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시, 그리고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가는 ‘Hole’이 주는 휘몰아치는 긴장감
착시, 그리고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가는 ‘Hole’이 주는 휘몰아치는 긴장감
  • 정재헌 기자
  • 승인 2018.10.12 10: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추할 수 있는 상상의 여지를 주는 새로운 뒤틀림이며 작가로서 일관성 갖춘 도전이다”
조각가 유재흥 작가
조각가 유재흥 작가

[월간인터뷰] 정재헌 기자 = 차고 단단한 나무로 부드럽고 디테일한 종이포장재와 보자기를 재현한 <Wrapping(감싸기)>시리즈로 조각 분야의 디테일함에 의외성과 은닉의 미학을 선사한 조각가 유재흥 작가가 지난 5월 'THE HOLE'이라는 타이틀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유사성 속의 변화에 새로운 버전을 추가했다. 작가로서 그를 규명하는데 공헌한 주제인 감싸기와 묶기, 마치 오버핏 셔츠나 커튼처럼 촤르르 떨어지듯 한 드리핑(흘러내리기)으로 공간과 작품 간의 연계를 꾀했던 유 작가는 수 년 전 예고했던 거대화와 일상성이 반전하는 조합으로 돌아왔다. 급박한 ‘상전벽해(桑田碧海)’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롭고도 점진적인 변화를 거친 유 작가의 다이어그램에는  작은 나무가 거대한 뿌리와 줄기를 뻗어가듯, 언제나 큰 골자를 중심으로 일관성을 유지하며 변화를 추구하는 예술가만의 용감한 도전이 새겨져 있다. 

조각이 지닌 물성의 시각적 충족과 강렬한 메시지의 구도에 관객을 참여시키다
15세기의 미켈란젤로가 평생의 자부심으로 여긴 것은 교황의 부름이 아니라, 피에타 성모 조각의 사실적이고 디테일한 옷 주름을 진짜 옷으로 착각한 관객들이 차가운 석조의 촉감을 느끼고 놀랐을 때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써 조각을 보자기로 포장한 것으로 위장했지만 사실은 포장도 그 단단한 조각의 일부라는 ‘감싸기’ 테마의 작품들로 유명한 한국의 조각가, 유재흥 작가 역시 차가운 물성에서 온화한 속성을 시각과 공감각적 착시로 숨겨 의외성과 즐거움을 주는 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그런 유 작가는 마침내 관객이 접하는 긴장감과 강렬한 이끌림을 상징하는 또 다른 테마, 구멍(The Hole)을 찾아냈다.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와 동화 <앨리스 인 원더랜드>에서 볼 수 있듯, 작은 구멍을 통해 안쪽의 세상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새롭고 임팩트 있는 결과를 필연적으로 불러 온다. 유 작가는 외부적 이미지로 제작하면 스탠딩이라는 형식만 사용할 수 있지만, 내부를 보여주는 작업을 시작하니 구조가 훨씬 자유롭고 ‘감싸기’ 테마보다 훨씬 뒤틀림과 물결치는 이미지를 강렬하게 변화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유 작가는 물결치는 외부의 내부를 보여주며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착각, 그리고 보이는 것과 실제가 차이나는 다양성, 일방통행의 미니멀로부터 관객이 작품과 넓게 소통할 여지를 남긴 변화를 보였다. 지난 6월, 갤러리 이앙에서 개최한 개인전인 'THE HOLE'에서는 연극적 요소와 소품처럼 활용하며 감상하는 의외성이 있다.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는 이 시도는 시선의 다중성이 전제되기에, 일직선 구조를 뒤트는 변형에서부터 전시장 공간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보고 기존 구도의 시점에 변화를 주고 있다. 관객들 또한 눈높이를 높이거나 낮추며 작품과 소통하고, 유 작가 역시 재질을 어떻게 가공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와 트릭 대신 작품을 향한 소통으로 자연스럽게 논점을 바꾸면서 관객에게 접근한다.

내부에서 외부로, 또다시 내부로 향하는 시도의 연장선에서 더 참신한 방식을 찾다
“이미지라는 것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한 번이라도 뒤틀리거나 아래 혹은 위에서 봤을 때 새로운 모습으로 보여질 수 있다” 미켈란젤로가 다비드 상을 만들 때 감상자의 눈높이를 고려해 일부러 머리와 손을 크게 만들었듯이, 유 작가 또한 전시장의 정적인 관객들을 위해 거울을 배치해 관객들이 반대쪽으로 걸어가 자신의 얼굴을 작품의 일부로 인식할 수 있도록 익살스러운 배려를 보인다. 눈을 크게 뜨고 좁은 구멍을 응시하다 보면, 흐릿하고 애매모호한 평면의 광경도 어지럽게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어색함을 지나고 나면 이미지를 유추하는 즐거움이 있고, 그 즐거움을 촉발하는 출발점에서 굳게 고정된 핀을 제거하는 사람이 바로 유 작가다. <The Hole 1>은 그동안 유 작가가 감싸기 시리즈에서 갈고 닦은 섬세한 곡선 표현을 응용해, 블랙홀이나 싱크홀의 위압감을 조성하며 마치 깊이에 홀리듯 중앙의 검은 구멍에서 시선을 뗄 수 없게 한다. 그래서 <The Hole>시리즈의 구멍은 점(dot)보다는 미지의 세계(Twilight Zone)이기도 하다. 하지만 감싸기와는 반대로 외부에서 내부로 시선을 돌렸을 뿐, 유 작가가 탐구하는 본질은 여전히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다. 정체되지 않으면서 보다 다양하게 형상화의 의미를 표현하는 것을 갈망한 유 작가는 13회 개인전을 마무리하며 앞으로는 내부에 대한 임팩트를 강화한 절단 작업, 작은 조각의 조합을 시도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유 작가에 따르면 다음 전시는 전시장의 공간과 벽 자체를 구멍으로 향하는 유기적인 조직으로 간주하며 전체 벽에 작업할 것이기에, 관객 입장에서도 더 많은 표현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물성의 시각적 충족과 단조로운 이미지 속에서 던지는 메시지의 강렬함은 기존 아방가르드 조각가인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나 미니멀리즘 조각가 도널드 저드(Donald Judd)의 시도처럼 색다른 화두의 서막이 되기도 한다. 유 작가는 지금도 내년 전시회를 위한 작업을 하고 있으며, 오는 11월 상해 아트페어, 12월 아트페어를 비롯해 2019년 10월로 예정된 페스타를 준비하는 한편 내년도 개인전을 위한 장소를 섭외 중이다. 유 작가가 작품을 해체해 안에서 조립하여 갑자기 이질적인 공간에 들어온 듯 희귀한 경험을 예고하고, 지난 개인전처럼 작품을 바로 포토존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는 이 신기한 공간은 필시 하나의 묘목으로 수많은 뿌리와 가지를 형성하는 ‘작가로서의 일관성 있는 도전’이라는 유 작가의 다음 계절, 늘 그랬듯 나오게 될 다양한 열매를 담을 공간이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