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20억 이룬 달동네 소년 “과거의 최고는 ‘조직’이었지만, 앞으로 우리의 최고는 바로 ‘당신’이기에”
연봉 20억 이룬 달동네 소년 “과거의 최고는 ‘조직’이었지만, 앞으로 우리의 최고는 바로 ‘당신’이기에”
  • 오상헌 기자
  • 승인 2023.08.18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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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금융서비스 최고사업부 최민형 대표
THE금융서비스 최고사업부 최민형 대표

메이저보험사와 GA(법인보험대리점)으로 보험업계의 판도가 바뀐 이래 개인GA의 청년성공신화가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달 유튜브 ‘동네형 민형’ 채널을 오픈하고 저서 <달동네 소년 강남으로 가다>로 화제가 된 THE금융서비스 최민형 대표의 사례는 독보적이다. 그는 대형GA 연봉순위 1위, 연봉 20억을 달성한 뒤 홀연히 새 길을 찾아 혼자만의 성공이 아닌 팀원 전체의 성공과 성장을 지향한다. 고객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꾸준히 발굴하고, 평생직장이 없어진 시대에 GA영업분야를 마지막 직업으로 여기는 인재들이 많도록, 대표 인재들이 모인 대표GA를 추구하는 최 대표의 인생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 보았다.

대표 1인 중심체제 아닌 각 GA본부장/팀장급이 모인 하이엔드 GA
THE금융서비스는 GA기업으로서, 직접 보험상품을 만들고 운영하는 대기업 원청과 달리 다양한 보험상품을 직계약해 판매하는 회사이다. 온라인/대면/기업영업으로 영업파이를 키워 꼭 필요한 내용으로 부담 적고 보장성 높은 상품을 판매해 고객 선택의 폭도 넓다. 프라임에셋 재직 당시 전 GA중 연봉 1위를 기록한 최민형 대표는 8개월 전 1천여 명과 사업부 20여 개로 구성된 THE금융서비스에서 설계사 전문가 40명을 모은 최고사업부의 대표를 맡고 있다. 사업부대표 겸 THE금융서비스의 공동대표로서, 최 대표는 대표 개인의 이익을 줄여 현장의 처우를 개선하며 영업환경과 인재성장의 발판으로 삼고 싶다고 한다. 최고사업부는 일종의 하이엔드GA로서, 보험판매, 법인컨설팅, 자문관리, 노무서비스, 기타 세무분야를 담당한다. GA영업 대표로서 그는 홍보 활동은 물론, 개인활동을 위한 스튜디오와 유튜브 제작 스튜디오에서 SNS와 유튜브로 홍보, 고객관리, 컨설팅까지 하고 있다. 이렇게 활발한 에너지를 지닌 최 대표는 의외로 아현동의 9평 달동네집에서 우울하게 자란 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폭피해자였고, 가정에서는 부친의 사업실패로 가족이 흩어지고 친척집에서 가혹한 눈칫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영향으로 자식들에게는 설움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세상에 나와, 신문배달, 미용실보조, 패스트푸드, 요구르트 배달, 심지어 시체닦이까지 닥치는 대로 알바를 해 청소년기의 생계를 유지했으며, 많은 돈을 벌어 세상에 혼자 당당히 설 수 있는 미래의 모습을 그리며 견뎠다고 한다.

평범한 삶조차 간절했던 소년의 GA연봉 1위, 그 후 새로운 이야기
혼자 돈을 벌어 대학에 들어가 숨통이 트인 그는 그제야 소개팅과 게임방 같은 또래 문화를 알게 됐다. 군 제대 후 모은 돈으로 배낭여행에서 견문을 쌓고, 안산 대덕전자에 들어가 공장필름 일을 하던 그는 전자과 전공을 이용해 마침 공석이던 프로그래머 일을 맡아 하루 18시간씩 일에 파묻혀 살았다. 프로그램에서 톱5 실적을 냈지만 무리한 탓에 간수치 1만 8천에 달하는 위급상황이 벌어졌고, 다행히 회복되어 한 달 반 만에 돌아간 회사에 자리는 없었다. 크게 낙담해 6개월 간 히키코모리 생활을 했지만, 이번에야말로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던 그는 2009년 9월 보험회사 영업일을 시작했다. 알바는 많이 했지만 컴퓨터만 보고 살았기에 대면상담은 떨리고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주 앉아 친밀하게 대화로 시작하고, 진정성 있게 접근하고 도움을 주려 노력한 점을 인정받아 고객이 늘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프로그래머 연봉 2,150만 원에서 보험으로 7개월 만에 8천만 원을 모은 그는 프로그램회사를 창업했지만 빚만 늘어나 고민이 커졌다. 그러다 “좋아하는 일 말고, 잘 하는 일을 하라”는 주변의 충고에 다시 보험으로 돌아왔다. 0이 아니라 마이너스에서도 플러스로 만드는 것이 그의 특기였기에, 그는 2022년까지 10년 간 일한 프라임에셋에서만 1만 2천여 직원 중 연봉 1위를 기록했다. 이 무렵 ‘파이어족’이 유행했지만, 오히려 최 대표는 또 다른 터닝 포인트를 고민하게 된다. 10년간 워라밸 없이 이른 은퇴만 고려했던 그는 파이어족이 유행할 때, 오히려 파이어족 이후의 삶 너머로 무엇을 해야 할 지 생각한 것이다. 

현장 전문가 조합 개념의 조직, 다양한 워라밸로 의기투합해 목표전진
“휴식하면 뒤처진다” 같은 그의 철저한 삶도 시대 변화에 따라 “그 때는 맞지만 지금은 아닐 수도”로 바뀌었다. 세상은 변해갔고 워라밸 이후 밀어닥친 코로나는 조기은퇴 파이어족들에게도 큰 위기가 되었다고 한다. 아껴 산다는 것은 노후의 이야기이고, 많은 자영업자들이 그렇듯 당장 월세와 인건비까지 책임지는 직업군에는 해당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오랜 근무가 최상의 성과비결이라 믿던 과거에서 벗어나, 팀 구성원들의 워라밸과 조화로써 높은 성과를 이끌어내는 새로운 조직을 착안하게 된다. 연봉 20억에서 0원으로 되돌아간 시절, 그는 <렛미체인지> 프로젝트의 은사 아놀드홍 트레이너와 90일에 걸쳐 둘째 아이가 태어나는 시점에 맞춰 27kg을 감량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로서 든든한 울타리가 되겠다는 그의 결심이기도 했다. 그리고 최고사업부의 대표로서, 돈을 못 벌어서 불행하다는 생각보다는 행복, 정체성, 가치관 정립으로 전진하면 사람이 따르고 일의 성과도 올라간다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팀원들을 이끌고 있다. 또 기본 영업방식을 가르쳐 주되 과정에 너무 개입하지 않고, 실적이 떨어져도 당장 질타하기보다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과한 간섭을 자제하는 것도 오히려 긍정적인 변화로 다가왔다. 이렇게 긍정적인 삶의 방향에 대해, 그는 온라인강의플랫폼인 <클래스101>에 동기부여 목적의 강의를 7강까지 올렸다. 0원에서 연봉 20억까지의 과정을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시스템과 패턴, 그리고 실패로부터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알바생 아닌 점주 키운다는 마음으로, 구성원의 밝은 미래 그리다
최 대표는 일반 GA와 시스템은 비슷하되 경영마인드는 차별화되었다고 전한다. GA사업부 조직관리자로서 그는 모두가 조직의 대표를 지향하는 회사를 만들고자 한다. “만약 내가 커피프랜차이즈의 회장이라 치면, 알바에게 커피 레시피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만 알려주는 건 진정한 교육이나 리더십이 아니다. 영업프로세스와 운영까지 가르치고 모두 승진시켜 점주로 키우는 것이 내 꿈이다”라는 그는, 유튜브와 강의 활동도 자신의 워라밸이며 1만여 명 중 1위 타이틀을 스스로 내려놓는 허탈감을 극복하니 명성과 감투는 자신의 실체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금융설계사의 덕목은 꾸준함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다”라는 최 대표는 이러한 자신의 성공비결을 언젠가는 대면강연과 오프라인 강연으로 자세히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또 영업방식 강의도 할 수는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술보다는 이 길을 보람되고 행복하게 여기는 방식을 더 알려주길 바란다. 그래서 올 초 사비로 팀원 12명과 3박 4일 간 최고 수준의 오사카 여행도 다녀오며 재충전하고, 워라밸의 소중함 속에 팀워크를 다졌다. 마지막으로 최 대표는, “개개인이 다음 단계에는 더 나은 미래를 그려갈 수 있도록, 구성원들이 직원 아닌 미래의 경영자가 되도록 팀원을 관리하고 싶다. 트리구조인 금융서비스영업회사는 이론상 후발주자일수록 도약에 한계가 있다. 그러니 시스템을 개선해 가며 개인이 연봉 20억에서 200억대로 성장하기보다는, 연봉 10억이 20명 존재할 수 있는 그런 회사를 만들고자 한다”는 소신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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