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해 갖춘 의관인 양 고결하고 담백한, 비움으로 만든 채움의 묵향
절제해 갖춘 의관인 양 고결하고 담백한, 비움으로 만든 채움의 묵향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2.10.11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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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의 필선이라는 본질 앞에 화목하고 원만한 마음의 붓 들다”
서예가, 문인화가, 캘리그래퍼 목원 조영수 작가
서예가, 문인화가, 캘리그래퍼 목원 조영수 작가

궁체는 임금의 교서(敎書)를 대필하던 궁인들이 사대문 밖의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한글 판본을 한문 행서와 유사한 서체로 바꾸면서 발전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행위자의 품계는 낮아도 붓을 드는 행위 자체가 임금의 지시를 대행하는 것인지라, 붓끝의 선을 닮아 흠상이 어렵지 않으면서 태생적 이유에 따라 엄숙하고 높은 품격을 중시했던 이 서체는 한글서체 중 가장 사랑받는 붓글씨체인 흘림체의 골격이 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침묵과 수행의 글예술이라는 서예에서, 취미로 시작해 이제는 서예문인화인의 한 축을 이뤄낸 목원 조영수 작가의 작품에는 조선시대 궁인이 보여준 바로 그 정갈한 소명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오랜 침묵이 긴 필선을 만들듯, 마음을 다져 한 장의 서사가 되다
사람에게 정서가 있듯, 서예에는 신채(神彩)가 있다. 선의 굵기와 농도, 짜임새는 붓의 손길에서 오지만, 먹이 마르고 나면 화선지에 새겨진 서법의 흔적들이 일개 글자로서가 아닌 스스로 인격을 갖는 데서 오는 표현이다. 한국서예미술진흥협회 이사와 심사위원이자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와 대한민국통일명인미술대전 초대작가, 그리고 한국예술문화대상 국무총리 최우수작가상, 통일미술대축전 우수작가상을 수상하며 서예의 완숙미를 보여주는 목원 조영수 작가의 신채는 순화의 서사다. 그의 예술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나고 자랐지만, 50을 넘긴 안정기에 오히려 인간관계와 삶 자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생의 황혼 앞에 무릎을 꿇을지 고민하다 붓을 잡은 뒤 마음의 응어리를 걷어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조선시대 서예는 두 갈래였다고 한다. 벼슬을 내려놓은 선비들이 치열한 정쟁에서 벗어나 망중한과 충심 사이에서 중용의 도를 찾는 것, 궁인들이 습관적으로 필사하던 궁체로부터 자신도 모르게 한 글자를 채울 때마다 삶의 무게를 더는 것. 도인의 풍모나 선택받은 기재와는 다른, 평범으로부터 기나긴 열정과 노고의 하루하루를 쌓아 필법을 숙달시키던 목원 작가는 후자에 가까웠다. 붓끝을 대고 떼는 지난한 과정에서 내면을 토해내는 글쓰기와 필법을 다지는 서예의 필사내공을 독려해 주신 롤 모델 겸 은사 박미숙 선생도 주민센터 서예강좌에서 연을 맺었다. 은사에게 받은 호인 ‘목원’도 서예의 본질을 깨달은 제자를 향한 “화목하고 원만한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다스리며, 더 나아가 이 서예를 접하는 이들에게도 그 마음이 전해지길 바란다”는 조언이면서 그의 예술을 지향하는 겸양과 검박한 자세를 독려하려는 의미다. 그래서 목원 작가가 붓을 드는 시간은 스스로 취하기보다는 침묵으로 정신을 집중해 점획선조의 역량을 채우는 행위이기도 하다. 

필획마다 고뇌와 상념을 비우고 한 편의 글 만드는 기쁨 커
무릇 위대한 서예가를 낳으려면 한 글자마다 백 장의 종이가 필요하다고도 한다. 목원 작가도 자신에게 있는 재능을 끈기라고 말한다. 서예란 변화무쌍함보다는 정도와 기본을 중시한 뒤 재주를 부리는 예술이기에, 목원 작가도 밤낮을 가리지 않는 정진과 수없이 닳아 없앤 먹으로 그간의 노고를 설명한다. 많은 서예가들이 그러하듯, 목원 작가에게도 시서화는 지음(知音)과도 같은 벗이다. 그래서 한자 서체를 익혀가면서도 한글 서체만의 유려한 멋에 끌렸다고 한다. 한글 서체를 통해 문인화와 서양화, 그리고 캘리그래피로 응용하는 즐거움을 느꼈던 목원 작가는 세로로 긴 한글 판본체의 정교함에도 끌렸다. 그래서 판본체를 써 나갈 때 벽화체처럼 고전적으로 구사하거나 캘리그래피처럼 자유롭게 그려내기도 한다. 궁서체를 좋아하는 작가의 밀집도 높은 서체로서 보기에도 편한 것은, 마치 텍스타일처럼 사방으로 각이 잡히고 너비가 일정한 필법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서예를 하는 과정에서 고뇌와 상념을 비우고, 잡념에서 벗어나 마음을 비우는 수행을 한다고 여긴다는 목원 작가이기에, 이 비움의 작업을 끝내고 나면 복잡한 내면이 정리되면서 삶을 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음에 기쁨을 느낀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분들은 캐나다에 목회의 터전을 잡아 동남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 봉사활동을 하며 캄보디아 대통령상까지 수상한 바 있는 언니 조영옥 목사, 형부 김우택 장로이기에, 목원 작가는 예술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귀한 사역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예술가로서 수십 장의 화선지 속에서 언젠가는 마음에 드는 한 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내면의 대화를 끝내면 공(空)으로 돌아오는 명상과는 다른 기쁨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때로는 이 수행과정에서 ‘세로반듯’ 한 휘호의 흘림체로 평소 좋아하는 금언을 한 편씩 필사하기도 하는데, 처음에는 습작이었던 작품들이 점점 숙련되고 다듬어져 전시장에 선보일 수 있다는 점도 목원 작가에게 붓을 들 힘을 주거나 작가의 소명감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숨 쉬듯 자연스러운 한글서예와 문인화로 내면의 변화와 자유 찾다
실수가 통용되지 않는 서예는 늘 많은 집중력을 소모하다 보니 한자에도 그에 따른 반감으로 각양각색의 흘림체인 초서가 발전했다. 하지만 목원 작가는 반듯한 한글서체에 천착하며 흘림체는 궁체의 형태미에서 벗어나지 않는 편으로, 판본체에서도 인쇄를 방불케 할 진하고 정밀한 선이 특징이다. 그럼에도 이 난도 높은 작업으로부터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음은, 글자마다 서예로 이름을 드높이려는 결의의 먹을 갈기보다 돌덩이를 안은 듯 갑갑한 마음이 들 때마다 붓을 들고 쏟아내던 그의 소박한 정진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문인화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여백의 미를 살리며 한결 캘리그래피에 가깝게 춤추고 흘러내리듯 흥에 겨운 필법이 보인다. 서정시의 한 토막을 인용해 농묵의 세필로 묵직한 위용의 청송을 표현하고, 일필로 단아한 매화송이들을 그려내는 모습은 자신의 지조와 충심을 다지던 문인화와는 다른 여유가 느껴진다. 그리고 목원 작가는 한국화와 서양화의 접목에 긍정적이며 다각도로 시도하는 만큼, 캘리그래피에서도 ‘한글캘리’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한문서체의 가장 정갈한 부분을 한글서체로 이식했듯, 영어의 필기체를 한글서체에 응용하고 궁서를 행서처럼 마감하는 역동적이고 유려한 필법도 시도한다. 또한 인쇄체와 여러 필기구를 응용하는 현대서체를 붓으로 구현하면서, 2-3가지 색의 채움기법이나 그라데이션으로 글자의 어감에 리듬과 생동감을 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화법이 발전할수록 우리 민족의 상징과 문화, 통일 염원과 독립운동 역사의 한 장면이나 한 구절을 작품으로 옮기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기쁨이 커, 목원 작가는 명성이 올라갈수록 요구되는 작가간의 교류나 다른 사회활동보다 서예와 문인화를 마주하는 시간이 더욱 소중했다고 한다. “서예는 채우고자 하면 오히려 내면과 충돌해 실수가 더 나온다. 비움으로써 옮겨야 채워진다는 점에서 서예는 물과도 같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결한 삶과도 닮아 있다”는 목원 작가는 앞으로도 이처럼 지필묵의 향기를 벗 삼아, 채운 것을 계속 비우는 열정 속에서 살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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