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가르드적 곡선으로 세운 금수강산의 색감, 우리 시대의 ‘청산별곡’
아방가르드적 곡선으로 세운 금수강산의 색감, 우리 시대의 ‘청산별곡’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1.04.1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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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하나 되듯 색색의 산맥이 운치 있게 어우러진 관념적 풍경조형물”
박정흠 작가/ 국립군산대학교 미술학과 겸임교수, 한국환경조형미술연구소 대표
박정흠 작가/ 국립군산대학교 미술학과 겸임교수, 한국환경조형미술연구소 대표

대한민국미술대전, 중앙미술대전, 전북미술대전 등 조각부문에서 수상하고, 산업디자인과 예술분야를 통틀어 자연과 어우러진다는 한 가지 주제를 다양한 재료와 폭넓은 오브제로 사유하고 표현하는 박정흠 작가의 2020년은 도전으로 가득했다. 복잡한 재료의 믹스매치에 관대하며 돌로는 풍경을, 나무로는 산과 섬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던 그는, 돌과 나무의 물성에 금속으로 쐐기를 박는 커넥터 역할을 제안하며 조화로운 재료결합의 비구상적 사유를 다채롭게 보여 왔다. 그러다 평균 연 1회 일정의 개인전이 4회로 늘어난 지난해는 시간 관계상 작업 속도가 빠른 금속조형을 집중적으로 선보이면서, 주변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기도 한 관념적인 풍경조형물 연작들을 소개했다. 직접적인 요산요수의 스탠딩 서사를 보여주는 <청산별곡 전>을 비롯해, 같은 주제로도 포용성과 기하학적 구조, 선명한 컬러감의 변화를 준 박 작가는 올해 자연과 조형물, 도시재생에 관계된 박사학위 논문 준비를 목표로 잡았다고 말한다.

재료에 얽매이지 않는 조각가, “돌과 나무 너머 청산에 살어리랏다”

박정흠 작가는 돌을 파낸 자리에 귀금속류로 쐐기를 박는 입사(入絲)기법으로 2006년 인사동 모란갤러리 데뷔전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전통공예를 가미한 현대적 조각, 순수조형기법의 흉상과 기념조형물들을 작업하며 다양한 오브제를 경험했다. 또한 여인들의 ‘규방사우’에 속하는 실꾸리를 금속와이어로 대체하고 다듬잇돌을 오브제로 활용하며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는가 하면, 2년 후 2회 개인전에서는 연결과 채움을 벗어나 이면과 간극을 사유하는 예술가로 역사와 현실의식을 바라보는 표현주의의 진보성을 보여주었다. 깨어지고 갈라진 틈에서도 개울과 강이 바다로 이어지는 줄기형상을 인식해, 한민족의 정체성이나 자연파괴와 경제발전의 어두운 공존처럼 묵직한 주제를 암시하기도 한 박 작가는 이후로도 나무, 돌, 철 등으로 자연의 사실적인 형상을 나타내 왔다. 

그런 박 작가가 2020년에는 두 가지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는데, 하나는 공교롭게도 코로나 시즌으로 타임라인이 밀리는 바람에 한 건씩 하던 개인전을 4건이나 치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친화적인 생활환경으로 옮긴 작가의 자연주의 성향을 단기간에 준비할 수 있는 철제 재료로 산을 나타냈다는 점이다.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메타크릴라토(유리아크릴) 아방가르드 작가인 이탈리아의 지노 마로타(Gino Marotta)의 강렬하게 환한 색감과 레이어링에 착안해, 박 작가는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운 대신 투명감이 없는 금속판·리본의 속성에 음영과 그래피티적 선명함을 드러낼 수 있는 원색 스프레이 컬러링을 시도했다. 새롭게 보여준 그만의 금속조형과 풍경조형들은 단시간의 작업 과정과 달리, 2020년 10월 행촌미술관 <청산별곡 전>의 조화로운 산수 시리즈들처럼 “청산에 살어리랏다”는 유유자적한 메시지로 가득하다. 철판으로 구름이 걸린 고산의 중후한 원근과, 컬러링으로 사계절 다른 색에 물드는 산의 생기를 더한 작품에서는 자연을 벗 삼은 여유마저 보인다.


4차례 릴레이 전시 마무리, 공공미술 개념의 학술연구와 논문작업 준비

지난해 4차례 전시를 계기로 작품을 사진과 영상매체로 선보이는 것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박 작가는, 돌조각에서 양감을 덜어내고, 다양한 재료로 주변과 조화되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때로는 백두산과 에베레스트처럼 이상적인 장소의 풍경사진을 작품으로 재현하기도 했다. 20대 시절 누구의 코칭도 받지 않고 작업장에 떨어진 이탈리아대리석 한 조각을 첫 작품인 작은 그랜드피아노로 새겨 낸 박 작가는, 조각가인 부친의 작업을 어깨 너머로 보고 자라면서도 인문학을 선택했었다. 그러다 조각을 택한 그의 방황은 길지 않았으며, 대학원 시절 은사로부터 “쓰레기를 양산하는 작품은 만들지 말라”는 현실인식적인 충고에도 영향을 받았다. 그는 지금도 작가의 이미지와 재료를 일치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거쳐, 재료로부터 사료를 사유하면서도 현실에서 본 자연으로 소통하는 창작을 한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박 작가는 행촌미술관 전시에서 금속오브제들의 모서리를 둥글게 말아, 달과 구름, 기슭을 포용하는 온화한 산 속의 <청산별곡> 연작을 소개하였으며, 11월 군산 예술의전당 전시에서는 산의 형태를 금속 리본으로 추상적이고도 트렌디하게 표현하거나 각진 등고선 같은 철선조형으로 재해석해 보였다. 

<산스케치>의 페인팅 된 금속리본들은 선 하나로 금수강산을 이루는 산과 구름의 운치를 단순화시켰고, 금속을 오려 레이어링 한 <산울림>의 컬러풀한 어우러짐은 공주국제미술제 야외전시에서의 사실적인 현악기 묘사, 기하학적인 하트조형물과 비교해 볼 때 더욱 인상적이다. 한편 박 작가는 10회까지 치른 개인전과 올해 계획된 단체전 외로, 자연과 조형물, 도시재생과 공공미술을 강의하며 커진 관심사와 연구를 담고자 하는 박사논문을 올해 가장 중요한 계획으로 꼽았다. 대신 작품을 공개할 기회라면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는 설치예술가인 동시에 환경과 사람을 어우러지게 만드는 작가를 지향한다. 우범지대 사우스 브롱크스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을 석고로 뜨는 ‘라이프캐스팅’을 계속하여 지역의 이미지까지 바꾼 존 에이헌(John Ahearn)처럼 말이다. 박 작가는 자신의 생활권인 군산의 자연환경을 사람의 공간과 어우러지게 만드는 창작을 계속할 것이며, 작가로서 예술의 밝은 영향력을 보여주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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