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화된 역사의 고증, 초상화의 극사실주의에 연륜과 감성 담다
시각화된 역사의 고증, 초상화의 극사실주의에 연륜과 감성 담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2.10.1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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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무역협회장 초상화에 이어, 역대 대통령 초상화 작업도 계속된다”
오동희 화가/오동희초상화갤러리 관장
오동희 화가/오동희초상화갤러리 관장

1988년 12월 건립돼 역대 국무회의 장소로 쓰여 온 청와대 본관 세종실 전실 벽면에는 역대 대통령 초상화들이 걸려 있다. 국빈들과 관람신청자들만 관람할 수 있었던 이 장소는, 이제 20대 윤석열 대통령의 청와대개방 이후 전시박물관으로서 많은 이들이 역대 대통령들의 수많은 행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역대 대통령 초상화를, 그것도 단 한 사람이 모두 작업한 사례가 더 있다는 사실은 초상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그는 바로 2016년 국내 초상화전문갤러리 1호를 개관한 오동희초상화갤러리 관장 오동희 화가다. 초상화 한 분야에만 천착해온 작가로 유명한 오 화가는, 한국무역협회 역대 회장단의 초상화 작업을 마무리한데 이어 오랜 애착을 지닌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초상화 제작 또한 평생에 걸쳐 계속해 나갈 것을 밝혔다.

캔버스 위에 편찬된 인물사전, 역사의 흐름에 책갈피를 끼우는 초상화

창작행위 자체로 고증이자 역사 기록행위인 초상화. 신체비례와 얼굴표현이 중요하기에 전문적인 숙련을 거쳐 성화와 궁정화가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기록한 고전화가들이 많을 만큼 초상화는 미술사에 기여한 바가 많다. 이 초상화 분야에 50년 세월을 바치며 국내 최초의 초상화전문갤러리를 오픈한 오동희 화가는, 프란치스코 교황,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반기문 UN사무총장, 그리고 엘리자베스 여왕과 마더 테레사 등 세계의 위인들과 정재계, 종교, 문화예술을 아우르는 인사들의 초상화 전문작가로도 유명하다. 장르를 불문하고 수많은 화가들이 특정 주제의 연작을 시도하듯, 오 화가에게도 초상화라는 한정된 장르 내에서 인물의 업적과 내면을 주제별로 탐구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철저한 자료고증을 거쳐 천주교 수원교구 어농성지의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순교자 초상화복원을 마치고, 최근의 대업으로 한국무역협회 역대 회장들의 초상화를 마친 오 화가는 이러한 대작 외에도 역대 대통령 초상화작업을 자신의 과업(課業)으로 꼽는다. 30대에 들어서기 전, 반드시 초상화 분야의 1인자가 되겠노라며 자신의 이름을 건 화실을 내고 작품 활동을 시작한 오 화가는 중년을 지나 마침내 MIFA 아트페어, 파리 까루젤 뒤 루브르 아트페어에서 초상화에 까다로운 안목을 지닌 프랑스 갤러리들에게 한국화 초상화의 세필선묘 같은 섬세한 기법을 유럽 본토의 기법으로 재현한 유일무이한 화가로 격찬 받는데 성공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초상의 사실주의에 인물을 향한 헌정, 그림으로 표현하는 자서전과 같은 작가의 해석을 담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해부학과 골상학, 사진복원기술과 사료연구가 총망라된 초상의 진수

흔히 동양초상화를 1차원으로, 유화 기반의 서양초상화를 2-3차원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얼굴표현에 한해 초상화에서는 오히려 동양초상화를 실사에 가깝게 본다. 그 이유는 기본 골격바탕에 특정인물을 입히는 대신, 오직 그 인물만을 위한 몰드(Mold)를 뜨듯 정밀 묘사하는 화법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주목한 오 화가는 예전부터 미술사학과 함께 기법과 작법이론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한때 바라던 화가의 꿈을 접고 제약회사에 다니며 의약학 지식을 쌓던 경험은, 오 화가가 미술 이론에도 체계적으로 접근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는 색조합과 배합 뿐 아니라, 피부와 근육 관련 해부학서적과 골상학 이론은 물론 흑백과 컬러사진의 픽셀조합에서 조명과 각도에 따른 표정의 변화까지도 연구했다고 한다. 

서양화 기법을 마스터하면서, 동양 초상화의 특징인 머릿결과 주름, 피부결을 살리는 시대적 인물을 그리기 위해, 당대의 복식과 문화, 장신구까지 조사하고 스케치에 들어가는 시도는 서양의 왕실전속화가에 비견될 정도다. 또한 이러한 노력 끝에 오 화가는 흑백 사진자료만으로도 500호 규모로 복원해 낸 천태종 구인사 1대 상월 원각대조사 큰스님 초상화, 김수환 추기경의 공식영정 초상화 작가는 물론 역대 대통령 전문초상화 작가라는 명성도 얻게 되었다. 단순히 닮은 면을 떠나서, 정면과 측면 모두 그림의 규모와 상관없이 단번에 얼굴로 시선을 잡아끄는 점은 조선시대 인물화기법으로부터 이식되어 동서양의 장점을 아우르는 오 화가만의 트레이드마트다. 그래서 그는 해외는 물론 글로벌 기업 총수들의 초상화 의뢰를 자주 받는 화가이기도 하다.

역사적 인물과 위인의 삶을 초상화로 남기는 과정에 보람 느껴

동양의 관상학은 ‘습관’을 읽는 것이다. 미간의 주름은 예민함으로, 눈가 주름은 웃음이 많은 이의 관용으로 해석해 인상학으로 발전시켰듯, 오 화가의 초상화 철학도 작업에 대한 열정, 풍부한 이론과 끝없는 숙련이 쌓여 오며 발전돼 그가 나타낸 인물을 읽어내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 서양의 화구로 명암과 비례를 살려 마치 실제로 눈앞에서 표정을 짓는 듯 선명하고 섬세한 신고전주의/사실주의를 택한 오 화가의 기법은 단연 초상화에 최적화되어 있다. 10대 시절부터 학교 미술동호회에서 데생과 빛 반사, 비율, 명암표현의 천재라 불리며, 이후로도 독학으로 수련해 상당한 경지에 오른 오 화가의 성장비결은 ‘겸양’이다. 

유화의 아카데믹한 접근법에 관심을 갖고 만학으로 홍익대 미술대학원 회화과 석사과정을 마친 오 화가의 성공비결도 예술의 본질과 역사의 진리 앞에 겸손하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금과옥조로 삼으며 매일 연필과 붓을 잡는 것이다. 오 화가는 이러한 자신의 가치관을 갤러리와 작업실, 후학들의 레슨실을 겸한 오동희초상화갤러리에서 꾸준히 입증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진이 ‘극사실’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진도 앵글과 조명에 따라 한 인물의 인상을 다르게 보여준다. 하물며 작가의 주관이 들어가는 초상화는 어떻겠는가. 초상화의 극사실주의는 사진과 똑같이 재현하는 것보다는 인물의 성향과 인품, 직업과 가치관을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오 화가는, 붓으로 특정 대상에 헌정하며 작가의 개성을 남기는 고결한 인물화인 ‘초상화’에 삶을 바치는 근황을 행복이라 정의한다. 그는 “앞으로도 미술 애호가들과 후손들을 위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인물들의 초상화는 물론 역대 대통령 초상화 작업처럼 의미 있는 테마 작업에도 꾸준히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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