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가을겨울, 마음을 한층 둥글려 따사로이 돌아온 정원의 빛
봄여름가을겨울, 마음을 한층 둥글려 따사로이 돌아온 정원의 빛
  • 정재헌 기자
  • 승인 2018.10.12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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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혹서와 다가올 혹한의 사이에 온화한 시선으로 충만해진 마음을 담다”
화가 성순희 작가

[월간인터뷰] 정재헌 기자 = 내면세계에 만개한 자연의 빛깔을 반영한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연작과 <Love>연작을 비롯한 작품들로 환상적인 추상미술의 격조를 보여준 화가, 성순희 작가의 이번 가을은 ‘회귀’라는 책장을 넘기는 시간이다. 2014년 세계우표전시회 ‘우표, 예술을 품다’에서 100호부터 10호까지 다양한 작품들의 미니어처 버전을 보여주고, 뉴욕 개인전과 LA 아트쇼, 현대미술초대전을 비롯해 아시아 아트페어에도 꾸준히 작품을 선보인 성 작가는 해를 넘기고 계절이 순환할수록 지난 계절을 더욱 따스하게 느끼며 변화의 경이로움을 느끼던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10월, 변화가 유난했던 두 계절을 넘기고 전에 보았던 풍경을 되새겨보니, 엄혹한 추위를 앞두고 만개한 자연의 색조에 더욱 부드러운 미소를 보내는 화가의 일상이 거기 있었다. 

봄 / 여름

창문 밖 형형색색 이국적인 정경이 내 집 내 아뜰리에의 행복으로 영글었음에

자연을 배경으로 새와 인간이 사물과 어우러져 동화 삽화처럼 따뜻하게 소통하는 행복한 그림. 캔버스에 직접 스케치하고 겹치기와 그라데이션으로 우연히 드러난 색상을 접목하는 대범한 해석력. 현대 추상화가 갖는 메시지와 서사를 묘사하는 데 충실하며 일러스트처럼 짙은 외곽선을 그려넣어 상상력을 극대화한 화가 성순희 작가는 네 가지 계절의 테마에서 보여준 기억의 윤회를 더욱 부드럽게 덧칠하고 있다. 성 작가는 산이 상징하는 각진 형상과 빛깔을 산이 지닌 보편적 이미지로 표현하던 과거와 달리, 언덕배기와 골짜기도 산의 일부로 보면서 훨씬 둥글고 완만한 마음 속 정경으로 담게 되었다고 한다. 과거의 삶을 그림 속으로 불러낼 때, 옛 집의 흔적을 재현하기보다는 일상에서 접해도 이질감이 없는 현대적이고 이국적인 광경으로, 그리고 더 자연스럽게 나타내게 된 것도 성 작가의 화려한 작품들에 더욱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성 작가는 해외 휴양지에 어울릴 법한 이국적인 나무를 부산 명지동에서 발견한 일과, 양주의 ‘천만송이 천일홍 축제전’에서 본 진홍자줏빛 꽃의 아리따운 점들이 숱하게 아로새긴 자연의 카펫에 깊은 인상을 받아 계절의 감각을 캔버스에 옮기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작가의 마음가짐으로 과거의 사계테마를 다시 시도하고자 변화나 새로운 기법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 자연에서 늘 받아 온 영감마저 캔버스라는 템플릿(templet)과 악보에서 다른 언어와 노래로 변환되도록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 마치 아이들이 동심의 세계에서 본 것처럼 붓을 잡다 보니, 성 작가도 여행지에서 본 꽃들과 집 앞에 심은 꽃들의 만개한 웃음소리에 일상의 행복을 담게 되었다고 한다. 성 작가는 작품을 접하는 감상자들 역시 꿈속이나 여행지에서 보았을 법한 정경이라고 공감하는 데서 자신의 행복이 잘 전달되는 것 같다는 소감을 전한다. 그리고 꽃을 주제로 한 성 작가의 <여름>시리즈 중 꽃과 정물의 오브제에서 색색의 단면이 환상적으로 뒤엉켜 극적인 소네트(sonnet)를 이루고, 이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적인 중첩을 거쳐 세부로의 확장, 소통을 갈망하는 ‘그 여름 사랑’ 연작에서는 의문을 믿음으로 포용하는 이미지조형과 색조의 랑데부를 이룬다. 성 작가의 작품들은 조금씩 변화하지만, 단순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찍고, 뿌리고, 번지고, 긋는 다양한 기법으로 점과 선을 하나의 오브제로 이뤄간 실험적 추상의 단계를 거쳐, 평면적 단축 속에서 동화적 메시지로 변해 가는 현재의 온화함은 분명 감정의 확장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두 연인을 바이올린과 높은음자리표를 닮은 형상으로 엮어 사랑의 아름다움을 형상화했던 성 작가이기에, 대자연의 형상들을 굽이굽이 펼쳐진 끝없이 너른 공간에서 뒷마당 햇살 아래 화단으로 옮겨 소박한 행복으로 치장하려는 것은 가을걷이에 한창인 농부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그렇기에 예술가로서 명예보다는 자신의 캔버스에 채워진 색들이 행복의 프레임을 완성하는 골조이기를 바란다는 성 작가에게 올 훗날 삶의 황혼도, 지금의 그가 그리는 계절의 그림처럼 온화하고 훈훈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가을 / 겨울
가을 /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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