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울림으로 오랜 여운을 주는 서양화가 이영란
깊은 울림으로 오랜 여운을 주는 서양화가 이영란
  • 임승민 기자
  • 승인 2023.12.20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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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이영란
서양화가 이영란

이영란 화가는 다소 늦은 나이였던 마흔 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31년이 흘러 수많은 개인전을 열고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작가로 거듭났다. 
“마흔이 되던 해에 언니가 화구를 사주었어요. 그 전에는 공예와 도예를 해왔었죠. 그런 저에게 언니가 선물해 준 화구는 삶의 변화를 가져다 주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 화구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강원도미술대전에 제출할 연꽃을 그리는 데 갑자기 저도 모르게 가슴이 막 떨려왔어요. 그 희열을 생애 처음으로 느꼈어요. 그리고 알았죠. 이 길이 앞으로 제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요.”
가슴 떨림을 경험하고 미친 듯이 화가의 외길을 걸어온 이영란 화가는 이후 교육대학원에서 아동미술교육 전공으로 대학원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정수모 지도 교수의 도움으로 프랑스 파리 연수를 가게 된다. 그리고 이후 독일 함부르크 환경청 초대 개인전, 러시아 카잔에서 한러수교 25주년 기념 초대 개인전 등 300여 회의 국내외 단체전에 참여하며 중견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그림으로 표현하고 승화시킨 작가의 마음, 그리고 삶
이영란 작가 첫 번째 개인전의 소재는 승무였다. 이 작가는 단순히 승무를 그렸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자신의 소갈머리와 감정을 표현하기에 승무가 가장 좋았다고 했다. 승무의 장삼자락을 보면서 시간과 공간의 공허함을 느낄 수 있었다는 이 작가는 장삼자락이 날릴 때 그 모습이 어떤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좋았다고 말한다. 
“그림이 원래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그림에 나를 투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화상은 아니지만 저 속에는 내가 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제 안의 무언가를 억압하며 누르기만 해왔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폭발해서 그림을 그리게 된 것 같아요. 내 그림은 지독한 나의 내면이고 승무는 다른 차원에 갇힌 나 자신을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는 소재였죠.”
그리고 지난해 10월 원주문화원에서 이 작가는 20번째 개인전 ‘弄絃(농현)’을 열었다. 캔버스천에 아크릴과 패브릭 물감을 사용한 500호짜리 작품 4점을 비롯해 옻칠한 한지 위에 금분 자개 운모를 재료로 사용한 작품 16점 외에도 다양한 설치 및 유리공예 작품 등을 선보였다.
‘거미줄 작가’로 알려진 이 작가는 “거대한 사회의 그물망은 흡사 거미줄 같아요. 한순간 거미줄에 걸려 먹잇감이 될 수도 있는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며, 끊어진 거미줄을 뒤로 하고 여유롭게 날아오르는 나비를 화폭에 담은 것은 제 자아 속 자유에 대한 의지와 갈망을 표현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였던 걸까. 당시 개인전을 관람한 주부들 중에서 눈물을 글썽이면서 ‘나 자신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작가의 그림이 주는 울림은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오랫동안 깊은 울림을 주는 그림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이 작가의 삶의 연륜과 삶의 가치가 고스란히 반영됐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제 원동력이에요. 산자락 끝에 있는 청정지역이다 보니 여름이면 늘 반딧불이가 방으로 날아 들어오고 개울 낀 작업실에는 거미줄이 쳐저요. 한밤에 거미줄을 손전등으로 비춰보면 정말 아름다워요. 내일 아침에 또 보려 하면 이미 사라져서 찾을 수가 없고요. 거미줄 작가로 알려진 건 자연 속에 있는 작업실이 치유와 창작의 공간으로 내면의 모든 것을 끄집어 내어 자연과 소통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얀 캔퍼스에 그려진 그림은 어떤 사람에겐 위로가 되고 어떤 사람에겐 희망이 되고 어떤 사람에겐 감동을 준다. 그래서 그림은 그리고, 보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과 여운을 남기는 이 작가의 그림은 그래서 더욱 값지다. 
 
지역 예술문화의 공간 ‘송계 아트 스튜디오’
예전의 원주는 말 그대로 문화 소외 지역이었다. 그리고 이 작가는 지역을 위한 한 가지 꿈을 꿨고 그 꿈은 현실이 됐다. 송계 아트 스튜디오를 세운 것. 이곳에서 해마다 작은 이동 마술관을 열어서 바꾸려고 노력했다. 또 스튜디오에서 지역 여성들과 도예 수업을 하기도 했고 현재는 인생 나눔 강원지역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지역 예술문화에 힘쓰는 것은 제가 일정 부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지역의 예술문화를 위해 힘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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