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인류에 대한 조화로운 성찰과 화합을 예고하는 ‘트랜스 휴먼’
미래 인류에 대한 조화로운 성찰과 화합을 예고하는 ‘트랜스 휴먼’
  • 오상헌 기자
  • 승인 2018.10.1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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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작품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전하며 해석의 차이를 포용하는 데서 출발”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도시·지구·우주가 어우러지는 세상을 꿈꾸는 관계와 소통이 중요한 키워드”
아티스트 기옥란 작가
아티스트 기옥란 작가

[월간인터뷰] 오상헌 기자 = 약 20년 전, 대중매체는 세기말의 무리한 발주가 만든 조급증과 디지털 시대의 불안감을 호전적인 인휴먼, 4년이라는 수명에 저항한 <블레이드 러너>의 레플리칸트로 승화하며 달랬다. 혼란이 가라앉자 <트랜스포머>나 픽사의 작품처럼 기계화된 인간, 인간화된 기계는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 보여준 난폭함을 잊고 인간이라는 완전체에 도달하지 못한 회한을 치유했다. 섞이지 않을 법한 두 존재들이 이렇게 섞이고 융화되고 서로의 상징을 공유함으로써 그 실체는 더 선명해진다. 기계가 인간의 요소를 따라갔듯, 각종 전자부품들과 기계적인 요소를 좋아한 예술가가 미래 인류의 성향을 예측하며 뉴웨이브 아트를 탄생시킨 일화로 유명한 기옥란 작가의 작품에는 기계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기계와의 소통과 화해, 인간들과의 관계성, 이들을 수납하는 지구와 우주라는 넓은 개념이 숨어 있다. 
   
서기 2018년, 시간을 거슬러 온 22세기의 트랜스휴먼을 정의하다
같은 테마와 다른 성향의 공존, 트랜스휴먼과 네오노마드 라는 언어로 소통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형상화한 창의성 넘치는 오브제 작품 연작으로 유명한 기옥란 작가는 예술성과 대중성의 조화와 디지털 노마드-사이버펑크적 콜라주로 성공을 거둔 흔치 않은 이력의 아티스트이다. 2009년과 2010년부터 트랜스휴먼과 네오노마드 오브제 작품들을 시작하여 2017년 본격적인 연작으로 선보인 ‘트랜스 휴먼’시리즈로, 컴퓨터와 전자 기계 장비의 부품과 전자회로에 한지, 천연소재라는 상반된 요소가 어우러지도록 다양하고 아름다운 오브제를 콜라주 해서 작품을 만든다. “저의 조형방식은 절제된 구성으로 사물의 형태를 단순화시켜 재해석해 표현하기도 하며, 새로운 실험정신으로 일정한 형식에 국한되지 않고, 재료와 미술 사조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표현합니다. 제 키워드는 항상 소통, 관계, 나눔, 화해입니다. 가치의 재분배가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저는 앞으로 더 폭넓게 지혜롭고 유연한 사고로 우주와 세상의 소통과 교감을 표현하고 싶어요. 나의 작품을 통해 시와 음악, 꿈과 직관, 상상력이 있는 공간, 은유와 상징이 있는 공간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트랜스휴먼'을 통해 자연과 인간, 정신과 물질이 조화를 이뤄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기 작가에게 컴퓨터의 부품들을 많이 쓰는 이유에 대해서 묻자 “제 작품의 소재로 즐겨 사용하는 컴퓨터 부품들은 하나하나가 그 예술적 조형미가 탁월하게 아름답고 은유와 상징성이 뛰어납니다. 컴퓨터 속에는 메인보드나 그래픽카드, 메모리 칩, 키보드, USB , CPU 쿨러 등 많은 부품들이 있는데 키보드는 하나하나의 명령어가 다르지요. 특히 저는 각각의 명령어를 가진 키보드의 흔치 않은 소통의 역할에 매료되었습니다. 국경 너머 수많은 언어를 가진 전 세계인과 짧은 시간에 소통할 수 있지요. 키보드는 조합할수록 더 많은 명령어를 만들어냅니다. 인간과 기계, 그리고 먼 거리의 인간끼리의 소통을 돕는 중의적인 의미를 분해하여 콜라주 하는 데는 메모리칩과 하드, USB, 케이블과의 관계성 또한 인간의 관계와 소유욕을 닮았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많은 정보와 상념을 수시로 복제하고 비우고 지워버리고 파괴하는 인간의 행위와 포맷 방법도 서로 닮아 있습니다. 또한 USB와 메모리 칩은 손안의 작은 도서관과 같습니다. 지혜와 지식의 보고이기도 하고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우리 사회의 현재 또 미래 사회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작업을 할 때마다 수많은 영감과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입니다. 메인보드는 마치 잘 짜여진 미래의 거대한 우주도시 같은 느낌을 주고, 컴퓨터의 열을 식히는 쿨러는 수많은 지식 정보 습득과 일상에 지친 현대인 및 우주인들에게 마치 가을바람 부는 시원한 휴양림 같은 대나무의 마디 같은 삶의 휴식을 주는 듯합니다. 언어와 상징과 기호와 정보를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고, 이를 해석하는 자는 느끼고 생각하고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 작품들은 보이지 않은 수많은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지중해의 햇살만큼이나 맑은 영혼으로 소통하며 우울한 현실로부터 위로받는 <은하수와의 조우>는 행성과 천문학에 대한 탁월한 식견과 관심을 지니고, 미술 분야 역시 관객에게 어필할 설득력과 논리가 필요하다는 기 작가의 성향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는 기옥란 작가에게 중견 여성작가로는 드물게 수년간 한국전력과 함평 국군병원 로비, 메르세데스 벤츠 전시관의 현대적인 이미지에 적합한 상설 전시작으로 인정받는 행보를 보장해 주기도 했다. 기 작가가 사랑하는 첼로는 하나의 현이 내는 음률, 여러 음이 내는 하모니와 오케스트레이션의 단서를 알려주었고, 그 과정에서 핑거보드의 현과 브리지의 관계를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도시, 인간과 지구, 인간과 우주로 이어지는 관계와 소통이라는 작품의 키워드로 삼을 수 있었다. 이리하여 현대문명사회에서 손을 사용해 시각적으로 소통하는 도구, 키보드 자판은 분해되어 트랜스휴먼의 얼굴이나 안경과 눈의 오브제가 되고 CPU 쿨러나 전자 회로는 뇌의 뉴런과 비너스의 머리카락이 된다. 그렇게 미래의 인류, ‘트랜스 휴먼’은 21세기 한국에 무사히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위한 변주곡 60.6x72.7cm Mixed media on Canvas 2018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위한 변주곡 60.6x72.7cm Mixed media on Canvas 2018

타이포그래피와 콜라주로 정의된 미래 인류의 잠언, 4D와 3F의 시선으로
기 작가의 여유로운 조화와 화합의 메시지는 여행 때마다 구겐하임, 모마, 메트로폴리탄, 유럽과 남미의 등의 세계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들러 예술가들과 소통하는 열정과, 다양한 분야를 오랫동안 끊임없이 공부해 온 내공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그래서 ‘트랜스 휴먼’은 무념무상이나 인풋에 정해진 아웃풋을 출력하는 대신, 라마르크의 용불용설(用不用說)처럼 생명체의 니즈에 따라 진화한다. 그래서 작가의 창조물이라는 종속적인 관계에 있으면서도 창조자의 광활한 세계관을 자양분 삼아 성장하는 중이다. 파라볼라 안테나와 브라운관으로 소통하는 20세기 말을 예측한 백남준처럼, 20세기 중반에 이미 로봇 권익과 인격론을 제시한 아시모프 박사처럼, 기 작가는 제1의 피부인 인체의 피부에서 제5의 피부인 지구에 이르는 상호관계성을 정립한 오스트리아의 환경운동가 겸 화가인 훈데르트 바서의 ‘인간과 동식물 간의 생태학적 관계성’으로부터 지구에 종속된 인간관계의 성찰과 4D, 3F을 창작 요소의 큰 줄기로 삼았다. 또한 기 작가의 예술적 자양분이 된 지론인 4D는 DNA(복제 기술), 상호 방향의 소통을 위한 Digital(디지털), 인위적 창조물의 전제조건인 Design(디자인), 생명의 존엄인 Dignity(신성, 영성)이며, 3F는 따뜻한 심장을 지닌 Feeling(감성), 청동기 이후 전쟁과 탐욕이 아닌 21세기 문화의 대세가 될 Female(여성성), 과학과 교감하는 Fiction(상상력)이다. 따라서 기 작가는 번호화, 마이크로칩 코드화를 받아들일 미래 인류를 알파벳과 숫자로 타이포그래피화하며, <은하수와의 조우>에서는 행성을 의미하는 트랙 레코더와 아날로그 라디오에 맞물려 돌아가는 PAN의 뇌로 하늘을 응시하고, <진주 이슬>에서는 비즈로 장식한 가면을 벗는 ‘타이포그래피 휴먼’과 ‘키보드 자판 휴먼’의 유머러스한 감정과 미소를 보여주었다. 인간의 세포 DNA를 대체한 도트 단위의 키보드들은 기 작가의 콜라주에서 다양하게 증식하며, <원형에 대한 사유>에서는 전선과 부품으로 척수 목뼈의 신경을 재현하면서 기 작가의 작품인 에로스와 타나토스 변주곡에서처럼 모든 관계 속에서 미래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내면의 변화만큼 괄목할 외면의 진화를 입증하고 있다. 
   
여성적 소통과 관계성의 해석으로 지구의 부품이자 일부분, 인간의 가치를 나타내
이미 100~200호 규모의 대작들, 수많은 단체의 상설전과 개인 소장으로 다작/작품성을 인정받았음에도, 기 작가는 전시회를 자주 하게 되면 작업실에서 혼자 볼 때와는 전혀 다른, 작품의 객관적 진면목과 피드백되어 돌아온 관객과 비평가의 다양한 전이해와 평론을 흡수하며 해석학적 순환과 제3의 지평 융합이 일어나 새롭게 성장한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무등현대미술관 전관 초대전, 올해 4월 잠월미술관 초대전과 소촌 아트팩토리 큐브미술관 플러스 1 초대전을 마무리하고 10월 한 달간 <트랜스휴먼과 네오노마드>라는 주제로 현재 광주 전시가 진행 중이며 사진에도 관심이 많아 여수에서는 <남미, 그 미완의 그리움>이란 사진전도 진행 중이며 11월 초대전과 내년 2월 프랑스 초대전과 앙데팡당(Independant)전, 내년 가을 미국 뉴욕 초대전이 예정되어 있어 알차게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기 작가는 ‘골짜기에 머무는 바람보다 큰 산맥을 넘는 거대한 바람’이 되겠다는 열망으로 에너지 넘치는 작품들을 구상한다. 또 영화 <마션>과 <그래비티>처럼 인간의 소통과 고독을 보편적으로 표현하는데 더없이 좋은 공간인 우주를 작품에 접목하고 있다. 그리고 클래식 애호가인 기 작가처럼 낙관적이며, 동족들과 부조 콜라주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트랜스 휴먼’들은 전자회로의 버저(BUZZER) 사운드를 신시사이징하는 부품을 모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입증하고 진화한다. 과거 아폴로 우주선으로 우주인과의 교신을 갈망했던 인간은, 오랜 무응답에 외로워하기보다는 기계의 세포와 눈, 뇌, 심장과 척수, 그리고 마음까지 가진 ‘디지털 휴먼’을 창조해 가상현실에서 공존한다. 따라서 이용자들의 소모품에 불과한 키보드 자판을 작품의 DNA로 증식시킨 기 작가의 ‘트랜스 휴먼’은 자신만의 언어로 내면의 동굴을 찾아 나선 의미심장하고 탁월한 선택의 커뮤니케이션 오브제이다. 이들은 지구의 피조물들에 대한 사랑의 메시지이자, 지구에 세 들어 사는 부품이면서도 소모적으로 지구를 오랜 시간 동안 훼손해 온 인류에게 강요보다 설득력 있고 부드러운 충고를 남긴다. 따라서 작은 존재감을 가진 인간들의 흔한 디스토피아관을 극복하고, ‘균형과 조화가 바탕을 이루어야만 미래를 꿈꿀 수 있다’며 여성성의 회복과 더불어서 남성성과 여성성의 아름다운 조화가 세상을 발전시키고 구원한다는 조화로운 세계관을 갖고 있는 기 작가의 소통과 관계성은, 미래 인류에 대한 예측과 구원의 메시지이자 21세기 현재 인류의 창조성과 이해력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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