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마차의 판타지처럼, 바닷바람이 부르는 ‘내안의 섬’ 이야기
호박마차의 판타지처럼, 바닷바람이 부르는 ‘내안의 섬’ 이야기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3.07.1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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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코타 성형과 입체 소조로 유년기 바다와 소통하던 기억 빚어내”
오정숙 조각가
오정숙 조각가

어린 오정숙 조각가를 키운 8할은 섬과 바다였다. 1947년 통영에서 태어나 부산과 서울을 거쳐,  부친을 따라 인천에서 학교를 다녔기에 바닷바람에 익숙한 그이다. 1968년 대한미전에 입선하여 당시로서 드문 여성 조각가이자 인천의 첫 번째 여성 조각가가 되었고, 37년 간 중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삶을 거쳐 오 작가는 ‘내안의 섬’이라는 따뜻한 동화적 감성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하늘과 바다, 섬과 나무, 구름과 비처럼 유기적인 자연물을 마치 생텍쥐페리와 디즈니 풍 이야기처럼 화사하고 단순화된 오브제로 표현하며, 테라코타 점토소성과 닥종이점토 소조의 입체형상으로 구현해 내는 오 조각가의 예술세계를 소개한다. 

바다가 낳고 회화가 키운 딸, 인천 여성조각예술가 1호가 되다

전통조각 소재인 브론즈, 대리석, 화강석을 배웠지만, 지금은 주로 종이반죽을 활용해 ‘조각의 회화성’, ‘회화의 서사와 입체표현’을 가미하는 오정숙 조각가는 흙으로 빚은 바닷바람과 외딴 섬, 구름과 비가 어우러진 풍경을 미니멀적인 오브제로 표현한다. 스티로폼으로 형태를 잡고 신문지를 불려 붙인 뒤, 채색된 한지 닥종이죽과 아크릴 물감으로 색감을 내는 방식은 그의 상징이다. 일종의 시적 허용으로 서술된 풍경화 같은 그의 작품은 생략된 형태와 압축된 형상으로 대상이 담은 기억과 이야기를 부드럽게 은유한다. 특히 2011년 개인전 <내안의 섬-바람>은 그의 작품주제인 ‘내안의 섬’의 주역인 섬, 비구름, 나무에 미술의 언어로 보여줄 수 있는 각종 시적 허용이 극대화되어 있다. 점토 소조를 초벌한 테라코타에 안료로 밝은 색을 입히고 배열하는 입체 풍경소조로서, 닥종이죽을 입힌 형태에 안료의 색을 빌려 자연의 아기자기하고도 신비로운 색감을 입히고 부드럽게 감싼 그는 “이러한 물리적 방식이 무게는 덜고 부피를 키운, 꿈 그 자체의 속성까지 형상화한다”고 전한다. 11세에 미술부원으로 붓을 잡은 지 1년 만에 제 4회 세계아동미술전람회에서 인천 홍륜사에 영감을 얻은 <조용한 절간>으로 입선하고 미국순회전의 영예를 경험한 오 조각가는, 회화에 뜻을 두고 인천의 풍경을 많이 그리며 자라나 조소로 진로를 바꾸게 된다. “고 3무렵 ‘한밤의 편지’라는 음악프로에서 고 김정숙 교수님의 조각예술론에 매료되어, 홍대 조각과에 들어가 제자가 되었다”는 그는, 담대한 기질을 바탕으로 1980년대만 해도 불모지였던 인천 여성조각가의 시초인 인천여류조각가협회의 창립자가 되었다. 1970년대부터 500여 회가 넘는 그룹전과 국제전에 참여하고, 라메르갤러리, 혜원갤러리, 갤러리아띠 등에서 개인전과 부스기획초대전을 이어간 그는, 2003년 하와이 주정부재단 소장인 <섬 이야기>로 미지의 장소 섬을 동경하는 감수성을 표현하기도 했다. 

인식과 통찰로 빚은 오브제, 마음 속 곱게 품은 섬의 여운 표현

대학 1학년 때부터 서예를 배워 한지의 촉감에 반했다는 오 조각가의 종이죽 작품에는 회화와 서예, 소조가 어우러져 있다. 또한 섬 사이 바닷바람을 채색하던 유년기의 기억은 소조를 빚고 물들여 조합하는 아이디어로 승화되었으며 아름다운 책 섬의 도톰한 질감을 나타낸 <내안의 섬-장서>와 같은 수작도 나왔다. 2022 한류문화원 특별초대전작가로서 선보인 <내안의 섬> 중 ‘꿈’, ‘꿈을 잇다’ 시리즈는, 동화적 감수성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으며, 미지의 동경과 미래의 꿈을 조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밖에도 기억과 심상을 토대로 작품의 형태와 색감을 잡아내는 그는, “예술이 예술다우려면 불꽃처럼 강렬한 생명력, 시공을 넘나드는 상상력은 물론, 일상의 사물에 대한 깊은 인식과 애정, 그리고 통찰을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자연과 섬에 대한 기억, 그리고 은사들의 격려 속에 동화와 회화로 꿈을 키워가며 격동의 1950-60년대를 살아간 그는 인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인천미술협회,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인천환경미술협회와 인천광역시 미술초대작가회, 서울양천미술협회 등에서 활동해 온 그는 1991년 경기은행본점의 설치미술이자 독립적이고도 한국적인 여성상을 다룬 <모정>을 만들고, 모교와 인천지역 학교에 자신의 작품들을 기증했다. 그리고 다양한 표제의 <내안의 섬>시리즈는 2020년대 들어 해안가의 산과 나무를 집처럼 섬과 조화시킨다. 파도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바닥과 벽면을 이용해 소조의 입체감을 배가시킨 구름의 이미지에서는 간결하면서도 창의적인 그만의 기법을 엿볼 수 있다. 또 그의 작품에서 신데렐라의 호박마차나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 같은 아기자기함이 느껴지는 것은, 감싸고 받쳐 주어 안정감 있는 오브제를 많이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오 조각가가 소재연구를 통해 미술품이 주는 다양한 ‘소통의 의미’를 구체화한 데서 비롯된 결실이다. 2009년의 <내안의 섬-비와 구름>은 테라코타 버전을 다시 브론즈 주물로 뜰 만큼, 그의 감정이 잘 투영되어 지금까지 애착을 갖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지난 2021년 계양 공공미술프로젝트 <신비와 함께 걷고 싶은 무장애길>, 한국미술진흥원 특별기획온라인개인전, 2022년 인천국제아트쇼 <친환경과 미술전>에 참여한 오 조각가는 내년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내안의 섬’을 접하는 누구든지 각자의 마음속에 품은 ‘섬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며 삶의 기쁨과 행복을 찾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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