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붓만의 고전적 혜안으로, 인류의 발자취를 비추는 위대한 헌사
오직 붓만의 고전적 혜안으로, 인류의 발자취를 비추는 위대한 헌사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4.03.1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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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 걸어 온 역사성과 기록적 가치에 주목해 영원히 기록한 초상”
오동희 화가/오동희갤러리 관장
오동희 화가/오동희갤러리 관장

국내 최초의 초상화전문갤러리, 오동희갤러리 관장 오동희 화가는 그림인생 50여 년을 성화와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큰 산물인 실사묘사에 오롯이 천착한 초상화 전문예술가다. 오 화가는 라파엘로가 집대성한 ‘초상화의 대위법’인 대상인물의 마음을 읽고 삶을 요약하는 방법을 일찍이 터득하여, 서울권역에서 활동하면서도 유럽 본토의 미술박물관과 해외 갤러리의 일관된 찬탄을 자아낸 바 있다. 세계적인 정치, 종교, 경제, 문화인물과 위인의 초상화와 순교성화, 공식영정, 복원화 같은 그의 작업은, 해당 인물의 삶 뿐 아니라 진중한 창작 경로를 걸어 온 초상화가들의 관념까지도 자신의 초상화 여정에 우아하게 담고 있다. 

인물의 삶을 한 장의 화폭에 담은 듯, 기록과 예술을 겸한 초상화
니콜라이 고골은 소설 <초상화>에서 주인공 스승의 입을 빌려 “초상화를 하려면, 그저 색채만을 지나치게 외치고 소홀한 데생으로도 남의 눈에 쉽게 띄는 명암법의 유행에 홀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며 초상예술가의 올바른 본분을 소개했다. 그만큼 지난한 손작업이 필요한 정통 고전 실사초상화의 외길을 걸어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프랑스 신고전주의를 아우르는 초상기법의 미덕을 간직한 화가, 오동희 화가는 21세기 한국 대표 초상전문화가 중 하나이다. 창작을 이어가며 초상화를 전시하고 후학을 기르는 오 화가는, 개인전 8회, 국내외 단체전과 MIFA아트페어, 파리 까루젤 뒤 루브르 아트페어, 래핀예술대 러시아초대전, 베를린 아트센터개인전에 작품을 소개해 순수 국내파 화가로서 르네상스-베네치아파의 우아함을 간직한 초상화가의 명성을 굳건히 했다. 그는 과거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초상화가들처럼, 단순히 인물을 그리기보다는 단 한 장에 역사를 다각도로 기록하는 작업으로 캔버스를 채워 왔다. 정치적 영향력이 높은 인물을 자주 그린 브론치노가 그러했듯 오 화가도 평생의 과업인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초상화작업을 비롯해, 한국무역협회 역대 회장단 초상화, 반기문 UN사무총장, 엘리자베스 여왕, 포드 대통령부부초상처럼 기록물의 가치가 있는 작품을 많이 그렸다. 그리고 메리시 드 카라바조와 트로피메 비고의 성향처럼 고결한 성인과 종교지도자의 초상을 시도해 천주교 수원교구 어농성지 표준영정 순교자초상화복원과 같은 대작 활동을 해온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 마더 테레사, 법정스님 등 종교 지도자와 김수환 추기경 공식영정으로 철저한 데생 실력에서 비롯된 인물묘사의 완벽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한국과 서양의 초상기법 모두 섭렵, 표정에도 품성 담는 기법 능해
지난해 서울국제아트엑스포에서 선보인 부스전에서도, 오 화가는 축약하되 정확하고, 재해석하지만 사실적이며, 성격과 내면을 균형 있게 조율하는 화풍으로 표현력의 극사실주의를 보여주었다. 젊은 시절 의약학 분야에서 일한 그는 골격과 근육, 골상학 등 인체역학 지식도 꾸준히 쌓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개인적으로 연마한 데생과 한국화 세필선묘 기법으로 눈썹과 속눈썹, 머리칼의 차이를 세심하게 묘사하며, 서양의 플랑드르-부르고뉴 시대의 매혹적인 궁정초상화와 일체화시킨 그만의 초상기법도 만들었다. 콧대와 눈썹, 입술선만으로도 인물의 성품과 희로애락을 묘사할 줄 아는 그는 수묵채색 세필기법으로 약천 남구만 선생의 문중영정초상을 비단에 그려, 다른 물감을 사용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의 원칙을 한국화로도 재현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또한 인물의 역사성을 기록하고자 초상화라는 장르의 역사를 따라 대가들의 화법을 연구하여, 귀도 레니처럼 자유롭고 경쾌한 화법으로 현대 음악가들의 생기 넘치는 초상을 그렸으며, 사실적 풍속화의 인물묘사에 능한 루벤스와 반다이크처럼 오랜 붓터치의 연륜을 통해 얼굴에도 시대적 가치관을 불어넣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특히 지네브라 칸토폴리처럼 수많은 습작으로 얼굴선, 머리모양, 의복의 주름까지 살리며 배경을 단순화하는 기법은 유럽갤러리가 오 화가에게 관심을 보여준 요인이기도 하며, 인물에 집중하되 정통파를 계승하면서 이국적이고 비범한 성향을 넣은 것도 그를 주목받게 했다. 이러한 그의 고전성은 초상화가 역사성과 기록가치를 겸비한다는 미덕을 최초로 제시한 라파엘로, 행위와 업적에 대한 인물의 암시를 담은 미켈란젤로의 흔적을 그리워하는 고전 애호가들로부터 오 화가가 끊임없는 지지를 받는 요인이기도 하다.

따뜻한 신(新) 고전주의 계승자, 문헌고증과 실존 위인 초상에 헌신
초상화는 사람의 영혼이 실린다는 중세의 속설에 따라, 왕실과 종교가 동시에 존중한 장르다. 아울러 그 무게감과 책임감 때문에, 고전 중에서도 작가의 내공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해석과 재현이 중요한 예술이기도 하다. 이렇게 막중한 의무를 지닌 초상화가로서 “어떠한 인물을 선택하든, 그가 인생을 걸어온 길을 사진과 문헌으로 되짚으며 화가의 관점으로 재구성하려 한다”고 말하는 오 화가는 특유의 우아하고 매혹적인 화풍으로 감동을 주는 동시에, 초상화라는 뚜렷한 정체성을 통해 스스로의 인생을 말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독학으로 시작해 환갑을 넘어 홍대 미대에 진학해 서양미술을 전공한 후에도, 그는 매일 드로잉, 크로키, 채색까지 캔버스와 소통하는 수단인 손이 굳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것만이 대상의 삶을 경배하는 왕도라 믿는다. 그렇기에, 인물의 고귀한 삶을 탐색해 들어가는 조사와 문헌고증을 통해, 인물을 재현하는 그의 작업은 존재 자체로 깊은 감동을 준다. 미학과 미술사, 인체와 역사를 아우르는 그의 통찰력은 500호 대작 구인사 1대 상월원각대조사 큰스님, 정광수 바르나바와 윤운혜 루치아 순교자부부 영정초상처럼, 자료가 충분치 않아도 전문가의 고증만으로 고결한 실존인물의 삶에 근접하게 묘사해야 한다는 고난도 작업에서도 빛을 발한다. 베네치아계의 우아하고 교양 있는 초상부터 플랑드르파의 꼼꼼한 표정묘사까지, 오 화가는 유럽 대가들이 정성껏 꽃피우고 수집가들의 컬렉션과 박물관에 잠든 초상화의 신고전주의를 한국 땅에서 충실히 부활시킨 예술가다. 오 화가의 화풍은 ‘기술이 완성되어야 예술성이 시작된다’는 예술적 헌신과 ‘실존인물을 향한 미술’인 초상화라는 장르의 공감각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상징하는 귀중한 보물 지도요, 유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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