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깬 아방가르드 미술박물관에서 과학을 재해석해 예술로 창조하다
고정관념 깬 아방가르드 미술박물관에서 과학을 재해석해 예술로 창조하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19.03.15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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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프로젝트의 전반부는 노랑다리미술관이며, 후반부는 위대한 과학자들을 위한 헌사이다”
노랑다리미술관 손일광 관장 / 인견사랑 대표 / 아티스트
노랑다리미술관 손일광 관장 / 인견사랑 대표 / 아티스트

[월간인터뷰] 정재헌 기자 =  1970년대부터 미술, 의상, 엔터테이너 분야를 아우르는 대한민국 아방가르드 예술의 주역으로 활약해온 패션 인플루언서의 원조 손일광은 개인부티크 ‘A.G의상실’의 창립자, `88올림픽 기념 디자인, 한국 최초의 가두패션쇼 기획자에 이어 2016년 오픈한 자연 속 전위예술박물관인 노랑다리미술관의 관장 직함을 자신의 이력에 추가했다. 그의 창조열망을 담은 ‘20년 프로젝트’의 전반전을 실행하고자, 국내 행위예술과 설치미술의 대표적인 원조 ‘제4집단’ 시절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평생의 예술혼을 담아 개관한 노랑다리미술관의 손 관장은, 이제 위대한 과학자들을 향한 헌사에 남은 7년을 바칠 예정이라고 한다. 예술가의 시대정신과 창조성으로 문화예술계의 첨단 유행을 선도했던 손 관장에게, 지구와 우주의 비밀을 밝혀 문명을 발전시킨 과학자들은 호기심의 대상을 넘어 새로운 감성을 촉발시키는 선구자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위예술가의 첫 번째 꿈, 토털 예술 휴양 공간 노랑다리미술관

청평호수 인근 경춘로, 북한강변 호명산은 가평의 사계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장소다. 이 매력적인 수목원 속에 자리 잡은 노랑다리미술관은 50여 년 간 한국 전위예술에 큰 획을 그은 아티스트 손일광이 2016년 개관한 자연 속 미술관이자 카페 겸 지역의 명소로서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팔순의 손 관장은 1970년대 군사정권의 단속 속에서도 전위예술가들의 모임인 ‘제4집단’의 리더이자 후원자로 활동하며, 다양성과 창의성이 필수불가결한 미술과 음악, 패션을 비롯한 문화 콘텐츠를 꽃피운 패션 디자이너이자 기획자이다.

국제복장학원에서 최경자 선생을 사사한 이래 천재 디자이너라 불리며 당대의 앙드레 김과 함께 독보적인 입지를 세운 손 관장은, 시대를 앞서간 감각으로 유능한 아티스트들을 발굴하고 ‘이목회’를 창립해 한국 패셔니스타들의 엔터테인먼트 진출을 이끈 바 있다. 또한 손 관장은 남성디자이너 최초의 패션그룹 MD 출신으로, 한국의 전통 풍기인견을 아우터로 디자인해 하이패션 분야와 접목시킨 인견사랑의 대표로서 품격 있는 시스루룩의 한국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손 관장은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후, 패션 분야 외에도 미술 분야에서 후손들을 위한 예술의 보고(寶庫)를 만드는 것이 평생의 숙원사업이라고 전한 바 있었는데, 그는 이를 ‘20년 프로젝트’라 이름 지었다. 손 관장의 노고가 깃든 노랑다리미술관은 지형지물을 최대한 활용한 정원과 건물 내 실내장식과 예술품·수집품들과의 조화, 그리고 설치미술로 작은 공원을 만드는 감각이 살아 있기에 의상디자인 외에도 토털 전위예술을 표방한 손 관장의 평생의 꿈 중 전반전을 성공적으로 장식하고 있다. 이렇듯 손 관장이 평생을 모은 예술품들과 설치미술들이 사계의 매력을 담은 자연 속에 공원처럼 전시된 노랑다리미술관은 근현대의 추억이 담긴 생활용품들에 아이디어를 담아 재탄생시킨 작품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예술계의 역사박물관 겸 미술관으로 불린다.

 

천재들에게 영향을 준 위대한 과학자들에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꿈을 헌사하다

산중턱의 매력적인 풍광을 즐기며 차 한 잔과 산책과 담소가 있는 공간, 한 예술가의 수십 년간의 예술인생을 대리 체험하며 힐링할 수 있는 노랑다리미술관에는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던 엄혹한 시절에도 손 관장이 잊지 않던 재치와 해학도 담겨 있다. 이는 그 시절을 상징하는 AM라디오, 수공 타자기와 미싱을 모아둔 데서, 그리고 위정자들로부터 시달렸던 과거에 침잠하는 대신 빈 캔과 변기를 재활용해 예술품으로 승화한 기질에서도 드러난다. 비오는 날 처마를 바라보는 일상의 소재에서 온 감흥은 수저를 모아 콜라주 설치미술인 <수조>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창작물 중 첨성대를 재현한 구조물과 함께 손 관장이 큰 애착을 갖고 있으며 네덜란드, 프랑스에 이어 고흐의 <앙글루아 다리>를 세 번째로 복제한 작품이 바로 가평 노랑다리미술관의 상징이기도 한 작품인 ‘노랑다리’이다. 이렇게 노랑다리미술관에는 과거와 현재의 예술가들의 숱한 흔적이 새겨져 있는데, 손 관장은 노랑다리미술관을 만든 후에도 예술 분야에도 감흥을 준 역사 속 위대한 과학자들의 삶에서 끝없이 창조의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 `88올림픽 초대디자이너로 파격적인 로봇 의상을 제작하고, 펄프와 목재 등 건축자재로 색다른 의상을 선보였었던 손 관장에게 패션디자인 이전에 영감을 주었던 분야는 바로 과학이다. 공학과 과학에 관심이 많아 이를 설치 미술의 요소로 활용했던 손 관장은 과학과 미술이 시대를 앞서간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며, 단지 완성에 머물기보다는 현재진행과 미래지향을 토대로 일상에 대한 ‘의문’을 창조로 승화시키는 직업이기에 과학자들에게 경의와 존경을 아끼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이미 물질의 기원인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멘델레예프, 구형 행성의 공전궤적이 타원형임을 입증한 케플러, 액체 속에 기체를 주입하는 기술의 근간이자 산소의 존재를 밝혀낸 프리스틀리 등에 영감을 얻은 작품을 만든 손 관장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경이로운 사고의 유연성으로 지구의 인력과 만물의 이치를 깨달은 뉴턴이다. ‘천재들의 DNA론’에서 순응과 맹신의 벽을 깨뜨려 고정관념 속에서 새로운 결론을 도출하는 천재들의 삶과, 그들의 이론에서 배워야 할 점을 설파했던 손 관장은 ‘20년 프로젝트’의 전반부를 노랑다리미술관에 바친 만큼,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인간들과 그 후손을 위해 과학에서 영향을 얻은 창조물들을 남기는데 정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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