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아트의 문을 열고 팝아트 세상으로 나온 자유감성, 섀도우 맨
파인아트의 문을 열고 팝아트 세상으로 나온 자유감성, 섀도우 맨
  • 오상헌 기자
  • 승인 2023.06.15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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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페르소나 ‘토끼’의 그림자 분신, 천진한 캐릭터에 표정과 행동 담아”
김대성 조각가
김대성 조각가

2023년, 귀여운 토끼가 모자를 벗고 인사하며 친구를 소개한다. 팝아트 같은 자유로움 속에서 파인아트처럼 공들여 제작된 앨리스의 토끼는 이제 그림자를 잃어버린 피터팬이 웬디를 만났듯 그림자 분신과 함께 작품세계를 시리즈물로 확장해 간다. 조각에서 회화조각, 평면구성, 드로잉까지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허무는 김대성 조각가가 지난해 소개한 ‘섀도우 맨’이 그의 페르소나 토끼와 돌아왔다. 입체부조로 재해석한 명화와 유쾌한 패러디 속에서, 눈과 입의 풍부한 표정으로 재치 있게 감정 표현을 선사하는 그의 개인전, 매스갤러리에서 개최된 <An Imaginary Space(상상 공간)>(5.3-6.4)에 들어가 토끼와 친구 섀도우 맨의 모험을 살펴보자. 

회화조각의 통로에 들어온 페르소나 캐릭터, 그림자 친구들을 만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회중시계 토끼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팝아트적 페르소나를 선보인 김대성 조각가는 지난해 18번째 개인전 <흰토끼와 친구들>에서 선보인 새로운 페르소나, ‘섀도우 맨’ 시리즈로 참신한 조형미학을 이어가고 있다. 조각의 입체성과 회화의 색채를 부각한 그의 회화조각은 전시장과 공공미술을 넘나들며 남녀노소 모두가 선호하는 ‘미술의 대중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벡스코 서울국제조각페스타, 세택 키아프플러스2022 일정을 마치고 지난 3월 코엑스 서울국제조각페스타에서 보여준 ‘섀도우 맨’은 동화처럼 자유롭고 아이처럼 순수한 생각으로 다양한 예술 현장을 누볐다. 팝아트/캐리커처 스타일의 드로잉과 페인팅, 스탠딩 조형물과 벽에 걸 수 있는 회화조각으로 나온 ‘토끼’는 그가 초현실주의 조각을 시도하던 무렵 꿈에서 착안했다. “마치 동화의 앨리스처럼 7개의 문에 들어가니 행복, 꽃밭, 귀신이 나오는 서로 다른 방을 경험했다. 몽상으로 끝내지 않고 동화 속 토끼 이미지로 캐릭터를 만들었고, 이 페르소나가 경험하는 동화세계와 추억, 일상을 옮긴 것이 시리즈의 시작”이라는 김 조각가는, 아이패드로 디지털 페인팅을 반복하며 인간의 외형을 보여준 토끼 외에도 내면을 드러내는 캐릭터를 3년 전부터 구상하고 내면을 끄집어 내 형상화한 그림자, 섀도우 맨을 만들었다고 한다. 섀도우 맨은 플래시몹 히트캐릭터인 졸라맨처럼 단순하면서도, 남녀로 구분된 디즈니 캐릭터처럼 귀엽고 유쾌한 일상을 보여준다. 또 안경으로 가려진 토끼의 표정과 달리, 정면에서 본체를 마주보듯 음영이 진 얼굴에 풍부한 감정과 내면을 표현하는 눈과 입도 달려 있다.

동화처럼 순수한 공간에서 토끼와 친구들이 보여주는 패러디&오마주
“창작하는 과정은 즐겁고, 결과는 재미있길 바란다”는 세계관과 열린 마음으로 작업하며, 거울을 보며 먼저 자신의 내면과 감정 상태를 읽는다는 김 조각가는 “피터팬의 그림자가 본체를 따르는 종속적 존재이면서, 떨어지면 웬디가 꿰매 이어주어야 하는 개별 인격체라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만들어낸 그림자 친구인 섀도우 맨은 토끼의 단순한 조력자 겸 사이드킥 이상으로 진화되어 있다. 그래서 마블 시리즈처럼 이들은 <토끼와 친구들>에서 자기소개로 콜라보를 마친 뒤, 힘을 합쳐 동화, 만화, 영화, 고전 조각/그림을 오마주하며 새 콜라보를 시작했다. 이들은 우선 클래식한 명화 배경 속에서 꿈과 상상의 세계를 노닌다. 김 조각가의 페르소나인 토끼가 명화 <피리 부는 소년>으로 포문을 열고, 고흐의 해바라기 톤으로 채색된 바지를 입고 찰리 채플린의 포즈로 인사하며 모자장수 코스프레를 하면, 섀도우 맨 커플은 한층 적극적인 패러디와 오마주를 선보인다. 김 조각가가 “콜라보를 할 때는 팝아트와 캐릭터성을 강화하면서도, 토이와 아트의 경계가 모호해지지 않도록 재미와 예술성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기에 가장 애착을 느낀다”고 말하는, 이 그림자 커플의 ‘피에타’ 오마주 조각은 원작의 흰 색감에 노랗게 흘러내리는 물감을 연출해 원본에 내재된 장엄한 비극성을 겉으로 드러내 외면과 내면의 양수겸비 표현을 이뤄냈다. 또 평면부조이자 명화의 오마주인 섀도우 맨의 ‘진주귀걸이 소녀’는 천진난만한 캐릭터의 표정과 충실한 고전 재현을 통해, 그의 회화조각이 현대미술가로서 선대의 리메이크를 피할 수 없는 파인아트 예술가들의 고뇌마저도 유쾌하게 승화해 작품화한 경지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섀도우 맨’은 풍부한 행동과 표정으로 조력자 이상의 감성표현 중
회화조각은 조각이자 회화인 동시에 이 둘의 경계다. 조소와 환경조각을 전공하고 실물조각과 시각디자인을 모두 경험한 김 조각가는 디지털드로잉, 그리고 연작물과 파생주제 제시에도 강하다. 또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기보다 정해 둔 페르소나를 바탕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에, 전시(감상)와 판매(소장)를 병행하는 작가로서 일찌감치 관객들을 위해 마찬가지로 다양한 소장경로를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전통적인 콜렉터 경로인 전시회 일정도 꾸준히 이어가, 2019년 미술소장가로 알려진 BTS의 뷔가 KIAF에서 그의 청동토끼 <채플린>, <보리의 산책>을 선택한 일화도 상당한 화제였다. 그 밖에도 그는 캐릭터의 MD/굿즈는 물론 가격대를 낮춘 드로잉도 선보였으며, 회화도 동영상으로 변환하거나 디지털 콜렉션이 가능한 NFT 마켓에도 진출해 현대미술 대중화와 접근성에서 좋은 선례를 보여주고 있다. 해외전에도 적극 참여한 그는 코로나 이후로는 국내전시에 집중하고 있다. “불안정한 내면일 때는 작품에 그 느낌이 반영되었지만, 스스로를 기쁘게 하는 작품은 남이 봐도 행복하리라 믿는다. 그래서 섀도우 맨은 표정이 더 강조되고, 조력자를 넘어 적극적으로 자기 세계관의 문을 열어가고 있다. 나 역시 단순한 형태와 화사한 색채, 페르소나와 꿈을 대입하고 여러 방향으로 조합해 가며, 여기까지 발전했고 작품세계를 확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는 김 조각가는 5월 코엑스 조형아트서울에도 선을 보였고, 6월 대구아트페어, 8월에는 세택 뱅크아트페어에서의 2인 부스전에서 이번 시리즈인 토끼 그리고 섀도우 맨의 다양하고 유머러스한 모험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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