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지닌 치유 능력을 회복이라는 이름의 복원력으로 은유한 도시의 조형물
숲이 지닌 치유 능력을 회복이라는 이름의 복원력으로 은유한 도시의 조형물
  • 정재헌 기자
  • 승인 2018.10.11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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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극복하는 인간의 잠재된 관성, 그 회복탄력성을 향한 일종의 욕망에 대해”
조각가 권치규 작가
조각가 권치규 작가

[월간인터뷰] 정재헌 기자 = 작품의 컬러를 ‘존재의 표정’이라 부르고, 오브제의 형태를 ‘내재된 힘의 흔적’으로 규정하며 그 힘의 질료적인 전이를 논한 조각가 권치규 작가의 도전은 ‘삶’, ‘욕망’에 이어 ‘회복탄력성’으로 이어지며 각각의 연계성을 선명히 드러내고 있다. 상징과 도상, 그리고 지표의 3가지 기호를 안과 밖 그리고 이들의 종합적 요소라는 시공으로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한 이들 콘셉트들은, 묵직한 중량감에서 섬세한 투조를 넘나드는 형태의 변화와 대조되게 서로 비슷한 맥락으로 연결되며 끊임없이 전개되는 중이다. 이 중 권 작가가 지난 5년 간 시도하고 있는 근작인 ‘회복탄력성: 리질리언스’는 인간과 자연의 교감, 그리고 큐브로 갇힌 공간에서도 힐링이라는 명사를 납득시킬 수 있는 공간인 ‘숲’을 주제로 작가의 정체성을 심화시킨 주제이다. 

욕망을 아우르는 삶의 저변에서 발견한 소통의 연대기, 회복탄력성

조각가 권치규 작가는 생각을 도색하고 이름 짓는 조소 분야에 대한 심미안이 남다른 작가다. “새싹의 연두빛은 빛을 머금고 싶다는 풀의 의지이며 생의 욕망”이라고 정의하는 권 작가에게 조각은 쪼개고 다듬어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소재들을 엮어 이들이 내재하는 가능성을 담보로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삶(Life)의 에너지의 원천인 힘에는 물질의 욕망(Desire)이 숨겨져 있는데, 인간의 오욕칠정의 전개와 관계성 또한 욕망에 의한 힘의 발현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권 작가는 홍익대 박사학위를 수료하던 시절부터 삶이라는 주제를 ‘욕망’으로 전이시켰다. 권 작가가 표현하는 욕망은 기계부속과 같이 은폐된 형태의 물체를 우레탄 고무줄로 감싸고, 마치 그것이 속에서 움직이는 듯 동적인 형상으로 주름을 잡아 표현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주름이란 당겨지면 힘들이 응축되면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때 생기며, 이는 운동 에너지가 작용했던 흔적을 남긴 채 없어진 증거로 남는다. 그래서 주름의 겹에는 병풍이나 접는 부채처럼 공간 어딘가에 반드시 의미가 숨겨져 있다. 권 작가는 그 자리에 개인사나 표현 주제를 포괄적으로 숨겼으며, 응축되고 숨겨진 부분에서 보이지 않는 주제를 추론하게 만드는 욕망의 실체를 오브제로 형상화 해냈다. 이러한 성공은 권 작가에게 콜라겐과 엘라스틴의 작용처럼, 늘어났다가 제 자리로 돌아가는 속성을 떠올리게 했으며, 5년 전부터 시작한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그 속성이 지닌 치유능력을 시각화함에 따라 환원과 복원, 그리고 인간이 갈망하는 공간인 ‘숲’에 대한 은유라는 현재의 주제와 깊은 연대를 갖는다. 자연을 도시의 조형물로 끌어왔다는 <숲-큐브> 시리즈들은 훼손된 환경의 회복과 치유를 상징할 때 인간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숲을 주제로 한다. 또 서로 연계성이 있지만, ‘Life-Desire’ 시리즈와 개인전에서 보여준 삶과 욕망, 막(membrane)과 고무줄이 상징하는 은폐와 주름에 포함된 의미보다 ‘회복탄력성’과 숲 시리즈의 관계성 쪽이 좀 더 대중성을 띤다.

서정적이고 은유가 짙은 자연과의 교감으로 욕망과 회복탄력성의 심화 작업에 초점 두다

‘힘’이란 항상 관계적인 것으로 나타나며, 매개를 통해서 존재를 가시화, 드러낸다고 정의하는 권 작가의 의견에 따르면,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힘에 대해 물리적으로 서술하는 대상이 고무줄이고, 그렇게 되돌아가려는 힘을 은유하는 ‘숲’이라는 주제는 큐브 박스 형태를 만나 인간의 관점을 잘 반영한다. 숲 시리즈의 큐브 박스는 건축물의 틀과 창을 구현하며 실내에서 실외를 바라볼 때 마치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것 같은 구조를 만든다. 인간이 실내에 있다는 것은 반대로 어떤 구조물에 갇힌 것과 동일하며, 이때 큐브는 반대로 바깥 공간과 소통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 갇힌 곳이라 할지라도 숲이라는 배경을 바탕으로 했기에 힐링을 암시하는 것이며, 따라서 큰 형식이 주름에서 숲으로 바뀌어도 내용에서는 같은 맥락을 유지한다는 것이 권 작가의 설명이다. 자연히 회복탄력성을 진행한 지 5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삶과 욕망의 주제는 유지되는 셈이며, 지난 이천 국제조각심포지엄에서 권 작가는 큐브의 형태에 인간과 자연을 모티브로 삼아 주름과 관통, 연결로 교감하는 구도를 이루기도 했다. 그렇게 숲 시리즈는 서정적이고 은유적인 부분을 강조하면서 기존의 주제들을 연장하고 심화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권 작가는 이렇게 확립된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여 해당 주제를 심화시켜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창작의 목적이며, 이 주제들이 조화된 <만월>에서는 보름달이 아닌 11시 공간을 틔워 보름달이 되어가는 만월의 달을 표현했다고 한다. 달은 차면 그 끝을 보여주며 기울지만, 권 작가의 보름달은 완성을 향해 가는 긍정적인 미래를 보여주기에 안팎의 공간은 연결되어 네거티브와 포지티브는 한 공간 안에서 서로 확장되고 이어진다. 이러한 신비롭고 창의적인 발상을 통해 인류 공통의 정서에 적합한 회복탄력성이라는 주제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권 작가는, 아시아의 갤러리들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은 기존의 작품들을 다듬고 새로이 창조하여 북미 시장에도 진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발생학 이후로 인류는 모든 사물의 물리적인 성향과 영속적인 속성의 순환을 믿어 왔다. 그렇기에 작품을 접하는 코드와 기호성은 나라마다 다를지라도, 그 힘의 속성이 응축된 저변의 창구로 소통해 온 권 작가의 탁월한 관찰과 조형적 기술이 도출해 낸 결론에는 누구나 깊이 공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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