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서화(詩書畵) 삼절과 지필묵(紙筆墨)의 격조가 동체를 이룬 문자예술
시서화(詩書畵) 삼절과 지필묵(紙筆墨)의 격조가 동체를 이룬 문자예술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0.12.28 14: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화동체의 반듯한 마음으로 운정체 개발, 현대 문인화 사사에 앞장 서”
문인화가 운정 박등용 선생/ 운정서화실 원장
문인화가 운정 박등용 선생/ 운정서화실 원장

시서화가 조화 합일한 문인화는 작가의 정돈된 인품이 드러나는 독화(讀畵)로서 문학과 미학적 서사가 있는 사대부들의 전통이다. 그리고 우리의 풍류와 멋이 깃들어 있지만 필법의 참맛을 단기간에 익히기가 어려운 까닭에, 근래 들어 문인화를 즐기는 인구도 드문 편이다. 이처럼 소중한 문인화를 계승할 예술인들의 존재가 아쉬운 시점에서, 유명 도안사에 안주하는 대신 고결한 일필휘지의 ‘운정체’를 개발해 운필의 도리를 다한 문인화가 운정 박등용 선생이 올해 우리사회의 리더십을 대표하는 <2020 KBB(KOREA BEST BRAND)대상>의 문화예술인 분야에 선정되었다. 금파 고병덕 선생의 시서화를 사사하고 운정서화실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운정 선생은 서예와 문인화의 품격을 널리 알리며 한국 문인화 분야의 귀감이 되고 있다.

40년 필획의 정기와 20년 운필법의 시화예술, 문인화의 고매한 선(線)

대한민국미술대전의 시서화 달인들과 문인화 응시자들이 한 번쯤은 거쳐 가는 이름, 한국미술협회이사, 성남서예가총연합회 부회장, 고려대 교육대학원 서예문화최고위과정의 강단에 섰던 문인화가 운정 박등용 선생은 유명한 ‘운정체’의 창시자다. 유명 광고의 캘리그래피는 물론 지하철 1호선과 서울시청 현황판 필체를 직접 쓴 운정 선생은 20년 전부터 성남에서 운정서화실을 열어 수묵화와 서예, 문인화를 사사하고 있다. 운정 선생은 전통 문인화 속에 우아한 매난국죽의 수묵화와 생기발랄한 동물들의 움직임이 담긴 수묵담채화, 정중동의 내공과 기백이 어우러진 서예의 매력까지 담으며 곱디고운 우리한글 한 수로 방점을 찍는다. 또한 그림으로 치면 조목(鳥木)과 초충(草蟲)이 어우러진 여백의 아름다움을 그린 반추상 풍경이요, 서예로 보아도 40년을 넘게 먹을 갈아 만든 필획의 정기인 운정 선생의 문인화는 색과 선의 강렬한 조화가 인상적이다. 

수묵담채화 안에서 수채화구로 현대적으로 표현한 프로타주(frottage)와 드리핑(dripping) 된 그림 사이에 올올이 섬세한 털 결을 지닌 동물들이 노니는 모습도 운정 식 문인화의 서정성을 더해준다. 여백으로 둘러싸여 필획이 돋보이는 난을 치고, 캘리그라피와 선비의 서체로 긴 호흡에 매듭을 지은 감수성은 이 세상보다 무릉도원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운정 선생은 탁월한 선과 색이 조화된 묘사력으로 독수리의 너른 기상을 표현해 대한민국미술대전의 우수상을 수상한 <독수리>, 작은 생명을 향한 따뜻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다람쥐> 등 털 달린 생물이라면 뭐든 잘 그린다고 호평이 자자하다. 그리고 화풍과 글씨 모두에 기백이 넘치는 운정 선생의 문인화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은 역시, 화폭의 여백에 운정 선생이 조화롭게 운정체로 쓴 고운 격언이나 문장 한 수일 것이다. 

현대적인 캘리그래피 미학과 전통문인화의 정갈한 결합, 운정체

운정 선생에 따르면, 본래 서예에서 하나의 선(線)을 결정하고, 예서와 행서, 초서 중 필체를 골라 농묵, 중묵, 담묵의 농담을 조절하며 필획을 연구하고 반복해 붓을 든 세월이 쌓여 고유 필체인 운정체가 되었다고 한다. 운정 선생은 운정체가 단순히 서체가 아닌 글자의 화풍을 갖추는 작업이자, 수십 년 간 산수와 정물을 그리며 붓글씨로 운필을 다짐으로써 문인화의 도를 깨우치며 이뤄간 성정의 수양과정이라고 한다. 옛 사대부들이 시서화로 마음을 다듬으며 쓴 일기가 문인화이듯, 운정 선생의 운정체는 아기자기함 속에서 가로 폭과 중심이 유난히 두터우며 그 굴곡의 오르내림이 사뭇 다감한 어조를 띠고 있다. 운정 선생은 색보다는 선을 고르고, 문인화의 정갈함과 운치를 입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며 “불필요함이 없는, 서로 잘 어울리는 요소들만 있을 때” 비로소 붓을 놓는다. 

족자 그림이든, 풍경 그림이든 항상 운필의 격에 맞는 생동감이 강조된 운정 선생의 개성은 사대부들의 청렴한 풍류를 현대화한 운정서화실에서 꾸준히 계승되고 있다. 여기서 문인화의 고전미를 꾸준히 이어갈 후학들에게 운정 선생은 “자연의 정취를 종이에 담으려면 시서화 분야와 지필묵의 양수겸비가 필수이며, 항상 묵을 곁에 두고 창작을 벗 삼아야 영혼에도 서체가 체화된다”고 강조한다. 독학으로 시작해 사군자에서 발군의 재능을 평가받고 서체연구개발, 도안사와 운필전문가로 창작을 하다 문인화의 결체에도 큰 획을 긋게 된 운정 선생은, 이번 수상 이후에도 개인 작업과 수련에 몰두하는 삶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문인화의 정신을 계승하며 ‘운정 문인화’라 하면 먼 훗날 후손들이 긍정적인 첫인상을 갖도록, 붓의 혈맥을 찾아 정성껏 한 점과 한 획을 시작할 것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