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결 같은 풍경의 기억, 고이 보듬어 살아있는 자연 그대로처럼
꿈결 같은 풍경의 기억, 고이 보듬어 살아있는 자연 그대로처럼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4.01.19 1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용한 은둔자의 눈으로 영롱한 햇살에 비친 자연생명들에 경의를”
서양화가 서세레나 작가
서양화가 서세레나 작가

억겁과도 같이 먼 우주공간에서 온 빛이 기지개를 켜면, 어둠이 개이고 햇살 아래 자연이 피어난다. 꽃, 풀, 개울, 나무 모두가 맑고 영롱한 이슬을 맞아 빛나는 자연의 아침. 리얼리즘도, 인상파도, 아니 어떤 예술 사조라 할지라도 삼원색에 기반을 둔 예술은 무엇이든 빛의 찬란함 아래 늘 본연의 색을 드러내리라. 서양화의 사실주의를 흔히 차갑다고 말하지만, 똑같은 찰나를 기록할지라도 그림은 기억과 감성을 조화시켜 면을 채우는 작업이기에 그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온기가 칠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풍경화에 강한 유화 중심의 서양화가,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살아있는 자연현상과 풍경을 서로 조화시키는 서세레나 작가의 그림에 깃든 온기는, 모두 따뜻하고 생생한 저 햇살로부터 왔다.

찬란한 생명력으로 빛나는 자연을 서양 물감과 동양 감성으로
서양화가 서세레나 작가는 유화로 사뭇 사실적인 화풍을 선보이는 풍경 전문화가다. 그의 그림은 노랑은 노랗게, 파랑은 파랗게, 구름과 풀과 나무와 꽃은 모두 본연의 모습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바람을 맞는 풀의 결도, 문득 드러난 꽃술의 섬세함도 사실주의 자체지만, 의외로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동양적 다감함과 서양의 명확함이 조화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형태는 서양철학사를 탐색하다 공자로부터 답을 찾은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 문체에서도 볼 수 있는데, 서 작가의 풍경 시리즈는 그가 평소 존경하는 손응성 화가처럼 서양유화로부터 색감과 터치 면에서 한국화의 정서를 조화시려는 노력에서 나왔다. 최인호 작가로부터 “서양화지만 조선의 빛깔과 영혼을 추구한 화가”로 불릴 만큼 정적인 서양화와 자연스레 배어든 동양적 느낌, 감성을 살리는 표현법으로 정점을 찍은 손 화가의 표현법 중, 서 작가는 정밀한 묘사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요소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해 인사동 인사아트플라자 갤러리 개인전에서도 보였듯, 그가 추구하는 바와 그림의 메시지는 바로 “그림의 방향이 자연과 그 햇빛과 함께 자연의 빛을 어떻게 묘사하는가”에 대한 관심과 다양한 시도다. 시종일관 ‘자연은 찬란한 생명’이라는 긍정적 메시지를 전하며, <자연으로의 산책>, <내면의 울림>, <파리의 꿈>이라는 테마전으로 자신의 그림을 소개한 서 작가는 어릴 적부터 그림과 함께하며 자연스레 화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시와 그림, 노래에 뛰어난 부친을 어깨 너머로 바라보며 그림을 일상으로 여겼고, 붓을 들어 따뜻한 풍경을 그리는 것에 행복을 느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창밖으로 바라보는 풍경처럼 온화한 목소리를 지녔다. 

인고의 시간마저 위로가 되는, 자연스런 정서와 그림의 추억
청색회, 일원회, 서울작가회 회원이자 한국현대미술작가연합회 평택지부장인 그는 햇살 가득한 인상파보다는 실사에 가까운 편이다. 자신만의 감성으로 색을 쓰고 평소 접하는 산과 계곡, 돌들과 그 사이로 비추는 물방울처럼 영롱한 햇빛의 조화를 가장 ‘생명스럽게’ 아름다운 색으로 입히는 것이 좋았다는 그의 ‘유리알 유희’는 풍경 구성물 간의 조화에서 나온다. 이처럼 각 주제별로 탄생하고 조화를 이룬 풍경들을 연결하면 그의 추상적 자연풍경 시리즈가 나온다. 그림의 세계에서는 은둔자요, 조용한 탐험가인 그의 삶은 의외로 역동적이고 부침이 많아 고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삶을 보듬고 어루만져 준 그림이기에, 혼자만의 외롭고 고독한 시간과 때로는 여명을 홀로 맞는 순간마저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반면에 혼자 붓을 들고 무언가를 만들고 표현하는 과정은 지난하고 힘겨운 관문이기도 하다. 과거로부터 쌓아 온 마음의 느낌과 상황에 따라 같은 사물도 다르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체력적으로 고되어도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그림처럼 영롱하고 개운한 아침을 맞거나, 조금만 그려도 눈이 침침하고 피로한 까닭은 이러한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이 변수들 때문에, 그에겐 캔버스 앞에 앉는 작업이 결코 틀에 박히거나 지루하지 않다. 그러니 대학에서 강의하고, 가정에서 주부로 열심히 살면서 그림을 벗 삼은 서 작가의 다소 서툰 자기PR실력은, 오히려 그림을 통해 그의 성실함을 읽어나가는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자연의 매혹적인 생명윤회, 구상화의 공식으로 해외 풍경을 담다
서양화, 특히 유화는 ‘기다림’의 그림이다. 수정은 쉬우나 말리고 마감하는 과정이 수채와 아크릴보다 길다. 그는 “자연은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유화를 한다. 모든 것이 순간 멈춘듯하나 구름 하나 지나면 명도와 채도가 바뀌고, 바람의 방향, 빛의 각도에 따라서도 미묘하게 바뀌는 것이 자연의 매력이다. 그래서 이 자연의 섭리를, 살아있는 세상을 그리는 짜릿함이 이 지난한 기다림을 버틸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그는 비구상과 반구상의 장점을 알면서도, K-아트가 정통 구상 사이에서 비구상 애호가들을 끌어들여도 아직은 좀 더 구상으로 풍경을 그려 사람마음을 어루만지고자 한다. 또 그림을 향해 “자연에서 영겁의 세월이 지나도, 그 생명들의 윤회는 무언가 가까이 만지고, 느끼고,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경탄을 보낸다. 그리고 표현기법에서 동양적 묵상과 감수성을 더해, 한국적이면서도 조용한 느낌의 터치로 나타낸다. 그는 이러한 작품 감성을 주로 산, 들, 바다와 모든 자연 답사에서 얻는다. 작가의 주관은 오직 좋은 구도에서 나오며, 그는 시리즈에 적합한 환경을 사진자료로 남겨 특정한 시리즈를 구성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풍경들은 일관성, 온화함이라는 그의 주관을 보여주며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전한다. 2024년, 서 작가는 백인전을 비롯한 전시와 10월 인사동 루벤갤러리 개인전을 준비하며 새해를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그간의 여행기록을 찾아, 국경 밖 몽골과 스위스 풍경을 자신의 작업실에서 펼치며 끝없이 탐구하고 노력하는 화가가 되겠다는 그는, “불확실한 시대의 영원한 안식처인 자연을 동양적 감수성과 영롱함으로 묘사하며 마음을 보듬는 작품을 기대해 달라”고 덧붙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