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금강산의 자연과 인간 오이디푸스의 희로애락에 대한 기억
그리운 금강산의 자연과 인간 오이디푸스의 희로애락에 대한 기억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3.07.1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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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생명성에 힘입어 망치와 그라인더로 새긴 인간 역사의 일부”
조각가 금란 성민애 작가
조각가 금란 성민애 작가

대표작 ‘오이디푸스의 눈물과 사랑’, ‘금강산 이야기’ 시리즈를 조각해 낸 성민애 작가는 미술에 개인사를 융합하여 독자적인 세계관을 펼쳐 보이는 작가다. 미술학자 고완석 박사로부터 “괴테 자연론의 영향을 받은 가우디처럼 자연과 일체되어 직선을 배제하는 한편, 자연을 모방하는 바이오미메틱스 창작”으로 평가받으며 고대 그리스에서 근대 한국사를 넘나드는 성 작가의 예술세계는 비극의 순환으로부터 삶의 가치를 반문하는 희망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미술 전공 대신 미술사와 근현대 역사, 도자와 사진, 문학에 이르는 예술을 섭렵하고, 황토석과 대리석에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밝은 미래를 새겨온 성 작가의 작품세계를 소개한다.

조각은 단순 새김이 아닌, 쪼아서 돌의 영혼을 꺼내는 고뇌의 현장

조각가 금란 성민애 작가는 2016년 울산남구문화원 주최 한마음미술대전 입상자이자 2017년, 2019년 대상 수상자이며, 2017년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과 한양미술대전 종합대상을 수상한 이래 한국미술의 중심 인사동이 사랑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성 작가는 순수 전업작가로서 예술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소재구성과 성장 케이스를 보여준다. “톱, 정, 그라인더를 벗 삼아 돌과 칩거하여 강산이 변하도록 밤낮을 거치니, 두 가지 테마로 인사동에 입성해 있었다”고 단순하게 설명하지만, 사실 그의 예술은 기원전 5세기부터 20세기 근현대사를 아우르고 있다. 청소년기 미술유망주로 많은 수상을 하며 그리스 로마신화, 그리스 양식의 건축디자인과 중세미술의 고아한 멋에 빠져들어 부친의 영향으로 카메라를 잡은 성 작가는, 이러한 감흥을 그림으로 시도하다가 보다 자연에 가까운 소재인 돌조각, 그것도 지층에서 출토되어 오래 다뤄도 인체에 무해해 끌렸다는 황토석으로 환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테크닉과 사조보다는 돌의 성향과 인간의 정신이 융합되는 과정을 먼저 이야기하는 성 작가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원한 테마이자 인간의 비극인 오이디푸스 일가의 피할 수 없는 희로애락과 비극의 순환적 세계관을 다루었다고 한다. 그리고 성 작가의 예술적 뿌리이기도 한 부친이 6.25로 누이를 잃고 이산가족의 아픔을 안고 살아온 가정사로부터 한국인의 비애와 희망을 담은 ‘금강산 이야기’ 연작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자신의 조각에 대해 오브제를 새겨나가는 행위보다는 “포장을 걷고 내재된 영혼의 이야기를 꺼내고자 돌을 쪼며 노력한 조각가들의 영원한 숙명을 생의 희로애락에 은유하고 앞으로의 과제로 남기는 것”으로 정의한다. 

자연의 곡선미를 강조한 그리스 미술과 금강송의 염원 사이에서

그가 택한 오이디푸스 시리즈는 그리스 테바이의 왕 오이디푸스에게 고생 끝에 낙이 왔으나, 결국 아버지 라이오스를 살해하고 어머니 이오카스테를 아내로 맞는 저주를 피할 수 없었던 유명한 신화 내용이다. 신화에서도 인간의 애환이 압축된 이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신화를 근간으로 작가 스스로의 희로애락을 감내한 일생의 이야기에도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대리석 오이디푸스 작품들은 이오카스테로 형상화된 토르소의 사실주의적 곡선의 미에, 생명과 가족애 사이의 비극성을 정통 서양 조각기법에 담고 있다. 자연의 곡선미를 강조한 그리스의 아르카익부터 헬레니즘 스타일을 아우르는 인체와 건축형태에 영향을 받아 수없이 사진으로 담은 그는, 같은 곡선이지만 여체의 부드러운 양감보다는 이 시기 인체의 근육과 힘줄을 본격적으로 다루던 그리스미술의 처연한 건강미 표현으로 자신의 예술적 토대를 확고히 설파한다. 이러한 대리석 조각의 유럽기행을 지나, 자연을 축약하고 모방하는 대표작 ‘금강산 이야기’에서는 고대 신전건축처럼 경직되지 않은 기둥의 역동성과 복잡한 표면, 석조 소재를 자유롭게 차용하며 자연의 형태를 빌려와 독자적인 무늬와 효과를 낸다. 연작 중 ‘기원의 세월’은 소나무로 상징되는 금강산을 회오리치듯 하는 솔방울 모양으로 단순화하고, 이 기법을 황토원석의 군집으로 만든 ‘환희의 눈물’ 등 황토석으로 구현할 수 있는 암벽화 같은 스크래치와 무늬로 독특한 질감을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금강송의 간절한 염원은 돌을 조각하는 기법을 넘어 이산가족의 슬픔에 공감하듯, 마치 우리의 우직한 기복과 기원행위인 ‘돌탑’을 쌓는 형상이 되어 돌이라는 소재의 생명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생명을 얻은 돌 형상에 깃든, 숱한 인간사와 희로애락의 이야기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선인들의 아픔과 삶의 영속성에 공감하고, “물리적으로 타격을 가해 만드는 석재가 금속 캐스팅보다 인류의 사연에 생명을 불어넣기에 좋은 소재”라는 철학을 지닌 성 작가의 ‘오이디푸스의 눈물’ 이야기가 세계사와 미술사에 근간을 두고 있다면, ‘금강산 이야기’는 국내 근현대사와 인문학을 아우르고 있다. 그는 첨단 시대를 살면서 지구상 유일한 냉전시대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국인만의 비애와 애환을 담은 ‘금강산 이야기’ 시리즈로 호평을 이어가며 한국국립미술은행, 울산남구문화원, 대구본리성당 등의 소장 작가가 되었다. 또한 동국대 불교문화대에서 학업을 시작하고, 기장 안적사 등 사찰 보수작업을 하며 고전미술의 정서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 시즌에도 2022 대구국제블루아트페어에서 <기다림>을 선보이며 혼란기를 타개해 나갈 섬세한 인간애를 제안했다. 이렇게 점토소조와 도자를 다양하게 경험하고 망치의 장단에 맞춰 그라인드와 톱날의 소리에 익숙해진 그는, 어느덧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상, 올해의 예술인상, 한류문화공헌대상, 회화대상전 최우수상을 거쳐 개인전 8회, 단체전과 한중일 국제교류전을 포함한 그룹전 74회를 경험한 작가가 되었다. 유럽의 내전과 글로벌 경제혼란을 실시간으로 겪는 21세기 세계인을 향해, 그는 “인간이 세상에 머무는 시간은 짧다. 그러니 희망으로 살아가는 가치관과 메시지를 나누고자 몸과 영혼의 교감으로 이뤄낸 작품을 내놓고자 한다”는 작가적 신념과 함께 역사의 아픔을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조각으로 승화한 작품으로 위로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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