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의미가 담긴 행위의 무게, 이를 측정하는 세 가지 방법론
존재하는 의미가 담긴 행위의 무게, 이를 측정하는 세 가지 방법론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2.10.11 1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멸하는 존재의 오브제로 의미의 중량감, 형상의 상징성을 그리다”
화가 임길실 / 갤러리에 관장
화가 임길실 / 갤러리에 관장

화가 임길실은 아티스트들의 사랑방 갤러리에의 관장이기도 하다. 화가들의 기획전을 구상하는 예술기획자이자, 작가인 임길실은 세 가지 범주의 창작을 한다. ‘연기(煙氣)’를 오브제와 텍스처로 각각 구현하는 <의미의 무게> 연작 작가이지만, 작업실과 같은 건물인 갤러리에에서 작가들의 전시를 세팅하고 필요에 따라 도슨트도 자처하는 임 작가는 8월 <올해의 작가 50인전>의 작가로서, 그리고 서로 다른 작품관을 지닌 작가들을 융합해 한 자리에 소개하는 기획자로 바쁜 여름을 보냈다. 피어올라 명멸할지언정, 휘발되는 ‘존재’도 있음을 역설하는 연기를 페르소나로 삼아, 현장에서는 힘들지만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는 모든 순간에 대해 창작하고 관리하는 디렉터 겸 네비게이터, 임 작가의 특별한 삶을 들여다본다. 

따로 또 같이, 삼등분해도 합집합이 되는 화가와 관장, 기획자의 삶

임길실 작가의 하루는 오전 10시 요가원에서부터 시작된다. 목동에서 출근길에 올라 올림픽대로를 승용차로 15분정도 달리면 갤러리 주변에 있는 요가원에 도착한다. 주 5일을 1시간씩 플라잉요가와 필라테스로 체력을 다진 지도 8년차다. 유명 웹툰의 “체력의 보호 없는 정신력은 그저 구호에 불과하다”처럼, 이렇게 체력을 길러야 1인 3역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에 시작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습관이 됐다. 임 작가는 전시기획자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 1개월 일정으로 모산미술관에서 개최된 <올해의 작가 24인전-Viva La Vida>와 비슷한 맥락이지만 더욱 확장된 겸재정선미술관에서의 연합전 <올해의 작가 50인전-Respirare>를 8월 20~25일 일정으로 진행했다. 오는 12월 21-25일 <코엑스 서울아트쇼>에 기획 진행 중에 있는 15인 작가들의 개인 부스 전 기획을 끝으로 올해를 마감하고 나면, 내년에 기획 예정인 <2023년 올해의 작가 100인 전>에 집중하겠다는 임 작가다.
우주는 공(空)이 아닌 암흑물질로 가득한 영역이라는 과학자들의 주장처럼, 임 작가는 새벽 창작의 감성에 젖는 올빼미족이 많다는 미술계에서 의외로 햇빛 아래 사람들의 일상에 매우 익숙하다. 그러니 임 작가가 의미라는 추상적인 주제의 무게, 질량, 부피, 영역의 텍스처를 색감으로 탐구하는 과정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색이라는 저울에서 배경, 소재, 오브제로 승화된 ‘의미의 무게’를 재다

그동안 ‘연기’라는 휘발성 입자를 통해, 임 작가는 보이지만 잡지 못하며, 존재하되 사라지는 ‘의미의 무게’를 형상화해 왔다. <의미의 무게> 연작은 “의미라는 추상적인 소재로부터 실재적 무게가 있고, 이를 측정할 수 있으며 모든 비물질적인 것들의 의미를 측량할 수 있게 되면 이들의 본질에 더 다가갈 수 있으리라 장담하느냐?”는 작가의 의문에서 시작됐다. 동서양의 철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이 화두에 답변하려면, 우선 우주는 진공이기에 음파가 퍼지지 않는다는 인식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우주에서는 누구도 당신의 외침을 듣지 못한다”에는 고독 속에 부유하는 소멸에 대한 공포가 철학적으로 함의되어 있다. 그런데, 마이너스중력 블랙홀에도 가스 입자로 인한 고유 음파가 존재한다는 이론이 현실이 되면서, 가청주파수대로 환산한 블랙홀의 노랫소리는 우주무음설에 익숙한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그 공간에 사실 인간은 존재할 수도, 접근할 수도 없다. 그래서 측량이 곧 본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반증이 된다. 따라서 유기체의 개념과 다른 입자인 연기의 실존을 시각화하고자, 임 작가는 주체가 타자와 섞이는 연기의 속성을 이용하며 중첩되는 관계성은 타임라인에 따른 연기의 은폐로부터 찾았다. 임 작가는 마음 속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스케치하고, 캔버스에 바탕색을 겹겹이 입혀내고 바탕을 매끄럽게 갈아낸 뒤 연기의 이미지를 덧칠해 입힌다는 자신의 작업순서를 공개한 적이 있다. 이 과정을 통해 깊은 수면을 들여다보고 창 밖 먼 풍경을 보듯 1차원 공간은 색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깊이를 얻고, 명멸하고 부유하는 연기들이 춤추며 나타내는 형상은 작가에 의해 공(空)과 무(無)가 아닌 암흑물질로 은유된 배경으로 더 돋보이는 것이다.

11월 개인전 개최, 감독자와 기획자의 중압감을 덜어낸 관점의 무게

공기에서 연기라는 교질(膠質)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빛을 통해 입자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기의 상전이와 확산현상을 그림의 실존으로 나타내고자, 임 작가는 보이는 연기를 그리는 구상 대신 머릿속 자유 확산에서 출발한 추상/비구상화를 추구한다. 이는 그룹전 기획자로서 겪었던 예측불가 요소들을 작가 입장에서 보는 상징적인 창작의 명제(테제)이기도 하다. 반대로 <의미의 무게 3>은 완전한 암흑 속에서 강한 열기의 청이 상대적으로 약한 열기의 적에 잠식되는 구성이다. 또 청/적/흑, 혹은 청/적/백은 1인 3역을 하는 임 작가를 현상으로 의인화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본체와 부캐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각각의 의미로 형성되는 안티테제 덕분에 그 흐릿한 궤적마저 선명하게 각인된다. 

이 역설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하고자 임 작가는 <의미의 무게>의 열역학의 중심을 또렷한 구형으로 잡았는데, 때로는 블랙홀 같은 이 형상이 종종 사람의 형상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관찰자의 시점은 한 가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또 임 작가의 연기에서 우주 성단과 별의 형성과정을 떠올리기 쉬운 것도, <211014-02>처럼 암흑의 구심을 둘러싼 초고온의 청, 온도가 점점 낮아지는 적, 그 색을 가로지르는 식어버린 백의 연기 형상들 때문이다. 그림 배경 제작에 공을 들이는 작가의 관성조차 그림의 한 요소를 이룬다는 점에서, 임 작가의 작품은 단순한 비구상을 넘어 포스트모던적인 화두도 던진다. 오는 11월, 그룹전 기획과 갤러리에 전시일정을 쪼개 임 작가는 겸재정선미술관에서 <의미의 무게> 연작들을 모은 자신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배우가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하는 영화가 기대되듯, 연기로부터 무게와 존재의 상징을 본다는 새로운 관점을 작가이자 디렉터라는 1인 3역의 화가로부터 알게 되는 것은 매우 설레는 일이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