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분’, 인식의 경계를 질문하는 4개월간의 전시
‘불가분’, 인식의 경계를 질문하는 4개월간의 전시
  • 정재헌 기자
  • 승인 2018.09.12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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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과 인식론의 충돌”, 경계의 실종, 존재의 ‘불가분’에 대한 질문과 작품들
조각가 이용덕
조각가 이용덕

[월간인터뷰] 정재헌 기자 = “존재와 비존재는 서로 섞이지 않으며 나눌 수도 없다”고 유일불가분의 이치를 설명한 고대 그리스의 파르메니데스에 대해, 실존주의의 대표적 철학자 니체는 “그 경계가 존재함을 입증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섞임과 나눔이 불가한지를 단정하는가?”라며 반박한 바 있다. 니체는 존재의 본질을 알기 이전에 이미 인지된 실체적 존재를 존중하기에 비존재의 부정을 반문한 것이다. 현상학과 실존철학의 물줄기가 현대까지 도도히 흐르고 있는데, 해묵은 존재론을 들먹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러나 현대의 한 예술가, 이용덕 작가는 존재에 대해, 논리만이 아니라 조각이라는 물질을 동반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이어오며 경계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되었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에 대한 논리를 소환하여 질문과 충돌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는 기존 전통적 방식의 조각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역상조각]이라는 독창적인 조각형식을 창안해내었는데, 이것도 이러한 존재에 대한 탐구 과정에서 도출된 작품들이었다. 이러한 질문의 꼬리를 무는 작품들로 구성된 그의 새로운 개인전<불가분 INDIVISIBILITY>은 140일이 넘는 대장정을 펼친다. 마술과도 같은 시각적 매력을 지닌 역상조각 작품들과 새롭게 제작한 작품들이 어우러져, 이전에 진행해온 자신의 사유내용과 새롭게 마주하게 된 질문들을 여과 없이 충돌시켜, 존재에 대해 상충되는 개념들을 도출시키고 있다.

역상조각을 비롯한 이전의 작품들은 ‘존재의 양면성’ 탐구 과정
1986년과 87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우수상과 대상을 연이어 수상한 조각가 이용덕은 현실적인 인체모습의 묘사를 터부시했던 당시 현대미술의 흐름에 이단아처럼 나타난 젊은 형상조각 작가였다. 그는 자신의 사유와 질문을 작품으로 실험해 나갔는데, 젊은 초기에는 세상의 모습을 ‘모순’이라고 보았고, 이어서 ‘양분된 이질적 요소의 조화’라고 관심이 옮아갔다고 한다. 그는 양분된 이질적 요소의 ‘양면성’을 조형적으로 탐구하며 ‘음과 양’, ‘공과 색’, ‘존재와 비존재‘라는 상충된 요소에 대해 실험을 거듭해나갔다. 여기서 독창적 표현형식이 생겼는데, 이전에는 없는 형식이었기에 몇 해 지나서야 ‘역상조각’이라고 명명되어지게 된 것이다. 역상조각들이 미국, 유럽, 중국 등 해외에서도 명성을 높여 유명 미술관들로부터 초대받아 대형 개인전을 다수 개최하였으며, 국제 비엔날레, 아트페어와 옥션에서도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하였다. 역상조각이란 평면에 형상이 음각으로 오목하게 새겨져있지만 시각적 오인과 인식의 습관에 따라 입체적인 양각으로 보이는 조각형식을 말한다. 1m이상 떨어져서 보면 양각처럼, 자세히 보려고 다가가면 음각으로 파인 텅 빈 공간으로 변해버리는 이 작가의 역상조각들은 인간의 안각과 광각이 읽어내는 광학적인 조건에 따라 환영(illusion)이 일어나는, 일종의 인식의 문제에 대한 논점을 담고 있다.
 

‘불가분’, 실체와 인식 사이의 경계가 가능한가 
지난 8월 23일부터 내년 1월 6일까지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전시하는 그의 개인전 <불가분 INDIVISIBILITY>은 크게 두 가지 차원이 바뀌는 경계에서 부딪쳐 서로 조율하고 교정, 흡수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근간에 들어, 이전에 전개되어온 역상조각이 품고 있는 ‘음각’ 이라는 실체와 ‘양각’으로 환영되는 인식 사이에,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한 의심에 빠졌다고 한다. 이 양측을 나누는 ‘경계’에 대한 모호함과 모순성은 ‘경계가 애초에 없음’일지도 모른다는 자각을 불러 왔는지도 모른다. 둘 중 어느 하나를 부인하면, 다른 하나도 동시에 부인된다는 것이다. 양분된 영역에 대한 관점에서 논해오던 그는, 그동안 꾸준히 진행해 온 자신의 작품을 전혀 다른 위치로 옮겨가서 다시 조망하는 도발을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설치작품과 역상조각, 움직이는 조각, 영상이라는 다양한 표현 수단과 모터와 자석, 합성수지 등의 소재들로 제작된 신작 10여 점을 포함한 30여점의 작품들은 회전과 멈춤, 안과 밖, 거대한 안정감과 불안정한 침몰, 부분과 전체, 긍정과 부정이라는 영역에서 서로 동등하고 상반된 영역의 불가분에 대한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 
이용덕 작가는 20대 시절부터 현상학에 심취해 있던 시절, 세상을 지배하는 ‘모순’의 세력에 대한 충돌이나 수용을 주제로 했으며, 이어서 ‘존재의 양면성’에 주목한 작품을 만들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양분되어 있는 것 사이의 경계와 차원의 변화를 고민하기에 이른다. 그는 니체가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을 논박한 것과 다른 이유에서 불가분의 철학적 근거에 마주하게 된다. “존재와 존재 사이에 빈틈이 없으므로 비존재는 있을 수 없다. 즉 모든 존재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라는 파르메니데스의 고집스러운 독설은, 이용덕 작가에게는 경계를 나눌 수 있는 틈조차 없는 존재와 인식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게 되는 각성을 준 것이다. 작가는 손바닥과 손등을 나누는 경계를 찾는 무모함보다, 하루살이처럼 편린을 신봉하는 눈을 감고, 손의 존재가 선행되어야하는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관점에서 파르메니데스의 ‘모든 존재는 하나다’라는 개념을 해석하게 되었고, 새로운 작품들을 제작하면서 안과 밖, 음과 양의 개념이 모호한 역상조각을 비롯한 기발한 발상의 다양한 작품들을 시도하여 새롭게 선보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작품에 어떠한 표현을 담아 관객에게 이해를 강요하는 작가에 속하지 않는다. 그는 “내 작품은 의미전달을 위한 현수막이라기보다, 들에서 발견되는 꽃이나 들풀처럼, 나의 사유적 원인에 의해 존재되어진 것이고, 관객은 나의 생각과 무관하게, 관객은 나의 작품을 통해 마치 들풀을 발견하고 그것을 꺾어 간직하거나 스스로 이름이나 꽃말을 붙여 주는 관계가 된다면 좋겠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된 작품 중 가장 큰 역상조각 <I Am Not Expensive>는 한 장소에서 시간차를 두고 일어난 4개의 에피소드를 조합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한 것이다. 가로 7m 세로 2.84m에 달하는 크기이다. 
그 외에도 긍정과 부정의 불가분적 관계를 보여주는 <Self-Dialogue>, 침몰하며 동시에 부유하는 스폰지로 만든 배 <Buoyancy>등은, ‘있다’와 ‘없다’와 같이 상반된 개념이 사실상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전에 100여 회의 국내외 전시에 참가한 이용덕 작가는, 철학자가 논리의 구조라는 틀에서 사유하듯, 조각가로서 물질의 속성을 확인하고 경험하면서, 현상과 물질이 지닌 절대적이며 상대적인 조건들을 탐구하는 실험을 지속해갈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광학적이며 인지적 현상, 존재에 대한 질문을 담은 작품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감상자들에게 기발하고도 새로운 관심사를 제공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라리오갤러리에서 4개월간 열리는 전시로 기획하여 초대한 것을 계기로, 이용덕 작가는 지금까지의 사유와 질문을 이번 개인전에서 총체적으로 다양하게 제시하고 확장해가고 있다. 서울대 미대 조소과와 동 대학원, 독일 베를린예술종합대학에서 마이스터쉴러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을 역임하고, 현재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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