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구상과 추상, 폭넓은 소재와 주제로 붓을 든 철학자
자유로운 구상과 추상, 폭넓은 소재와 주제로 붓을 든 철학자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4.02.21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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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는 것은 자연과 인생을 넘나드는 보물찾기”
서양화가 박월미 작가
서양화가 박월미 작가

지난해 11월 인사동 가온갤러리에서 개최한 서양화가 박월미 작가의 개인전 <Minds in Color>는 ‘메신저와 붓’의 관계성에 스타일리시한 매력을 충분히 담은 전시였다. 미국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프랑스 파리와 독일 등에서 미술을 깊이 접하며 다양한 예술과 문화, 종교와 철학에 두루 조예가 깊은 박 작가는 기독교와 고대 그리스철학에서 인간과 신의 끝없이 이어가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느껴진다고 한다. 이런 자신이 걸어온 종교적 문화적 경험의 심화과정에서 미술에 몸담게 된 화가이다. 색채기법을 연마하면서 구상과 추상의 교집합, 뜨거운 추상의 합집합을 자유로이 추구하고, 아날로그적 소통으로 더욱 소중한 삶과 자신의 내면을 주제로 보물찾기하듯 손수 색과 색을 덧입히는 그의 작품세계를 소개한다.
 
변화하는 현실 속 불변의 진리를 찾아 보편적 이상을 추구하다

논리와 윤리적 방법론의 아버지, 고대 그리스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서양화가 박월미 작가는 기독교인으로서 “현실은 늘 변화한다, 그러나 보편적 진리는 불변이며, 인간은 누구에게나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이상의 세계를 추구한다”는 종교적 철학을 정립하고 그림을 그린다. 그에게 삶이란 신이 주신 달란트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찾는 과정이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수학 중 프랑스 파리 아메리칸대학에서 회화과정을 수료하기도 한 이력의 박 작가는 구상화가이면서 추상화가요, 뜨거운 색면추상이면서 사물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구상처럼 열린 창작을 하는 작가다. 그는 미국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하려다가, 입학 인터뷰 과정 중 교수의 질문으로부터 특수교육의 필요성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나는 누구인가”를 설명할 줄 알아야 비로소 남의 인생을 도울 준비가 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원래 자신이 원하던 것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잊혀진 자신을 만나고 그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절실함으로 미술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것이다. ‘나와 너’, ‘현실과 이상’을 만나는 계기를 만들고자 그는 정석대로 색을 쓰는 서양화로 시작해 그는 커다란 붓을 들고 추상화에 열정을 바치기도 했지만 사실 영감에 따라 드로잉과 구상, 추상을 다양하게 시도하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추상 중에는 뜨거운 추상과 단색의 색면추상이 주를 이루지만, 그는 연장선과 답습보다 언제던 새롭고 색다른 스타일에 늘 도전해보고 싶다고 한다. 유학 시절, 독일의 세계적 거장인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전시에서 한 사람이 여러 작업스타일을 지닌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고, 특정 스타일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움의 혜택이 예술의 긍정적인 측면으로 공감하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구상 속 추상, 추상 속 구상, 편지이자 그림, 이 모든 감수성

“미술적 유산들이 워낙 훌륭하기에, 현대의 미술가들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나무를 과감히 접붙이기 하는 농부처럼 축복받은 존재다. 물론 창조는 구도자의 숙명으로, 유학시절 작가들끼리 서로의 작품을 비평하는 순간도 당시는 힘들었지만, 붓을 쥐는 마음근육을 키워준 순간이었던 것 같다”며 박 작가는 어려운 창작과정을 견뎌냈다고 한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빨리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없이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만큼 천천히 구도자의 길을 가듯이 인간의 삶 속에서 추상과 구상을 자유로이 융합해서 표현했다. 추상이라도 구상을 나타내듯 차분해서 차가운 추상과는 거리가 멀고, 구상이라도 철학적 주제에 따라 자유롭고 다양한 소재와 기법을 도입한다. 그의 시그니처로 불리는 <Letter>시리즈는 이러한 구상과 추상의 합집합이다. 모든 색을 덧입히고, 종이와 가죽, 금속 재질로 보이게 채색하고, 화면을 X자 봉투뒷면처럼 사실적으로 구성하고 내부를 판타지처럼 채색한 이 종합선물세트들은 편지의 추상이자 구상이다. “편지는 인류의 귀중한 소통법이고, 안부와 정보전달을 하면서도 마음 정화까지 가능한 교류수단이다. 글도 담을 수 있지만 차마 전하지 못한 마음, 너무 간절해 글로는 전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행간으로 담긴다. 이 시리즈는 사람의 마음을 화가에 빗대 글은 편지로, 봉투는 캔버스로 재치 있게 은유된 이야기들이다”라고 말하는 그는, “나에게 추상이란 너무 치우치면 먼바다만 보이는 것 같고, 구상에 치우치면 바다에 살고있는 물고기만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 작가의 감성까지 표현해 줄 수 있다면 더 좋지 아니한가”라고 역설한다. 
 
소중한 보물찾기를 떠나는 이들에게 보여주는, 발자국 선명한 길

박 작가가 개인전 <Minds in Color>에 소개한, 피아노 건반으로 구성하며 구상적 추상을 표현한 <가을소나타2>, 탈속의 다양한 표정들을 실사처럼 그린 <웃고의 미학>은 구상과 추상의 경계가 모호해도 주제 의식을 강하고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음을 아리스토텔레스식으로 증명하는 그림들이다. 구상의 추상을 더욱 자유롭게 구사하고, 다루는 소재와 주제의 폭을 넓히겠다는 바람은 <자화상>의 마스크를 쓴 모습에서 볼 수 있고, “내 그림에는 현실에선 불편한 소재도 있겠지만 직설적인 요소 대신, 희망과 유머의 공존으로 가급적 편안하게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그의 감성과 메시지까지 느낄 수 있다. 유화에서 아크릴로 바꾸고, 고된 100호 이상의 작업을 미리 컴퓨터로 밑작업할 수 있는 디지털시대의 축복 속에서도 그는 서두르지 않고, 신이 이 세상을 일주일 걸려 창조했듯 캔버스를 짜고 젯소를 칠하며 색들이 화합하는 과정을 천천히 지켜보는 것이 화가로서 누리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한다. “적나라한 묘사가 아닌 내면의 위로와 잔잔한 웃음의 첫 단추를 끼워주고자 한다. 항상 작품소재라는 보물찾기를 하다 보면 지나온 궤적이 모두 한 장 한 장의 그림이 되어 있다. 그렇게 지나온 길이 잘못은 아니란 생각으로 용기 있게 캔버스를 대한다.” 
박 작가는 신이 주신 자연의 만물과 살아 있는 이들의 수고와 감성이 있는 한, 바로 이 “내가 걸어 온 길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마음이 그림에 생명력을 주는 샛길이라고 한다. 삶과 자연과 예술을 가슴으로 사랑하며, 모든 뜨거운 생명과 빛나는 아름다움에 긍정과 유머를 더한 감성의 작가가 되겠다는 그는, 올해 5월 코엑스 아트페어와 10월 인사아트갤러리 개인전을 위해 작품에 매진하는 중이다. 더 많은 그림을 그려 해외전도 다녀오겠다는 박 작가의 ‘보물찾기’는 그의 바람처럼 언제나 해피엔딩 쪽으로 열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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