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양복과 함께 해온 명장 전병원의 외길인생
50년 양복과 함께 해온 명장 전병원의 외길인생
  • 임승민 기자
  • 승인 2021.02.15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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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명장 전병원양복점 전병원 대표
대한민국명장 전병원양복점 전병원 대표

열여섯, 양복에 대한 열정이 이끈 양복인생 50년
언제나 우리의 시대를 대표하는 얼굴들이 있다. 그들은 꼭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서도 아니고, 위대한 업적을 남겨서도 아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가야할 길을 묵묵히 걷는 사람. 자신의 업적을 소신껏 묵묵히 쌓는 사람. 우리는 그들을 장인이라 부른다. 그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이 장인정신은 결국 세월이 지나면 그들은 위대한 얼굴이 된다. 
50년 가까운 긴 세월을 단 한치 흔들림 없이 오직 한 가지 이에 몰두해 온 자체만으로 특별한 사람이 있다. 바로 호남지역 최초 대한민국 패션디자인부문 명장 전병원양복점 전병원 대표다. 그 역시 오직 양복을 만드는 일에 5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1972년 열여섯 나이에 어머니의 권유로 충장로에 있는 대성양복점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그의 양복장이 인생이 시작됐다. 
“대부분 작업복을 입고 먼지를 뒤집어쓰며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양복점만 쫙 빼입은 양복에 멋스러운 넥타이까지 매고 근무하는 모습을 어머니가 매력적으로 느끼셨던 거 같아요.”
그러나 처음부터 양복일이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다시 공부해 고교에 진학할 생각뿐이었다. 그랬던 그가 우연한 계기로 양복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다. 
“입사한 해 9월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세계기능올림픽 양복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세계기능올림픽에서 수상을 하게 되면 지역사회의 큰 자랑이었습니다. 순간 ‘아! 내가 가야 할 길이다’라는 느낌이 들었고 그 장면은 나를 명장으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죠.”
그렇게 본격적으로 양복장이 인생을 시작한 전 대표. ‘호남 최고 양복기술자’라는 목표를 정한 그는 대성양복점에서 바지 봉제를 배운 후 태창양복점에서 슈트 봉제를 배웠다. 
“해방 이후 지역 대표 양복 최고 기술자인 대흥양복점의 김백운 대표로부터 런던양복점 정병모 대표가 기술을 전수받았고, 그의 수제자인 태화양복점의 신영남 재단사가 저에게 양복기술의 정수를 전수했어요. 저는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좋을 기술을 배울 수 있었죠.” 
전 대표의 양복장이로서의 열정은 대단했다. 쉴 때면 광주를 벗어나 서울,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양복기술로 정평이 난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가 기술을 배우며 부족함을 채워나갔다. 
이렇게 양복기술자로서 자신의 역량을 키워가던 전 대표는 1987년 자신의 멘토였던 태화양복점이 문을 닫자 자신의 이름을 딴 ‘전병원양복점’을 열고 지금에 이른다. 
 
호남지역 최초 대한민국 패션디자인부문 명장 ‘전병원’
그의 양복에 대한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양복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쉼 없이 달려온 그는 지난 1993년 자비로 ‘한국양복변천100년사’ 전시를 광주, 서울, 부산 등을 돌며 7차례에 걸쳐 개최했다. 어디 그뿐이랴. 자신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기술을 전수했다. 1995년부터는 광주와 목표교도소를 다니며 제소자들의 사회정착을 위해 직업개발훈련에도 매진했다.
그의 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바로 ‘대한민국 명장’의 꿈이었고, 2014년 12년간 7차례의 탈락의 아픔을 겪고 꿈에 그리던 ‘명장’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호남지역 최초 대한민국 패션디자인부문 명장으로 말이다. 
“당연히 될 거라 생각했죠. 나름대로 맞춤 양복 분야에서 40년 이상 종사해오면서 스스로 최고의 숙련기술인이라 자부했는데 명장의 자리는 쉽게 오를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어요.”
명장심사는 서류, 현장실사, 면접 등 무려 5개월 동안 엄격하고 섬세한 과정을 거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배출된 양복부문 명장은 12명 정도이며 현재 활동하고 있는 명장은 7명 정도로 명장에 오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덧 환갑을 훌쩍 넘긴 전 명장. 그는 한복, 양복, 귀금속, 안경 등 많은 대가들의 삶이 녹아 있는,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충장로에서 100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일까. 내 몸에 딱 맞는, 나만을 위한 딱 한 벌의 양복. 명장이 만드는 이 한 벌의 양복에는 한 땀 한 땀 열정과 정, 그리고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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