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면역학 발전 이끈 연구자, 거부반응 없는 이종 장기이식 가능성 열어
한국 면역학 발전 이끈 연구자, 거부반응 없는 이종 장기이식 가능성 열어
  • 임승민 기자
  • 승인 2023.12.2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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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성회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성회 명예교수

질병이나 사고로 기능이 떨어지거나 소실된 장기를 신체 내 장기나 타인에게서 받은 장기로 대체하는 기술인 ‘장기이식’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의료 절차에서 최후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장기이식 대상자에게 적합한 장기의 기부자가 때맞춰 나타날 확률이 극히 적기 때문이고, 초기에는 수술 자체와 관련된 합병증이나 급성거부반응이 발생할 우려, 후기에는 거부반응이나 면역억제 약제 관련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장기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이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장기이식이 말 그대로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이종 장기이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당연히 뜨거울 수밖에 없다. 인간이 아닌 동물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한다는 개념 자체가 등장한 것은 1980년대로 꽤 오래되었다. 1983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36주 된 아기에게 개코원숭이의 심장을 이식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심장 이식 환자는 수술 후 20일가량 생존했다. 현재는 돼지 이종 이식 연구가 활발하다. 지난 2022년 1월 첫 이식 수술 성공 이후, 잇따라 관련 연구가 누적되고 있으며, 지난 9월에는 미국에서 두 번째 돼지 심장 이식 환자가 등장했다. 물론, 첫 이식 환자의 경우 6개월 간 생존 끝에 사망, 두 번째 환자는 6주 만에 숨을 거뒀으며, 이는 이종 장기 이식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되어왔던 ‘거부 반응’을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 주된 원인이라 밝혀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종 장기 이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낼 수 있는 연구를 오랫동안 이끌어왔으며, 그에 대한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내보이고 있는 인물이 있어 이목이 집중된다. 대한민국 면역학 분야의 권위자이자 선구자로 불리는 서울대 의대 박성회 명예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면역학 연구에 일평생 매진, 선구적 성과로 전 세계 이목 집중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성회 명예교수는 1975년 서울의대를 졸업, 미국 하버드대 다나-파버 암센터에서 면역유전학을 연수, 서울의대 병리학 교수로 재직하며 면역학 연구에 오랜 시간 매진해왔다. 특히, 2011년 당뇨병에 걸린 원숭이에게 돼지 췌도 이식을 성공시킨 연구 성과를 거둔 바 있으며, 다른 종 간 장기이식에서 면역억제제 투여를 중단하고도 거부 증상이 없는 업적을 거둔 것은 박 교수가 세계 최초로 달성한 성과다.
그는 서울의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대한면역학회 회장, 서울의대 특수생명자원센터 소장, 병리학교실 주임교수를 지냈으며, 우수한 연구업적으로 화이자의학상(1976), 에밀 폰 베링 의학대상(1999), 대한민국학술원상(2001) 등 다양한 학술상을 받았다. 특히, 2012년에는 서울대학교가 각 분야에서 우수한 성과를 내는 학자에게 수여하는 ‘글로벌창의선도 연구자’로 선정되었으며, 2013년 2월 정년퇴임이후에도 서울대학교 석좌교수로 임용되어 계속해서 연구에 매진해왔으며, 후학 양성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앞서 언급한 2011년 연구의 경우, 기존 이종 간 췌도 이식 사례보다 월등히 뛰어난 결과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당뇨병 원숭이에 부작용 없이 돼지 췌도를 이식하여 6개월 이상 성공적으로 정상 혈당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췌도 이식 4개월 후 모든 약제의 투여를 중단했음에도 이식거부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해외의 경우 원숭이에 4~6종의 면역억제제를 투여하여 6개월 이상 혈당을 유지한 2번의 연구사례가 있으나, 이들 연구에서는 지속적인 약물 투여로 실험체 중 각 1마리씩만 성공했을 뿐이고, 나머지 원숭이들은 감염, 전신쇄약 및 폐혈관이 막히는 부작용이 발생하는 등 사람에게 적용하기에는 불안정성이 높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박 교수 연구팀의 연구결과는 이식받은 조직에 대한 거부반응만을 선택적으로 제어하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이종이식’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남아있는 소아 당뇨병, 그리고 진행되어 합병증 유발 위험이 있는 모든 성인 당뇨병 환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았다. 연구 데이터를 근거로 추정하기론 적어도 1~2년은 그 효과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보다 연구가 더 진행되면 평생 효과가 지속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되었던 바다. 뿐만 아니라, 사람 간의 간, 신장 등 동종이식에 적용할 때에도 기존의 면역억제요법에 비해 부작용을 크게 완화하고, 일정기간 후 면역억제를 완전히 중단하더라도 이식거부반응 없이 이식장기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아울러 이러한 성과에 박성회 교수가 개발한 새로운 면역조절항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로써 이종 간 장기이식을 통한 당뇨병 치료에 있어 혁신적인 터닝포인트를 마련한 것 뿐 아니라, 유전자형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골수이식이나 줄기세포 이식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성과에 대해 세계이종이식학회 에마누엘레 코지 회장은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유럽연합(EU)·미국과 함께 세계 이종이식 분야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박성회 교수 연구팀의 연구결과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만큼, 이전보다 전폭적인 지원과 연구, 그리고 본격적인 사업화를 위한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특허 항체 ‘JL-1’ 개발, 급성 백혈병 치료의 새로운 활로 모색
서울의대 병리학교실 박성회 교수팀과 바이오벤처기업 다이노나㈜의 협업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계속되었다. 1993년 박성회 교수팀의 연구성과를 발판으로 계속된 연구가 2005년 ‘급성백혈병에 특이적으로 발현되는 항원 및 항체를 이용한 백혈병 치료법’의 상업화를 위한 다이노나㈜와의 기술이전 계약 체결로 이어졌으며, 지속된 공동개발 끝에 2013년 ‘범부처신약개발사업(KDDF)’ 선정까지 연결된 것이다. 연구사업 및 과제명은 ‘범부처전주기신약개발사업-급성백혈병에 대한 신규 항체치료제 DNP001의 임상 1상 개발’로서, 2014년 9월부터 2016년 7월 말까지 임상 1상이 추진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사업주체는 ‘다이노나’가 맡았고, 정부와 회사가 각각 20억2000만원씩 연구비를 댔다.
이 연구사업에 이목이 집중됐던 까닭은 당시까지도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던 급성백혈병의 치료에 대해 확실한 대안이 되어줄 것이라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소아 급성백혈병의 경우 약 70%에서 완치되나, 성인 급성백혈병은 매우 공격적이고 독성이 심한 화학요법으로 치료를 시도하고 있음에도 그 치료효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매년 미국·유럽에서 2만 명 이상의 성인이 급성백혈병으로 진단되고 있으며, 한 해 동안 미국에서 발생될 것으로 예측되는 약 3만5000여건의 백혈병 중 50% 이상이 급성, 2/3가 성인에서 발병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성인 급성백혈병의 진단 후 3년간 생존율은 20% 미만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성인 백혈병의 80% 이상이 급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에 대한 항체 치료제는 와이어스(Wyeth)社의 Mylotarg(Antibody-toxin 복합체)가 유일했지만, 항체의 활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chemical toxin을 고용량으로 사용할 수 없으며 제한된 수의 환자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박 교수 연구팀의 항체 치료제 ‘DNP001’은 1993년 박성회 교수가 세계 최초로 가슴에 있는 면역기관인 흉선에서 발견한 특허물질 ‘JL-1’을 기반으로 개발된 것으로, 성인 급성백혈병의 약 90%에 적용할 수 있고, 소아 백혈병 중 항암치료로 완치되지 않은 환자의 70~80%에서 적용이 가능하다. 앞서 쥐를 이용한 전임상 결과, 암세포의 1/20 정도가 감소된 것으로 확인돼 80% 이상에서 질환 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분석된 바 있으며, 해당 국책 연구사업에서는 국내 대형병원에서의 본격적인 임상절차를 시행, 신약 개발과 사업화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계획됐다.

은폐와 기만, 특허 탈취로 얼룩진 연구사업
문제는 이 부분에서 발생했다. 사업주체인 ‘다이노나’사가 약품 원료에 돌연변이가 발생했음에도 임상시험을 강행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해당 기업은 이를 숨긴 채 1년 이상 백혈병 환자들에게 임상시험을 진행했고, 이를 감독부처에 보고하지도 않았다. 
2023.08.18.일자 경향신문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14년 9월부터 임상시험을 수행해 온 다이노나는 8개월 뒤인 2015년 5월 백혈병 환자에게 투여한 임상시험용 의약품이 돌연변이가 발생한 항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나, 이후에도 시험을 중단하거나 관계기관, 시험 참여 환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2016년 7월까지 임상시험을 이어갔다. 기업 측에서는 당초 계획했던 최대 37명의 임상시험 환자 수를 17명까지만 진행했으나, 식약처와 국가신약개발재단에는 ‘유효성 부족’으로 사유를 보고 했고, 시험의 연구책임자인 정재천 교수(당시 다이노나 연구소장 겸직)는 자신의 명의로 제출된 보고서에서 시험 진행 과정에 대한 상세한 내역과 중단 사유를 적었으나, 시험용 의약품에 돌연변이가 발생한 사실은 넣지 않았다.
이 돌연변이 발생 건은 다이노나와 기술이전 계약을 맺은 중국의 한 바이오기업을 통해 처음 발견됐다. 사건을 보도한 언론사에 의하면, 해당 중국기업이 다이노나에 보낸 e메일, 그리고 기업 대표와 정재천 교수가 주고받은 e메일 등을 통해 다이노나가 2015년 5월 27일 돌연변이 발생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이후에도 임상시험은 중단되지 않았으며, 2016년 8월 12일 범부처사업단에 제출된 연구보고서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식약처, 임상시험 중이던 병원에도 통보되지 않았으며, 2015년 가을에 있었던 코스닥 상장 심사나 추가 펀딩을 위해 열렸던 2016년 기자회견에서도 거론되지 않았다.
아울러 2023.08.14.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DNP001의 원천기술인 ‘인체의 피질흉선세포에 표현되는 단백질(약칭 JL1)’의 개발자인 박성회 교수는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뒤, 각계에 ‘진상규명’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당시 중국기업의 e메일 수신인에서 배제됐던 박 교수는 잇따른 상황에서 미심쩍은 정황을 발견하고 연구책임자인 정 교수를 추궁한 끝에 2016년 4월 8일에서야 해당 메일을 공유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박 교수는 즉시 임상중단을 지시했고, 연구는 결국 그해 7월 별다른 성과 없이 조기 종료됐으나, 기업 대표와 정 교수는 여전히 서로 책임을 미룰 뿐이다. 또한, 조사 결과 기업 대표와 정재천 교수가 공무하여 JL-1, MD-3 등의 특허를 탈취하는 등의 기만이 있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더 많은 이들의 행복을 위해, 다시 서다
현재 다이노나社는 타 기업에 인수·합병되어 사라진 상태고, 해당 관계자들은 모두 회사를 떠났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조사를 요구하고 있으나, 관계자 측에선 ‘심각한 부작용은 없었다’, ‘절차 상의 문제였을 뿐’, ‘공소시효 지났다’는 등의 변명만 늘어놓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해당 연구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 박성회 교수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며 심경을 토로했다. 가족들이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았었기에, 아내 또한 당뇨병으로 고통 속에 놓여있기에, 더 많은 사람들을 그러한 고통과 위협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수행했던 자신의 연구가 되레 사람들을 헤친 것은 아닐까하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연구에 매진해왔던 본래의 뜻을 잃지 않은 박성회 교수는 힘을 내 다시금 일어서고자 결심을 굳혔다. 박 교수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연구가 이대로 불명예스럽게 사장되지 않도록, 뜻을 함께할 수 있는 다른 이들과 함께 다시 한 번 연구팀을 구성해서 계속 연구를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불법적인 특허 탈취 건의 경우 소송을 통해 일부를 회수할 수 있었으나 여전히 상당한 특허가 남아있는 상태이며, 이에 대해 계속된 소송으로 많은 이들의 땀과 노력이 깃든 연구가 다시 본래의 길에서 그 목적을 다할 수 있도록 힘쓸 생각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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