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폴리탄의 눈으로 본 단색화와 그래피티적 추상표현주의, ‘생추상’
코스모폴리탄의 눈으로 본 단색화와 그래피티적 추상표현주의, ‘생추상’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3.12.20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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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드럼을 치는 융합현대미술, 생추상 창시자의 스트릿정신 즐겨주길”
고성만 화가
고성만 화가

`90년대 서태지와 듀스가 K-힙합 이스트/웨스트코스트를 도입하고 정규방송에 진출할 때, 아트디렉터로 미국 본토 브롱스 할렘가를 누볐던 힙합 앨범재킷&콘셉트디자이너 고성만 화가는 30년 만에 귀국해 코스모폴리탄의 삶을 바탕으로 新표현주의 생철학미술, ‘생추상’을 창시했다. 기법 상 동양 단색화와 서양 추상표현주의 그래피티를, 그리고 한국의 색동과 미국 힙합을 적극적으로 콜라보해 온 그는 이 ‘적당히’ 상업적이며 ‘치열한’ 삶의 생동감으로 충만한 장르가 어떠한 문화 전유현상 없이 자유로운 공간에서 펼쳐지길 바란다. 지난 11월 개인전 <생추상>전은, 이러한 그의 관점이 생생히 드러난 힙합 퍼포먼스전이기도 하다. 

<생추상(Living Abstraction)>, 색채 밖의 존재와 인생에 대한 추상화

지난 11.1-7일에 걸쳐 ‘생추상’ 창시자 고성만 화가의 <생추상(Living Abstraction)> 전이 인사동 아트불에서 개최됐다. 이 전시는 21세기 문화적 디아스포라 현상에 동참한 K-유행 흐름 앞에서 한국창작자들이 가져야 할 이상적 방향성을 보여준 이벤트였다. 그는 자신의 단색화와 생추상의 다채로운 콜라보레이션을 MC홍바와 래퍼 VIN:O의 퍼포먼스와 함께 선보였다. 고 화가의 예술기반은 수많은 현대예술가들처럼 뉴욕에서 시작되었지만, 캔버스 밖에서 싹을 틔웠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90년대 뉴욕에서 여느 유학파들처럼 미술을 수학한 고 화가는, 우연히 제안 받은 앨범디자인작업 덕분에 전문 아트디렉터가 되었다. 장르가 30년 전 치열한 본토 현장에서의 힙합이었기에, 그래피티 예술과 상업적 표현방식의 차별화된 개성을 마음껏 흡수할 수도 있었다. 그의 독창성도 이처럼 붓과 물감이 비싸면 에어스프레이를 들고, 화실과 캔버스 살 돈이 없으면 과감히 거리로 나갔던 그래피티-힙합패션예술에서 한국의 오색 색동무늬를 찾아내면서부터 나왔다. 또 모노크롬에서 수묵의 영혼을, 리듬과 라임에서 흥과 장단의 공통정서도 발견했다. 인터넷 시대의 문화다양성이 도래하기 한참 전, 자발적으로 유학한 고 화가가 비자발 강제이주의 후예들인 아프리칸-아메리칸의 힙합/그래피티/모노블랙 계열 스트릿예술 적 정신성에도 관심을 갖게 된 덕분이었다. 이리하여 그는 `60년대 전후에 제안된 프랑스 생철학에서 착안해, 인간존재의 흔적을 표현하는 자연스럽고 새로운 예술적 삶의 방식인 색의 추상, ‘생추상’ 개념을 만들어 냈다. 

리듬에 맞춰 콜라보 즐기는, 글로벌 시대 예술가다운 주인의식

한-미 스트릿예술의 교두보이자, 동서양의 접점 속에서 색채리듬을 표현하는 고 화가는 자신을 “힙합드럼을 치는 융합현대미술가, 생추상 창시자”라 말한다. 동양철학과 서구의 세계관을 조합해, 전혀 한국적이지 않은 형식에 한국적 형상인식의 본류 흔적을 진하게 남긴 이 예술 콜라보는 ‘공통의 정서’로 여러 낯선 분야를 포용한다. 따라서 고 화가는 오랜 이국생활 동안 `90년대 스눕독의 “내 동네친구 1/3은 감옥에, 1/3은 무덤에 있는데 어떻게 연애 노래를 쓸 수 있겠는가?”라는 원(怨)으로 휘갈긴 랩과 그래피티,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라는 한국적 단색화의 한(恨)이 서로 통함을 알았다. 나아가 이들이 총기난사와 유교교리라는 상반된 삶 속의 고단함마저 사랑하며, 종종 흥에 겨워 원색 빛 가무를 즐기는 현상을 콜라보 할 이유도 찾아냈다. “힙합환경에 공기처럼 자연스레 둘러싸인 당시는, 내가 접한 것이 정통 힙합이라는 것도 모르고 시작했다. 그럼에도 한국에 돌아온 나는 한국의 정신성과 미국의 물질적 요소에 모두 익숙해져 있었다”라는 그는, 해외에서 한복 콜라보의 미학에 감탄하듯 이러한 감성이 바로 보편적 정서에 부합한다고 말한다. 또 같은 맥락에서 그는 삶, 죽음, 종교관이 어우러진 ‘생추상’도 언어보다 풍부한 정서로 먼저 어필한다. 그래서 복잡한 단어 없이 이벤트를 추구한 이번 콜라보 전시로, 7년 전부터 시작한 그의 단색화와 힙합 그래피티가 교차된 낯선 메시지를 더 직관적으로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 골드러시에 침묵과 절망보다, 자신감과 창의성으로 경종 울려

삶의 의미를 관조하며 리드미컬하지만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그의 힙합저항정신은 브루클린-브롱스를 떠난 지금도 여전하다. 그는 이번 전시에 소개한 아메리칸드림과 인종용광로, 골드러시 종주국 미국에 대한 추상을 비롯해, 피상적 성공궤도를 요구하는 세상에 창작자로서 건전한 방향으로 경종을 울린다. 거의 대표작 뉴욕의 사계 중 <가을>편이 고정관념에 역행하듯 뉴욕의 서정 대신 거친 노란빛 기억을 띠고 있다면, 힙합과 해학이 콜라보 된 풍자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자 21세기 골드러시, 냉혹한 글로벌 달러패권주의를 살짝 뒤튼 <백딸라 환상곡/GOD BLESS AMERICA>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은하를 닮은 듯 이방인의 신성함을 묘사한 <나는 우주에서 왔습니다>는 그의 종교적 존재관념을 나타낸다. 한편, “혼자서는 안 된다. 모든 문화는 결국 융합과 교류다”라는 그는, ‘BTS’를 내놓고 ‘아아메/크룽지’ 종주국이자 K-유행의 정점에 오른 지금도 기무치/파오차이김치같은 아류 앞에 큰 소리를 못 내는 한국을 향해 “작금의 각자도생 시대에는 ‘한국도 예술본류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총대를 멨다”고 덧붙인다. 기법 면에서도 그는 탱화의 붉은 경면주사 물감을 그래피티처럼 활용한 단색화를 제안하며, 미국처럼 한국에서도 앤디 워홀과 잭슨 폴록처럼 자유감성이 더 진화할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본다. “예술이란 블랙커피에 시럽을 넣고, 버터를 발라 빵을 굽듯 따로도 좋지만 섞일수록 더더욱 좋은 분야다. 미술도 철학을 곁들여 남의 것을 잘 알고 나와 섞는 콜라보로 남 눈치 안 보고 표현하기를 바란다”는 그는, 마지막으로 “힙합은 생추상처럼 삶이 곧 예술인 스트릿문화다. 이를 60이 넘어 깨달았지만, 나의 생추상예술이 세대를 넘어 젊은 대중성에 밀착해 새로운 문화로 태동될 교두보가 되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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