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기둥의 중력이 이데아적 미의식 대신 기(Qi)의 모습으로 스며 나오다
흙기둥의 중력이 이데아적 미의식 대신 기(Qi)의 모습으로 스며 나오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3.04.14 11: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술의 지역성, 역사성, 현실성 고려하여 김해의 미술관에 작품 기증해”
김영원 조각가
김영원 조각가

조각 분야에서 보편성과 창의성을 겸비한 기질로 시대를 풍미한 김영원 조각가는 광화문광장을 수호하는 세종대왕 동상,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그림자의 그림자>처럼 도심 랜드마크의 상징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그래서 김해 문화의 전당 무상 기증 3점에 이어, 총 150여 점에 달하는 그의 걸작들을 영구 소장하게 될 김해 김영원 미술관의 2024년 개관 결정은 수혜지역인 김해지역을 넘어 세간의 관심을 끈다. 초연한 모습으로 일련의 작품들을 기증한 김 조각가는, 자연과 문명의 대립 속에 태동 된 서양 예술 이데아 대신 동양의 정서로 자연과 우주, 기의 흐름을 몸으로 전사하며 회화와 철학을 논하고 있다. 그의 예술은 새로운 시대의 정신을 기공 명상을 통한 자신에 대한 성찰과 각성이란 수행 문화에 두고 있다. 21세기 종합예술의 융합과 발상 전환을 긍정하는 그의 근황과 직접 정리한 ‘기’ 이론에 대한 생각들을 소개한다.

진영읍에서 서울로, 다시 김해로 뿌리를 찾아온 중력의 연금술사

물성의 역동성, 기운의 표출, 무게와 시공간을 다루며 21세기 예술 해석의 보폭을 넓힌 김영원 조각가의 근황은 두 가지다. 하나는 30년간의 기공 수련으로 답을 얻은 ‘기’ 예술방식의 확장이요, 다른 하나는 그의 이름을 단 김영원 미술관 작품 기증 과정이다. 진영읍에서 자라 조부의 농사일을 돕던 그의 흙 묻은 손이 법대를 목표로 삼다가, 미술 시간의 찰흙 공작을 계기로 진로가 바뀐다. 미술 시간에 그가 만든 찰흙 작품을 본 미술선생이 김영원에게 전국 학생 미술 실기대회에 참가하기를 권유하였다. 그 때 그 대회가 공교롭게도 김수로 왕릉에서 개최되었는데, 왕릉 상석에서 흙을 치며 만든 작품이 고등부 특선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조각으로 진로를 정하였다. 단 몇 달간 데생과 목탄화를 경험해 날 것 그대로였으나 파격적인 제출작으로 홍익대 조소과에 길이 기억될 입학 후, 훗날 동 대학 교수와 학장을 역임하게 된 사연은 지금도 널리 회자 된다. 그리고 제16회 김세중 조각상과 제7회 문신미술상 대상처럼 굵직한 영예는 늦게 미술을 시작했으나 우직한 끈기로 아르바이트조차 미술작업으로 고르던 노력에서 비롯됐다. 그는 당시 대세인 추상예술로 국전 입상, 대학미전 그랑프리, 공모전 수상까지 재학 중 이룬 것이 많아 한때 ‘다다이즘’처럼 호기롭게 전통을 부정하는 미학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격변의 1970년대 초반 군입대 계기로 그는 동양문화권 사람이 서양 역사철학과 실존주의/이성주의와 1, 2차 세계대전 이후 무정부주의에서 비롯된 다다이즘에 현혹된 것을 넌센스라 보게 되고,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하겠다는 반성과 깨달음을 얻게 된다. “예술도 출고’된 지역에 영향을 받아 그 기질이 갈린다”는 그의 생각은 지역성과 역사성, 현실성에 기반을 둔 예술, <중력과 무중력> 시리즈로 이어진다. 중력 무중력 연작은 김영원이 교사 생활을 병행할 때 입시를 위해 턱걸이 연습을 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다 탄생하였다. 당시에는 입시에 체력 측정이 점수화하여 반영되었다. 처절히 철봉에 매달리며 힘에 겨워 축 처진 학생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처지와 그 당시 대다수 젊은이들이 처한 환경이 오버랩 되었다. 
이 때 부터 그는 영혼이 박탈당한 익명의 청소년들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술회했다. 그것이 중력 무중력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현실성에 기반을 둔 예술, <중력과 무중력> 시리즈부터 그는 그 후 30여 년에 걸쳐 지역성과 역사성, 나아가 정체성을 탐구하는 조각 작업으로 꾸준히 매진해 왔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수많은 지역 중 김 조각가가 직접 선택한 조부의 고향, 김해의 문화인 사랑방으로서 2024년 9월 개관될 ‘김영원 미술관’에 영원히 터를 잡게 된다고 전한다. 

물 만난 고기처럼, 서예의 필법처럼. 인상적으로 스며든 ‘기’ 회화

김해를 택한 이유에 대해, 김 조각가는 “김해시장을 비롯해 미술에 조예가 깊은 관계자들과 김해의 미협/예총의 환대에 감화되었으며, 이들이 개인 작품 상설전시장 대신 기획전시장도 적극적으로 운영하자는 제안에 긍정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그는 “미술관의 직책을 사양한 대신 모든 기획을 공개적으로 공론화하여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정치적 입김이 최소화하는 방안도 약속까지 받았다. 미술관 뿐 아니라 김해를 명품 예술 도시로 만드는데 공헌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처음의 80점이 아닌 150점을 기증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김영원 조각가는 김해시장을 비롯해 해당 부서 공무원들, 김해의 예술 단체 회원들의 환대와 열의에 감동을 받았다고 전하였다. 
미술관을 적극 활용하여 항상 창조적인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문화의 산실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운영 방안에 대한 작가의 입장을 가감 없이 수용할 진정성에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특히, 지역작가들과 호흡을 함께하면서 동시에 국제전 및 각종 심포지엄을 활발하게 진행하는,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미술관 운영 방안, 미술관을 통한 교육과 신인 등용문을 활성화 할 방안에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또한 시내 문화적으로 낙후된 곳에 규모가 있는 조각 작품들을 곳곳에 설치, 시 전체를 미술관화 하여 누구나 쉽게 접근해 미술 문화를 누릴 수 있게 한다는 방안도 있었다. 이처럼 문화적으로 소외된 곳이 없이, 시 전체에 예술의 옷을 입히는 방안을 계속 연구하고 있는 김해시의 노력과 이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이 김해시를 선택한 이유라 했다. 
여기에는 조각 외에도 회화라는 수단과 김 조각가의 30년에 걸친 ‘기-명상 수련’이라는 삶의 영향도 크다. 1990년 초부터 작품을 만들고 부수는 퍼포먼스적 작업으로부터 정신과 육체에 부담이 누적되자, 우연히 선과기 체험을 거치면서 회복과 에너지의 상승을 느낀 그는 이를 자신의 예술을 지탱하는 철학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플라톤식 미적 이데아의 변용과 니체의 초인적 의지, 막스의 유물론, 프로이트의 욕망 이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동양의 명상과 기공으로부터 우주의 흐름과 교감하며, 몸의 의지와 감성으로 이룬 이 이데아의 대척점을 기둥 3개로 상징하게 되었다고 한다. 
‘1994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한 이 작품에서 김 조각가는 원형 흙기둥을 손으로 긁어낸 ‘기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현지 매체와 평단에 서양 미학의 대안이자 당해 최고의 영예인 인터뷰작가로 선정되며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를 바탕으로 나온 명상의 산물이자, 중력과 무중력의 이미지에 새로 융합시킨 부조로 만든 평면입상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도 그의 명상 소통과 인체 파동의 이미지를 주요 화두로 삼고 있는 기발한 작품들이다. 인간의 꽃송이 비유, 사방에서 봐도 정면인 형상의 인체는 많은 관심을 끈다. 더욱이 기의 삼투압 현상을 시각화한, 스며들고 배어 나온 물감의 형상은 그의 새로운 기운생동의 회화 <Qiosmosis>의 “기와 삼투현상의 조화” 개념까지 탄생시킨다.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광주 영은 미술관까지, 토탈아트 기공 회화

김 조각가는 3월 25일부터 6월 18일까지 경기도 광주시에 소재한 영은 미술관에서 입체 조각 작품 26점, 평면 작품 174점의 대규모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청작화랑의 초대전 <김영원의 명상 예술-그림자의 그림자(Art of Qiosmosis)>에 선보인 기공 명상 전시의 연장선이라고 한다. 상파울루를 놀라게 한 기공 예술은 평면으로도 들어왔으며, 기둥을 파괴와 재구성이 아닌 스미는 장소로 택한 새 회화기법도 인상적이다. 김 조각가는 기둥에 캔버스를 두르고 채색에 시간차를 두어 안의 물감이 스며서 올라오도록 하는 기법이 깨달음의 표현을 다변화시킨 덕에 회화를 많이 시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얻은 유화의 점성과 서예의 유려한 필법과도 같은 색의 몸짓은, 기의 순환으로 인한 명상적 토탈아트 혹은 물 만난 고기처럼 현란하며 봉황의 자태처럼 웅장한 ‘조각가의 회화’를 보여준다. 이런 에너지의 원천은 무위의 기운생동에서 오며, 기의 삼투압 현상을 시각화해 그의 작품에 동양철학을 성공적으로 이입시켰다. “하늘에 흰 구름과 봄날 보리밭에 바람이 휩쓸며 만들어 내는 유연한 율동, 강물이 소용돌이치며 흘러가는 움직임 자연의 숨결을 느껴 질 수 있는 힐링의 작품을 만나 볼 수 있으라”며 기공을 예찬하는 김 조각가는, “한국 조각문화의 발전에 거창한 어조로 논쟁의 여지를 남길 나이는 지났다. 단지 보잘 것없을 지라도 자신의 뿌리에서 자라나 봉우리를 만들고 꽃을 피우자. 그것이 예술이다”라는 말과 함께 K팝문화의 득세 속에서 여전히 잠든 K아트에 대해서도 언젠가 만개할 가능성의 화두를 남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