 뜻은 묘담스님에게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묘담스님은 벌써 1년 반째 매일 아침 빵을 만들어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고 있다. ‘자비애빵’이라고도 불리는 이 빵들은 지역사회 내 장애인복지관을 비롯 서울역 노숙자 급식, 동사무소 및 병원 등 다양한 곳에 전해져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이 되고 있다. 묘담스님은 “지난해 노스님께서 입적하시고, 코로나로 인해 절에 사람들의 발길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무언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자연스레 저와 인연이 있었던 ‘빵’으로 연결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묘담스님과 근성 큰스님은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달동네라는 미아동에 무허가 판잣집 수준의 작은 사찰을 지었더랬다. 어려운 시기, 어려운 동네였기에 부모가 모두 일을 나가 집에 혼자 남겨진 아이들이 사찰을 매일 같이 찾아왔었고, 아이들에게 줄 먹거리가 가장 큰 고민이었던 묘담스님은 무작정 마을 어귀에 있던 빵집을 찾아가 제빵 기술을 가르쳐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었다고 한다. 늘상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부침개밖에 해줄 수 없던 것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간의 사정을 들은 빵집 사장은 도너츠과 꽈배기처럼 간단한 제빵 기술을 묘담스님께 알려주었고, 직접 빵 만들 재료를 사다주거나, 매일 남는 빵을 두 바구니 가득 챙겨줄 정도로 도움을 아끼지 않았었다고 한다.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던 열악한 환경이 우려된다는 큰스님의 만류에 빵 만들기는 오래 이어가지 못했으나, 당시의 경험은 묘담스님에게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자리를 옮기게 된 후에는 유명 브랜드에서 제공한 도너츠를 받아다가 서울역 노숙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했다고 한다. 밤새 비닐봉지에 담아 분류하고, 여름에는 더위에 설탕이 녹을까, 겨울에는 빵이 얼어 딱딱해질까 노심초사하며 했던 그 모든 일들이 묘담스님에게는 불자로서 더없이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였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절, 자연을 위해 인간마저도 자리를 비켜주는 절
자비애빵 만들기에는 스님 뿐 아니라 봉사에 동참하고자 찾아오는 많은 이들, 그리고 관내 중·고등학생들도 참여하고 있다. 묘담스님은 “빵봉사에는 대행보현회의 도움이 큽니다. 40여 분 정도로 구성된 대행보현회는 매달 1만 원가량의 후원과 함께 빵 반죽과 나눔 활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빵 만들기를 통해 제빵 기술을 배우거나 연습하기도 하고, 나눔에 대한 보람과 기쁨을 알아가기도 합니다. 아직 한참 어리기만 한 아이들이 제 손으로 빵을 만들며 기뻐하고, 그 즐거움을 친구들과 함께 나누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한편으론 신기하기도, 다른 한편으론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만드는 빵의 갯수는 매달 2,500개가량. 무려 20곳에 나누어야 하는 양이기에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을 수도 있겠지만, 묘담스님은 그저 그것대로 좋은 것이라 여기고 있다. 부족하다하여 욕심내 양을 늘리려 하지 않고, 많다하여 힘을 빼고 게으름을 부리지도 않는. 그저 매 순간 충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만큼 만들어내는 빵 하나하나가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온기를 전하게 되리란 생각에서다. 묘담스님은 “제게 있어 출가의 의미는 불교를 배우고 공부하겠다는 것보다는, 불교에서 전하는 부처님의 말씀을 몸으로 실천하고, 그대로 살아보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무언가 거창하고 큰 뜻이라기보다는, 그저 공부하는 것 대신에 일하는 것을 택했으니, 그 일 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빵을 만든다는 것도 이와 같았습니다. 무언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필요한 일이며, 해야 할 일이기에 자연스럽게 행할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묘담스님이 주로 머무는 수안사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라면, 포천에 자리한 보현사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묘담스님이 1년 여 전 무인사찰로 운영하겠다고 밝힌 뒤 지금까지 그 기조가 지되고 있다. 묘담스님은 “사람들은 종종 자연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잊곤 합니다. 제가 어릴 적 귀감으로 삼았던 효봉스님의 말씀 중에는 ‘흐르는 개울물도 아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 뿐 아니라,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 토종 풀과 나무,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크고 작은 야생동물들까지도. 자연이 사라지면 인간도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자연에게 작으나마 휴식의 공간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보현사를 무인사찰로 바꾸었습니다. 지구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고, 회복과 생존을 생각하는 분들이 오실 수 있는 곳입니다. 자연을 위한 것 말고는, 인간에게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을 덜어냈습니다. 화장실도 재래식이고, 물을 쓸 때에도 대부분 빗물을 받아쓰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는 절이지만, 나무와 풀, 자연의 동식물을 위해서 인간마저도 자리를 비켜주는 절이 바로 보현사입니다”라고 말했다.
묘담스님은 억지로 무언가를 바꾸려하거나,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자연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자연을 알려주고, 지구의 생태와 자연, 환경을 보존하는 사찰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그는 빵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빵을 주고, 일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일을 주고, 마음의 안정이나 치유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따뜻한 손과 온기를 내밀어 주는 것이 묘담스님의 하루 일과이다. 불교란 이처럼 자연스럽게 인간 본연으로 다가가는 일이다. 억지로 행하려 하거나 욕심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면서 스스로의 방향을 찾고 길을 나아가는 것. 묘담스님의 지난 40년이, 늘 변함없는 그 하루하루가 더 많은 이들에게 편안한 위안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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