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들어 전 생애를 단 한 장으로 요약하는 카피라이터, 초상화가
붓을 들어 전 생애를 단 한 장으로 요약하는 카피라이터, 초상화가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1.08.16 1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상화가는 인물의 삶을 복원하며 그의 여정까지 요약하는 인생의 도슨트”
오동희 화가/오동희초상화갤러리 관장
오동희 화가/오동희초상화갤러리 관장

그림이 아닌 인물 자체로만 본다면, 인물화는 시대적 배경과 삶을 한 장으로 요약하는 도슨트다. 누군가의 전 생애를 요약할 수 있는 권능으로 궁정화가의 다수를 차지한 덕분에, 인물화는 미술사 전체의 주류가 될 수 없었던 대신에 미술의 변방으로 밀려난 적도 없다. 사실주의와 고결함으로 플랑드르-부르고뉴 시대 초상화 발전으로 유행한 왕실귀족의 초상화들은, 지금도 역사와 예술사조에서 유럽 후손들에게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시절의 추억을 안고 서양화의 재료와 동양화의 기법을 접목시킨 우아함이, 극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인물들의 삶을 인상적으로 압축시킨 한국의 사례는 더욱 주목할 만하다. 반포동에 위치한 4층 규모의 국내 1호 초상화전문박물관, 오동희초상화갤러리의 오동희 화가는 한국에서 서양 초상화의 가치를 입증했을 뿐 아니라, 마니에라(maniera)적 관점의 궁극인 ‘변화와 개정의 끝은 결국 순정’이라는 초상화 계의 진리를 그의 재능 하나로 입증해 온 귀중한 아티스트다.

현존하는 시대의 아이콘 묘사와 초상화의 정체성을 동시에 그려내다

2016년 경 서초구 반포동에 재개장된 4층 규모의 오동희초상화갤러리는 한국을 대표할 만큼 인상적인 초상화작업을 해 온 오동희 화가의 작업실 겸 초상화들의 작은 박람회장이다. 발 딛는 곳마다 역사적 현장의 인물을 묘사하고 당대의 기억을 간직해 낸 오 화가는, 3층 전시장을 지나 4층에서 그림을 그리고 후학들에게 자신만의 초상화 철학을 이야기한다. 그는 2021년 현재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 초상화를 모두 완성하고, 프란치스코 교황과 김수환 추기경, 구인사 1대 큰스님의 5백 호 초상을 비롯한 세계의 성인들과 문화예술, 정재계의 저명인사들을 대표작으로 갖고 있으며 매년 근현대사의 인물들을 작업한다. 오 화가는 유럽 성화의 클래식한 품위를 한국 땅에서 정석적으로 재현하는 귀한 성과를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작업하고 있다. 그런 오 화가가 초상화에 갖는 대원칙도 그림을 매개로 한 사료적 가치의 발굴, ‘시대의 아이콘’에 대한 예를 갖춘 헌사이다. 

거의 모든 초상화가들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거나, 존재한 적이 있었던 인간을 그렸기에, 초상화는 기법이나 표현수단이 조금씩 변화했어도 언제나 중세에서 르네상스시대까지도 사실주의 사조를 기본 골격으로 유지해 왔다고 한다. 초상화와 성화의 이상적 공존을 보여준 베네치아 화풍과 벨리니적인 우아함을 지닌 오 화가에게는, 전신사조에 따라 원본의 높은 기개를 현대 화구로 복원한 약천(藥泉) 남구만의 초상화처럼 동양화적인 기백도 숨어 있다. 이렇게 기념화의 수단과 학술적 목적, 미학 그 자체로도 사랑받는 초상화의 본질을 꿰뚫은 오 화가는 2014년 MIFA아트페어, 파리 카루젤 뒤 루브르 살롱을 비롯해, 미술과 비평 러시아 초대전으로 유럽 갤러리를 누비며 현지 언론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아카데믹한 길을 걷지 않고도 낭만적인 사실주의화풍이 갖기 어려운 독창성을 확보한 이래, 그는 겸양적인 학구열로 60세에 홍익대미술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며 예술가로서의 삶에 역사를 묘사하는 인물화가, 초상화가의 정체성이라는 깊이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의 기법이 한국에서 가장 창조적으로 로컬라이징 된 초상화

유럽의 갤러리들이 오 화가로부터 크로키와 데생, 인체해부도 연구로 얻은 균형감과 탁월한 외양묘사능력, 그리고 학구적 초상화가 기질을 간파한 이유는, 그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미술관에서 선대의 예술적 에너지로 충만한 청춘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17세기를 전후해 교역으로 물감과 섬유를 풍족하게 공급받았던 유럽 궁정화가들의 풍부한 색감, 인물의 성향에 깊이를 더한 렘브란트 타입의 절제된 배경묘사, 유화 초상에서 입체명암으로 더욱 사실적인 터치를 더한 반 아이크의 르네상스적 기법까지 거의 모든 서양초상화들의 유산들을 이어받고 있다. 또한 안면의 비대칭이나 습관적인 표정 변화로 얼굴 양 쪽의 주름이 달리 잡히는 것도 포착하고, 연령과 성별, 인종에 따라 다른 얼굴 골격의 미묘한 차이점까지 담아낸다. 따라서 그의 초상화에서 16세기 뒤러가 인체비례와 원근이론을 집중 고찰해 두각을 보였다는 정확한 안면 묘사법과 세필기법의 특징이 제법 로컬라이징되어 있다는 평가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기법의 백과사전’으로 통용되는 오 화가의 인물묘사는, 이천 천주교어농성지의 순교자 8인 초상화 복원을 위해 문헌으로 된 당대 문화, 복식까지 발굴하는 자세에서도 알 수 있다. 

한 점에 1달 이상 걸리는 작업에서 표정과 인상, 손과 귀에서 생전의 성격과 성향까지도 추론해내는 그의 작업과정은 숙련된 골상학과 인상학까지 연상케 한다. 그는 성격 상 어느 한 사람도 똑같을 수 없는 치열의 크기와 배열, 힘줄과 피부의 결, 주름과 속눈썹, 눈빛의 동공크기와 안광까지도 소홀할 수 없다고 한다. 그의 제작 순서도 전체적인 포즈와 선이 완성되면 표정과 성격이 들어가고, 색감과 조명의 방향을 결정하면 초상화의 목적에 따라 인상을 묘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 화가의 초상화들의 진가는 정면과 측면, 클로즈업과 원거리는 물론, 시선을 좀 더 올리거나 내릴 때에도 잘 드러난다. 이 점이 바로 오 화가의 작품들이 사진과 똑같으면서도 작가의 시선이 미묘하게 반영된 기록화로 불리며, 사진이 대중화되어도 기업 총수들의 초상화를 꾸준히 의뢰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엄숙함을 벗어나, 난민 소녀의 슬픈 클로즈업에서 이지적이면서 유니크한 앤디 워홀, 유머러스하고 생기 넘치는 백남준의 초상까지,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인류의 삶은 실로 방대하다. 20대 시절 초상화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결심을 50년이 넘도록 지켜온 오동희 화가, 그는 올해도 자신의 작품 소재이기도 한 인류의 업적을 필연적으로 기다리게 되는 화가라는 직업에서 보람을 느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