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있기에, 질감을 탐구하는 즐거움을 알고 구상의 궁극을 넘어서
끝이 있기에, 질감을 탐구하는 즐거움을 알고 구상의 궁극을 넘어서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0.12.28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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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문회 이남찬 회장 / 화가
한국예문회 이남찬 회장 / 화가

풍경, 정물, 인물 모두에 출중한 화가, ‘군자적 풍모와 인간미, 해학적 형상미학의 구현’으로 잘 알려진 한국예문회 이남찬 회장은 지난 2월 제주 현인갤러리 기획 초청 전 이후, 코로나19로 한 템포 쉬어가는 요즘, 최근 개인 갤러리를 열어 작품을 새롭게 단장하고, 여느 화가들처럼 여전히 작업실에서 작품을 창작하는 일에 한창이다. 
6.25의 폭격과 고된 보릿고개를 경험한 세대로서 물감을 잡을 때마다 남다른 재주를 보였던 미술소년 시절, 1960년대 우리나라의 5대 고궁과, 명동, 봉은사를 오가며 그림을 그렸던 그는 고교시절 국전 입상, 목우회 특선을 이루며 화가로의 천직을 살게 된다. 그 후 60년, 다양한 시각의 변화로 구상의 한계에 도전한 개성파 중진의 입지를 동시에 다진 그는 미술계 구상회화의 정통성 있는 거목이 되었다,

화가의 길 60년, 변천 속에서 
지난 8월 인사동 ‘국제 작품 미술제 기획전’에 참여 작가로 오른 한국 예문회 이남찬 회장은 구상화계의 원로이자, 유명한 풍경화의 대가로 구상화계의 1.5세대 서양화가이다. 어릴 적부터 마냥 그림이 좋았던 그는 청소년 시절에 만나 함께 작가의 길을 걸었던 (故)손순영 선배의 집에 있던 미술화집들과 명동서점의 미술서적들을 탐독하며 본격적으로 화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지금은 양재역이나 옛 시절 말죽거리로 유명하고, 세종문화회관이 시민회관으로 불리던 그 시절부터 사생의 리얼한 질감을 얻고자 화구를 끌어안고 서울의 거리들을 관찰하며 덕수궁 5월의 모란꽃 풍경, 경복궁 근정전, 봉은사 대웅전 같은 명소와 남산근교의 사계절을 끝없이 스케치하고 채색하였다. 이 회장은 서울 거리를 누비며 자연을 화폭에 담았던 그 때의 그 시각들이 자신의 작품 철학의 토대가 되어 지금까지 자연주의 작가로의 길을 걷고 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한때 그의 청년시절엔 자연주의 구상화가의 길을 잠시 고민하기도 했었다.
소공동 아케이트 안에 있던 서울화랑에서 풍경화 작업을 할 때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질감의 작가’, ‘군더더기 없는 풍경화’ 라는 최고의 평가를 받을 만큼 구상화 작가로서의 능력이 뛰어났지만 그 시절 미술계는 비구상(추상)이 성행을 하던 시기였기에 함께 작업했던 동기이자 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한 (故)이두식 작가처럼 비구상을 고민하며 시도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역시나 마음이 가는 그림은 비구상(추상)이 아닌 사실적인 풍경, 인물이 함께하는 세상의 풍경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유행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눈에 비친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자신만의 색채로 표현해 내는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구상작가로서의 길을 걷기로 한다. 

젊은 날 작업실이 없어 화구 상자에 걸터앉아 그림을 그리던 그는 가정을 이루고 난 후에야 작업실을 꾸밀 수 있게 되었고 화가로서 더욱 작품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어느 순간 한국의 풍경에만 머무는 작업에서 한계를 느끼며 더 넓은 세상의 작업을 꿈꾸게 되었는데 그 시작으로 `90년 대 한중수교 1년 전, 북경중앙미술대학의 초청으로 한 달 여간 중국을 여행하게 되면서 더 넓은 세상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는 작업을 드디어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의 여행 일정 중 10일이라는 시간동안 변화무쌍하던 기후의 변화 속에서 백두산을 관찰하며 스케치를 할 수 있었는데 그 덕분에 1998년 100호 대작 <백두산 달문에서 본 천지의 풍경>을 그려냈고 백두산 시리즈들을 연작하며 “하늘, 산, 대지, 물 중 어느 요소도 소홀히 하지 않은 색조와 완벽한 실경묘사”라는 호평을 받으며 풍경 화가로서의 명성을 한층 더 높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후 그는 객체인 인물을 풍경의 요소로 등장시켜 네팔 카투만두의 고산지대 산악인들의 모습, 매혹적인 중국 귀주성 묘족의 일상을 따뜻한 사실주의 관점으로 기록했으며, 그렇게 중국을 시작으로 아프리카까지 세계 37개국을 다니며 넓은 세상의 다양한 풍경과 인물들을 화폭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는 유럽, 그 중에서도 베네치아의 도시와 운하가 좋아 다섯 번이나 재방문을 하며 베네치아의 풍경들을 작업하였는데 그가 사랑하는 도시 베네치아의 대작들은 2016년 10년 만의 대규모 기념전으로 개최된 <이남찬 칠순展>에 소개돼, “충실한 형태미 안에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다큐처럼 생생하게 다가오는 작품” 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의 베네치아 작품에서 재밌는 것은 <추억의 베네치아> 시리즈 중 300호에 대작으로 작업된 작품에서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군중들 속 곤돌라 사공의 일상을 따뜻이 바라보고 있는 이남찬 작가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있는데 그는 작품의 일부에 자신을 그려 넣으므로 당시 관광객으로서의 설렘과 현장감을 그림 속, 숨은 재미로 표현한 것이다.
또 어떤 작품에선 세상을 거닐다 마주하게 되는 가게의 쇼윈도 앞에서 유리창에 비추인 채 진열된 물건들을 디지털 카메라에 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2차원인 캔버스 안에 그대로 그려 넣어 실제 3차원의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순간의 찰나를 위트 있게 표현하기도 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 이 회장 또한 화구만큼 카메라를 챙겨 풍경과 동식물, 사람을 카메라에 담아 작품에 옮기는 작업으로 작품이 변화되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흘러 세상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변화되었고 청년의 시절 사생을 통해 즉석에서 그림을 표현해 내던 구상 작품들은 많이 줄었지만 작가의 눈이 되어 카메라에 담기는 세상의 많은 인상들은 더 다양한 순간들로 표현 되며 사생의 작업보다 더 디테일하게 그의 작업실 안에서 재창조 되어 화폭에 담겨지고 있다. 

45세에 크리스천이 된 이 회장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을 감사하며 겸양 어린 호기심으로 생동감 넘치는 그림을 표현하려 노력해 왔다. 그리고 지금껏 나태함 없이 자신의 눈에 비추인 세상의 살아있는 아름다움들을 화폭에 담아 또 다른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구상작가로의 삶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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