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색의 축제’, 세라믹 조각들로 펼쳐낸 황금률 향한 영성여행
‘빛과 색의 축제’, 세라믹 조각들로 펼쳐낸 황금률 향한 영성여행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3.04.14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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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가 고온에서 소성하듯, 마음도 유희로부터 사유하듯 규칙 깨우쳐”
세라믹 전문 아티스트 혜라 작가
세라믹 전문 아티스트 혜라 작가

현란하고 매혹적인 색의 ‘채움’, 찬란하고 장엄한 빛의 ‘고움’, 그간 색과 빛의 향연으로 타일아트를 다변화 한 세라믹 전문 아티스트 혜라 작가가, 이번에는 정신적 ‘배움’의 자세로 미지의 영역을 사유하는 세계관을 펼쳐 보인다. 글 쓰고 그림 그리고 도자도 굽는 전천후 아티스트인 그는 모돈장을 개조한 포천 모돈갤러리 개관 성사후, 2년 정도 조금씩 시간을 내 신작을 준비하려던 중 올해 3월 28일부터 4월 9일까지 서울 세종뮤지엄갤러리 개관전에 모습을 드러낸다. 점토라는 순환적 질료와 고대문명 토기조각에서 영감을 받아 깨뜨림을 ‘종말’보다는 퍼즐 맞추기나 순환적 ‘영성’으로도 해석하는 그는, 이 ‘지극히 찬란한 고요함의 아름다움’으로부터 규칙성을 사유하며 인류사라는 멋진 퀼팅 작품에 새로운 질서를 더하려 한다.

겸양의 마음으로 바라보니, 불규칙 속 밀도 있는 색과 규칙성 보여

30여 년간 도예가로 도자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소성온도의 상징, ‘1천 200’이라는 숫자의 열기 속에 살아 온 혜라 작가가 이번에는 적색 톤의 완전수, 100이라는 균형의 황금률로 문명의 환희를 이야기한다. 세라믹 파편과 빛을 잇는 색의 아름다움을 다루는 그는 3, 4년마다 찾아오는 모티브의 변화 작업 중 대양AI센터 세종뮤지엄갤러리 개관작가심사 통과소식을 듣는다. 본래 혜라 작가는 8과 인연이 많았다. 80호 이상의 규모, 그가 타일을 배열할 때 참조했던 체스의 기본배열도 8×8이요, 물감 대신 사용하는 수금(水金)도 800℃에서 소성될 때 최상의 광택을 낸다. 소성과정의 변수에 따라 광물질 조합 변수로 유약의 색이 바뀌는 도자과정은 규칙 속의 변수와 불규칙성을 갖고 있으며, 매스컴과 감상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혜라 작가의 메시지가 지닌 최대의 미덕은 이 조합의 아름다움을 매우 직관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본래 날 때부터 완벽한 형상이어야 하는 도자에서, 그는 반대로 미시적 접근으로 조각내 다시 공간 안에 채워 넣는 ‘채움’의 퀼팅작업 내지는 체스게임 같은 조합성과 미학을 추구한다. 미술에서도 대작의 규모를 결정하는 캔버스 사이즈는 100호인데, 이 10진법 유희는 공교롭게도 혜라 작가에게 “화려함은 유지하되 외관상 조금 동양적인 사유로, 세상에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자”는 스스로에게 내린 과제에 명확한 지침이 되었다. 작가의 발전은 곧 변화와 작품을 향한 겸양이라 믿고 ‘인간적 정성의 모듈’을 추구하던 그는, 개관자가 된 후 또 다른 개관작가가 되어 100%의 확률로 새로운 공간에서 새 세라믹 회화를 선보이게 된 것이다.

종교적 시험이나 깨달음처럼, 전달 가능한 모든 사유의 세계 표현

먼셀 색상표의 질서보다 눈과 머리가 지시하는 밑그림을 그린 다음, 색이 지닌 심상을 떠올리는 공감각으로 콤포지션하는 현대미술가인 그는 모돈갤러리와 다른 새 전시장의 오프너로서 게스트하우스와 컨벤션 같은 구조로 현대적인 고풍미를 지닌 전시장의 규모를 먼저 고려했다고 한다. 그리고 100호 위주로 30-40개를 만드는 대신, 140평 규모를 살려 조명작가와 협업해 작품의 주제를 더할 60여 점을 선정했다. 도자라는 소재의 영속성, 숱하게 많은 색조의 오색찬란함, 마방진과 체스, 타일아트처럼 엄숙한 질서를 즐겁게 파쇄하여 ‘포춘쿠키’처럼 접근하는 재기발랄함은 벽화와 평면작업에서 더욱 두각을 드러낸다. 그리고 작은 오브제를 맞춰나가는 점은 뜨개질이나 콜라주와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어서, 혜라 작가는 광릉숲예술인공동체, 수목원가는길 작가회에 소속되어 음악, 미술, 시 창작자들과 기탄없이 서로의 영역에 접점을 만들어오던 자신의 성향처럼 수많은 색들을 미리 만들어 놓고 조합하곤 한다. 이는 바벨탑의 골조와 재료를 준비하던 인간의 오만함과 달리, 오래된 낡고 투박한 토기유물로부터 인류문명과 유산의 메세지를 헤아리며 문명의 흔적들을 여행하던 그가 세상에 바치고자 준비한, 매우 겸허한 흔적의 공물들이다. 예술가의 생애 동안 인류사에, 지구에 뭔가를 남기겠다는 광대하고도 이타적인 바람이 있는 그는, “이번 세라믹들은 규칙 없이 파손 된 듯 보이나, 내재된 규칙이 만든 밀도감과 긴장감이 도자예술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고, 이 ‘공물’들을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사유의 형태를 보여주고자 한다. 도기를 많이 깨 본 도공의 심성이 깊어지듯이 그에게는 깨어짐과 재조합의 방식이 불교적 깨달음의 길, 기독교적 시험의 고난극복과 같은 것이고 이제 그의 작업들은 영원한 황금률의 자유에 이른것 같다.

창조도 변화가 있으면 그 기쁨 더해, 깨는 행위로 영원을 지향하다

지식을 전승하지 못하던 시절에도 절대자나 신비로운 작용이 인류를 흙으로 빚었다고 믿는 문화권이 많았던 이유는, 최초의 생명이 불과 물, 흙 간의 상호작용에서 왔기 때문이며 우연한 기회로 이 행위를 재현한 인류 스스로도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소박한 외관과 역사적 가치를 겸비한 선사미술(토기)에서 지구의 이 긴 여정을 떠올렸으며, 타일을 맞춘 후 작품들을 채울 공간의 배치로 완성하는 혜라 작가의 시도는 미술사적 관점에서 고전의 탈정의화에 가깝다. 금빛 성(聖)체를 도트 스퀘어로 모자이크한 비잔티움의 향수, 이를 모더니즘의 구조로 가져온 클림트의 스퀘어 미학을, 그는 충분한 숙고 끝에 선/면 대칭주의의 과장이나 아르데코의 유혹 없이 100호 캔버스와 소파 형상 위에 차분히 덮어 왔었다. 그리고, 세포 단위로 생명을 이루듯 한 이번 시도는 동서양 문명 모두에 접점이 있으며, 인간과 신 사이의 영성, 문명의 토대와 영원을 지향하는 창조행위다. 겸허한 이 캔버스 세라믹 작업은 그의 말에 따르면 “문제가 주어지면 과거를 따지기보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며 지금 이 시점부터 시작이다” 라는 그의 본성과도 닮았다고 한다. 그렇게 인류가 규칙성을 찾고 시련 앞에서 깨어지며 더 단단해져 온 여정을 조화롭게 배치해 온 혜라 작가는, 아직도 예술을 통해 인생을 공부하는 중이며 성직자가 기한을 정해 놓고 스스로를 시험하듯 이 깨뜨리고 채우는 행위의 반복으로 캔버스를 채우고, 다시 그 캔버스로 벽면을 채워 자신을 다잡아 보겠다고 한다. 마치 구도자의 수행을 예고하듯, 그는 “앞으로 1년여 동안 100호 작품들을 더 만들겠다는 생각이 있다. 현대인의 창작행위가 과거 토기를 만들던 고대 인류의, 교만이 아닌 겸허로 만물의 섭리를 따르려던 행위와 맥락이 같음을 입증하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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