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소극장, 장르 하이브리드 연극으로 해외시장에 새 둥지 틀다
K-소극장, 장르 하이브리드 연극으로 해외시장에 새 둥지 틀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2.10.1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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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서가 섞인 블랙유머와 예술인들의 열정은 국경 밖 정서에도 닿아”
문화공연기업 ‘플레이규컴퍼니’ 안태규 대표
문화공연기업 ‘플레이규컴퍼니’ 안태규 대표

지금까지 한국의 영화/드라마, 대중/클래식 음악, 게임, 무용, 스포츠 등 문화예술이 세계시장에 침투하면서, 한류를 넘어 K라는 고유명사로 정착한 이래 아직 개척지로 남은 분야 중 하나가 연극이다. 그 중에서도 소극장 연극은 해외에서 호평 받는 드라마와 영화, CF에서 놀라운 표현력으로 작품을 빛낸 늦깎이 스타들이 태동하는 주요 장르임에도, 장르 자체의 부흥보다는 인재양성소 역할에 더 가깝다. 하지만 연극이라는 예술형태 그 자체로도 해외에서 호평 받으며 성장하는 이들도 있다.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으로 결합된 하이브리드 연극과 재치 있고도 탄탄한 소재를 바탕으로, 극예술의 종주국 영국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일등급인간>의 플레이규컴퍼니 안태규 대표는 새로운 연출개념의 K연극을 주도하는 아티스트 중 한 사람이다.

대문호와 연극문화의 원조, 영국에 K-연극 가능성 보여주다

셰익스피어의 나라답게 무대 위 문학예술 종주국인 영국에 진출한 <일등급인간>은 장기를 물건처럼 거래하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목적으로 수단을 압도하는 부모의 잘못 된 교육열을 주 된 스토리를 더해 현지 공연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플레이규컴퍼니의 대표 연극이다. 2015년 플레이규컴퍼니를 창단하고 한국식 스토리텔링과 연출에 변화를 주며 호평 받는 안태규 대표는, 음악, 미술 등 장르 하이브리드와 공통의 정서를 탁월한 시각에서 재해석한 콘텐츠를 꾸준히 발표하며 한국 연극의 세계화에 독창적인 대안을 시도하는 기획/연출 창작자다. 밴드 오유아이와 콜라보 한 데뷔작 뮤직드라마 <벚꽃앤딩>을 통해 노래와 연주로 배우의 감정을 표현하는 독특한 연출을 선보인 그는, 이후 스탠드업코미디와 재즈밴드 콘서트의 협업을 통해 소극장 공연에 파란을 일으켰다. 

또한 2019년 시작된 이난영 작가의 원작을 영국에서 런던의 이민가정 스토리로 번안해 올린 <일등급인간>은, 수 년 간 연출 일로 달려온 안 대표가 휴식 차원에서 런던을 찾았다가 더 좋은 기회를 연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송진영 작가의 세트 작업을 비롯한 현지 아티스트들의 도움으로 상연을 시작했는데, 의외로 현지 관객과 관계자들이 깊은 관심을 보여 회차가 계속될수록 인기가 더 올랐다고 한다. 그동안 접한 K팝과 드라마에서 로맨틱하고 밝은 한류에 익숙했던 유럽인들은 <스카이캐슬>, <펜트하우스> 타입의 한국식 부조리극에 담긴 의외성과 독특한 메시지를 연극 <일등급인간>에서도 찾아내며 K-소극장연극의 진화에도 깊은 관심과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연출과 기획은 창작자의 상상을 무대 위 현실로 인정받는 과정

연기를 전공한 안 대표는 공연 커튼콜도 매력적이지만, 그보다는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작업에 더 강하게 이끌렸다고 한다. 그리고 연출자 겸 컴퍼니 대표가 된 이유도 “잠들기 전 상상한 이야기들, 일상을 사는 이야기들, 이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나 무대 위에서 짜임새 있는 세계관으로 완성된다는 점이 기획연출자의 큰 기쁨이자 카타르시스이기 때문”이라 한다. 2018년부터 2년 간 민간우수공연에 선정되어 지방투어를 돌고, 대구연극제 초연 당시 조명상, 연기상 등을 수상한 <유리>는 안 대표 스스로도 애정을 갖고 연출자인 박민규연출과 함께 꾸준히 다듬어 7월 거창국제연극제에 플레이규컴퍼니 대표작으로 무대에 올릴 만큼 소중한 시그니처 작품이다. “스토리는 다양하다. 나는 연극이 희곡 대본 속에만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소극장 연극 관계자들은 대개 수입이 일정치 않고 다른 직업을 병행하기에 인간사의 다양한 면을 많이 보고 겪는다”고 말하는 안 대표의 첫 연출작 <벚꽃앤딩>도, 회사를 다니던 시절 같은 회사의 친구인 밴드 멤버와 연말 파티의 여흥을 기획하다 시작되었다. 

“19세기 유럽 악극은 연주, 무용, 연기가 한 무대에 섰다. 그래서 현대화해 밴드세션과 배우가 한 무대에 오르는 아이디어를 냈다. 콘서트와 연극의 장점만 따다 만든 일회성 공연이었는데, 이 구성 연출에 깊은 인상을 받은 투자자의 제안과 도움으로 회사를 나와 플레이규컴퍼니를 만들게 된 것이다. 그 후의 작품들도 주제 면에서 호불호가 강한 작품이었지만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력과 더불어 연출, 세트 그리고 구성의 점층적 변화를 통해 관객들의 큰 반향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안 대표는 플레이규컴퍼니 창단작품으로 <어차피 겪어야 될 사랑이야기(어.겪.사)>를 연출했으며, 2017년에는 <어.겪.사>로 도쿄에 진출해 일상소재와 한국적 유머코드가 해외에서도 통한다는 성과를 얻었다고 한다.

내년 <일등급인간> 영국 재공연 예정, 유머와 감성에도 융합 더해

플레이규컴퍼니는 현재 공연제작 분야와 극단시스템으로 운영 중이다. 그리고 안 대표는 올해 5월 귀국해 지난 7월 제4회 76페스티벌 참가작으로 초청된 <일등급인간>을 무대에 올리고, 8월 11-15일 ‘아름다운극장’에서 심혈을 기울인 컴퍼니 정기공연작 <인류최초의키스>에서 연기파 배우들과 깊이 있는 공연을 보여주었다. 

한편, “음악과 퍼포먼스도 연극을 구성하는 중요한 콘텐츠”라며 무대예술의 융합성을 강조하는 안 대표는, “연극은 당대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며 사회의 필수요소를 다룬다. 각자 도생이 중요한 분야에 3년간의 코로나 한파를 직격으로 맞아 실력있는 배우와 연출자들이 업계를 떠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말을 전했다.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때로는 국가 차원이나 대기업, 공공기관이 창작자들과 공연문화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지원이란 돈보다는 인프라 형성, 좋은 공연을 자주 올릴 여건을 말한다. 유럽처럼 공연티켓 예매자에게 대중교통 승차권을 지원하는 것이나, 기업의 직원복지 차원에서 공연관람 계약을 맺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 안 대표는 관객호응 중심의 스토리도 창작하며 새로운 장르연출도 모색 중이다. “실험적 문제작도 하지만, 연극은 모름지기 재미와 감성이 있어야 한다. 또 언젠가는 국악, 락을 연극에 도입하고 싶다. 런던에서 성공한 설치미술처럼 관객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구성으로 말이다. <어.겪.사>도 재각색해서 새로운 무대에 올려볼 생각이다” 힘든 준비를 거쳐 무대의 조명이 켜지는 순간을 보람으로 꼽는다는 안 대표는, “내년 2월 런던에서 앵콜 개최될 <일등급인간>도 기대해 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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