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화폭이라면 풍경 속의 꽃은 그림이라, 마음은 서정시를 부르네
지구가 화폭이라면 풍경 속의 꽃은 그림이라, 마음은 서정시를 부르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1.04.12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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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콘텐츠는 도슨트 목적보다 행복한 느낌 주는 콘텐츠 지향”
서정남 화가/ 시인
서정남 화가/ 시인

세상이 극단적으로 변한들, 자연은 사시사철 계절이 바뀌는 듯 매년 돌아오고 냉혹하게 얼어붙다가도 이내 다정하게 녹아들며 변함없이 우리를 맞이한다. 감성적인 마음으로 자연을 바라보면서도 풍경의 시작과 끝을 맺는 구도와 원근기법부터 고민하던 플랑드르의 풍경화가들과, ‘시중유화 화중유시’로 서로의 그림에서 맵시 있게 흘러넘치는 서사를 칭송하던 송나라 남종문인들의 마음가짐도 그렇다. 도구와 시대는 다를지언정, 그들이 자연을 바라보며 유유자적 매혹되었던 마음만큼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함께 그리는 유튜브나 도슨트 목적의 채널보다는 작가 개인이 바라는 ‘행복을 주는 작가’가 되고자 음악과 어우러진 짧은 그림힐링 채널을 연 시인 겸 서양화가, 서정남 화가의 꽃과 풍경에 대한 묘사도 이처럼 서정적이다.

거기 그 자리에서, 꽃을 그리는 즐거움에 한 줄 감성을 얹으면

문인화에 있어서 획이 얼마나 정확한지, 운필이 얼마나 장중한지에 대한 기술 분석평론의 종말을 가져온 왕유의 작품은 소위 ‘보는 글’과 ‘읽는 그림’의 조상 격이다. 동양의 정서는 자연의 미를 찬양하면서 삶의 여유를 찾는 수평적 관계지만, 서양에서는 그림에서 본 충격으로 글을 쓰고, 글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리는 일종의 종속적 창작 개념인 ‘스탕달 신드롬’에 가깝다. 또한 자연을 묘사했으면서도 하위트렌드적인 산업디자인이나 일종의 장식목적인 부류에 흡수되어버린 근대 동양화 스타일과는 달리, 놀랍게도 한국형 문인화는 서양수채화와 유화의 도구, 기법으로 그리면서도 과거 남종문인들 같은 영혼이 깃든 현지 적응화 경향을 보인다. 2002년부터 붓을 든 서 화가는 데생과 수채화, 유화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취향인 서양화로부터 시상(詩想)을 얻어 시인으로도 등단한 작가다. 

대구를 대표하며 밝고 아기자기한 꽃과 향토의 작가인 서양화가 손문익 선생을 사사한 서정남 화가는 “만약 처음 시인이었다 해도, 풍경을 보면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기길 바랐을 것”이라고 하며, 가장 좋아하는 소재도 취미인 여행에서 접하는 풍경과 일상을 아름답게 빛내주는 꽃이라고 대답한다. 그에게 만족감과 마음이 끌리는 답을 주는 것은 언제나 자연이었다. 동양의 꽃을 서양 물감으로 그리는 작업 자체로도 즐거웠을 뿐 아니라, 꽃의 생김새에 빗대어 감정을 말하거나 꽃을 보다 기억난 이야기를 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서 화가는 맨드라미, 수련, 장미 같은 꽃에서 사람을 그리는 것보다 더한 매혹을 느꼈다고 한다. 세 송이로 만개한 모란꽃에서 신방을 은유하며 좋아하는 노란빛과 붉은빛을 마음껏 묘사하고, 꽃송이에서 신방의 작은 등불을 떠올리기도 한 <모란 신방>은 이처럼 그림과 시가 한 쌍을 이룬 작품이다. 

비대면 시대, 감성에 접속해 평면인 그림의 시공간을 노닐 수 있다면

서 화가의 그림 터치나 시에 쓰인 단어들은 그의 온화한 표정만큼이나 밝고 쾌활하며 다정다감하다. 그림과 시의 서정성은 즐겁고 행복한 여행 경험으로부터 나왔으며, 연 3-4회 참여하는 단체전에서도 그의 성향에 어울리는 작품 위주로 선을 보였다고 한다. 구상과 비구상을 두루 경험한 서 화가는 소재 중에서 양귀비를 가장 좋아한다. 청순한 개양귀비와 고결한 흰양귀비, 제비꽃을 닮은 모습에 라피스라줄리-아쿠아마린의 신비로운 빛을 지닌 히말라야양귀비까지 이 꽃들의 매력은 상당하지만, 가장 끌리는 것은 붉은 양귀비이며 붉고 노란, 그리고 녹색으로 우거지고 푸른빛까지 자연에서 오는 색이라면 그의 눈에는 무엇이든 아름답다고 한다. 이렇게 고운 꽃 색을 보다 보면 그림의 영감이 나오고, 시가 될 문장이 떠오른다는 서 화가는 60대에 들어 습작들을 보관할 장소로 창고나 작업실 외에 랜선 저장고를 떠올렸다고 한다. “농경과 산업화, 컴퓨터의 시대를 지나 이제 비대면의 시대가 왔다”는 서 화가는 그림을 촬영하고 스캔해 아들의 도움을 받아 유튜브 채널 ‘정남TV’를 열었다. 서 화가는 온라인에서도 순수한 비대면전시장 분위기를 내고자 했다. 

이벤트와 밈(meme) 위주인 젊은이들의 그림 유튜브와 달리, 그가 지금까지 올린 작품들은 실제 화랑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잔잔한 음악 속에서 천천히 그림을 훑는 영상들이다. 또한 꽃잎 묘사에 능하지만 바위가 비치는 계곡물, 그리고 계곡과, 강, 개울이 흐르는 물결의 느낌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데도 열성을 다하는 그는, 눈 오는 숲길과 눈 덮인 한적한 시골마을, 올려다본 숲 속의 나무처럼 잔잔한 풍경 속에 들어온 느낌을 잊지 않고 자신의 풍경화에 담는다. 그리고 다작하는 성향은 아니지만, 감흥이 일면 그림을 서정시와 생활시로 묘사하며, 알차게 모아서 랜선 갤러리들을 위해 편집하고 있다. 작가들이 이제는 TV보다도 영향력 있는 매체가 된 온라인포털에서 비대면 갤러리에 도전할 용기를 내는 시점에, 서 화가는 이미 창작과 함께 콘텐츠 구성을 고민하는 단계인 셈이다. 서 화가는 화랑과 전시장을 대여하는 것 외에도 작품을 소개하는 통로가 더 생긴 것에 대해, 전업 작가가 아니더라도 미술을 할 수 있고, 비대면 공간에 그림을 걸 수 있는 미술업계에서의 4차산업혁명이 시작됐다고 본다. 계절의 변화를 반기듯 자신도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는 서 화가는, “지금은 편집을 거쳐 소개하지만, 조만간 미술콘텐츠로도 실시간 방송을 할 수 있도록 작업 공간의 조명과 세팅을 꾸미고 있으니 기대해 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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