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같은 마음, 대나무 같은 심성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치다
소나무 같은 마음, 대나무 같은 심성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치다
  • 임승민 기자
  • 승인 2019.02.18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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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서각연구원 최병두 작가

[월간인터뷰] 임승민 기자 = 2019년 기해년을 맞이하는 제야의 밤, 천년고도 경주에선 새해를 맞이하는 웅장하고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덕대왕신종의 울림과 가치를 고스란히 재현한 ‘신라대종’이 3년째 전하고 있는 경주의 새로운 전통이다. 수많은 시민들의 가슴을 울리는 신라대종의 신비한 자태 위로 수려한 필체로 쓰고 새긴 한글 현판이 보인다. 덕봉 정수암 선생의 글씨를 나무 위에 살아 숨 쉬는 듯 새겨낸 작품, 바로 서각작가 송전(松田) 최병두 선생의 솜씨다.

온유함과 엄정함, 교육자로 살아온 43년

송전 최병두 작가는 무려 43년간이나 교육계에 몸담아온 교육자이자, 3회의 개인전 및 200여 회의 그룹전에 참여한 지역의 대표 서각작가이다. 그는 7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경주 문화중고등학교에서 한 평생을 교사로서 살아왔다. 그가 배출한 수많은 제자들은 각계각층의 우수한 인재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으며, 최 작가가 정년퇴임을 맞이하던 2015년에는 제자 590여 명이 모여 그를 위한 ‘기념 서각전’을 개최, 지역사회에 가슴 따뜻한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사제지간’이란 무엇인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만드는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최 작가는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습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어미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함께 쪼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스승이 해야 할 역할은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 제 뜻을 펼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며, 제자는 그러한 스승의 뜻을 좇아 자신들의 꿈을 이뤄나가는 것이 이상적인 사제지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며, “항상 자녀에게 사랑을 베푸는 부모처럼 제자를 아끼고, 때론 엄격하게 꾸짖으며 올바른 길을 알려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해왔으며, 그러한 스승이 되고자 항상 최선을 다해왔을 따름입니다. 그저 제자들이 잘 성장해 주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라고 소회를 전했다.​

소나무 같은 마음, 대나무 같은 심성으로 묵묵히 교단을 지켜온 그는 ‘과학교육유공자 교육부장관상’과 ‘교과학습지도유공자 교육부부총리상’, ‘교육인적자원부 신지식인’ 선정, ‘한국과학재단 한국과학교사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한국사도대상’과 ‘SBS교육대상’ 등 2개 교육대상을 모두 수상한 유일한 인물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전국의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유발과 학습역량을 증진시키고, 교사들과 자료를 공유하고자 2001년 개설하고 운영한 ‘최병두 화학교실’ 온라인 홈페이지는 가입회원 7만 명, 교사회원 5,000여명을 기록하며 국내 온라인교육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작품 하나하나에 혼을 담아, 대나무에 세상을 새겨내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그가 교육자로서 공헌한 바도 훌륭하지만, 서각작가로서도 뛰어난 감각과 실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특히, 전통적인 서예 작품을 나무에 입체로 표현하는 조형작업인 ‘서각’은 단순히 어느 한 분야만 통달하는 것으로는 닿기 어려운, 여러 장르의 예술을 통섭해야 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그가 이룬 성취는 주목받을 만하다.​

최병두 작가는 구봉 김진석 선생으로부터 전통서각을, 환옹 김진희 선생으로부터 현대서각을 각각 사사받았으며,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시각을 통해 보다 깊이 있는 서각작품을 탄생시키고자 노력해왔다. 특히, 강도가 강하고, 탄성이 높은 탓에 새김이 어려워 좀처럼 서각 재료로서는 활용되지 못하던 대나무에 매료된 그는 독학으로 대나무 서각을 위한 기능을 꾸준히 연마했으며, 대나무의 재질적 특성과 형태의 한정성을 벗어나 죽각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내는 데에 성공한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 최 작가는 “서각에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혼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을 담아내는 데에 올곧은 대나무야 말로 가장 최적이라는 생각에 거의 10년 가까이 대나무에만 매달렸습니다”라며, “대나무는 다루기도 힘들 뿐 아니라, 작품을 만들고 나서도 관리를 잘못 하게 되면 갈라지고 깨지기 쉽습니다. 스승도 없이 모든 것을 스스로 익혀야 했기에 작품 인생의 대부분을 대나무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주로 경남 하동에서 나는 맹종죽을 작품의 재료로 사용하고 있으며, 대나무 반쪽으로 만든 작품이나 통대나무로 만든 투각, 반쪽짜리 투각, 죽간 입체 이어붙이기 등 기존의 정형성을 벗어난 다양한 작품을 시도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 같은 노력에 흘린 땀방울들이 모여 끝내 빛을 발했다는 것이 그의 작품 생애를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그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아카데미미술대전 등에 초대작가로 참여했으며, 신라미술대전, 경상북도서예대전 등에서 최우수상 및 우수상을 수상하여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대한민국미술대전, 대한민국서예문인화대전 등에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는 한국미술협회 이사, 아카데미미술협회 이사, 송전서각연구원을 주재하며 예술 분야의 발전에 매진하고 있다. 그의 작품 중 「군자유삼변(君子有三變)」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새겨져 있다. “군자는 세 번의 변화가 있으니, 바라보면 의연하고, 마주하면 따스하고, 그 말을 들으면 바르고 엄격하다(君子有三變, 望之儼然 卽之也溫 聽其言也厲).” 수많은 제자들을 키워낸 교육자로서, 그리고 자신만의 이상을 펼쳐온 예술가로서 최병두 작가가 보여주는 모습이 바로 이러하지 않을까. 작품 하나하나에 자신이 살아온 삶과 혼을 담아내고 있는 그의 열정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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