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소리’, 미시의 엔트로피마저 채집해 놓은 거시의 파노라마
‘자연의 소리’, 미시의 엔트로피마저 채집해 놓은 거시의 파노라마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2.10.11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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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소리’를 이미지로 변환한 작품을 ‘세계 최초’로 선보이다
서양화가 석점덕 화백/마산대 명예교수/청강미술관 관장
서양화가 석점덕 화백/마산대 명예교수/청강미술관 관장

공감각(共感覺)은 초음파와 비가시광선 영역에서 벗어난 인류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보다 감성이 깊은 예술가는 이 자연의 풍화와 순환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언젠가는 작품으로 옮길 수도 있을 것이다. 영상과 음향으로 재해석된 자연의 소리는 의외로 많지만, 형체로 존재를 말한 플라톤과 사유라는 개별적 의지로 존재를 논한 데카르트처럼 예술의 형식 아래 자연의 의미를 통찰하려면 어떠한 과정과 상징성에 관한 사유를 거쳐야 할 것이다. 이 까다로운 문제 앞에서 서양화가 석점덕 화백은 특유의 낙천주의로 22년 전 캄보디아의 여행지에서 들리는 자연의 소리를 기록하며 세계 최초로 소리의 물성을 캔버스 위에 변환하며 소리의 휘발성에 고유의 빛깔을 입히는 법으로 ‘자연의 소리’의 이치를 설명한다.

시야 안으로 들어온 소리의 영속성, 나이프로 지휘한 자연의 협주곡

화폭에 자연과 소리를 상징하는 여러 이미지를 두껍게 덧입히고 긁어내 소리를 형상화하는 화가, 석점덕 화백은 서양화 분야에서는 세계 최초로 양감의 엔트로피 원리를 ‘자연의 소리’에 적용하고 소리의 질감을 이미지로 변환한 작품세계를 선보여 주목받는다. 이 ‘자연의 소리’를 작품세계로 가져온 계기는 1년 365일 중 3백여 일을 학교에서, 그것도 밤 10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거의 없는 40여 년을 살다 스스로에게 휴식을 준 2000년 새해 첫 날의 경험 덕분이다. 세기말의 긴장도 풀려 캄보디아의 갈대가 우거지는 톤레삽 호수에서 배를 타고 물소리와 새소리, 벌레소리가 풍경과 어우러지는 장면을 본 그는 이 장면이 마치 작은 협주곡을 듣는 것과 같았다고 생각했다. 자연이 준 선물인 다양한 소리들을 녹음해 한국으로 돌아와 붓을 든 그는 한 번 들리면 사라지지만, 기록되면 남는다는 소리의 특성을 이용했다. 

녹음의 패러다임이 곧 행위가 된 것이다. 그래서 붓 대신 속건성 소재에 맞는 나이프로 작업하기 시작해, 세상의 바람과 구름, 하늘과 땅, 산과 들의 풀과 나무들과 어우러진 생명체들의 소리인 지상의 협주곡, ‘자연의 소리’의 흔적들을 그러모아 색을 입혔다. 석 화백은 완제품 물감을 쓰지 않는다. 검은색은 먹과 숯가루 등 여러가지 혼합재료로 걸쭉하게  만들어서 더 강렬하지만 편안한 효과를 낸다. 가루타입 피그먼트에 젤페이스트를 섞어 만드는 물감과도 비슷하지만, 10년 전부터는 숯가루를 함께 개어 쓰면서 더 강렬한 효과를 낸다. 흰색도 마찬가지로 물감이 아닌 혼합 재료로 만들며, 속건성이라 순식간에 해야 한다. 그리고 실황공연 지휘자나 경기 출전 감독처럼 집중해서, 쉬지 않고 연속적으로 작업을 끝내야 순간순간 깃든 감성의 속성을 캔버스에 새길 수 있다. 

이미지의 새로운 줄기 NFT에 관심, 도전은 다작을 이끄는 힘

화가들에게 화실은 칩거 작업공간이지만, 그에게는 공연장과 비슷하다. 어떻게 보면 턴테이블이나 크롬테이프가 기록하는 소리의 매커니즘을 석 화백은 몸으로 직접 해 내는 셈이다. 벽화를 일필처럼 끝내면 한동안은 몸을 움직이기 어렵도록 탈진하지만, 오감을 이용해 자연의 모든 것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찰나의 에너지를 그러모아 긁어내듯 수집한, 그 소리의 여운은 만족스럽다고 한다. 손이 풀리고 귀가 열려야 ‘자연의 소리’를 담을 수 있기에, 자정까지 들어가지 않거나 아예 귀가하지 않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교사인 아내의 조력 덕분이다. 함안 작업실과 학교, 집이 서로 10분 이내 거리에 있는 것도, 전시를 앞두고 전시할 그림의 2-3배 분량을 작업해 두어야 마음이 편한 석 화백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작가 스스로 자연 속에 현상하는 관념인 빛과 색에 물감으로 상처를 내 흘러나오는 소리의 즙을 모으고, ‘자연의 소리’라는 청음현상을 사유하며 그렇게 긁혀나간 흔적이 묵직하게 깎여 나간 가시화가 바로 소리의 화석을 역사에 남기는 행위인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초대전에 동료들이 찾아와 그림을 많이 사 주었을 때, 석 화백은 그 돈으로 서울의 화방에서 화구를 사는 데 다 썼다고 한다. 핸디코트 같은 소모품을 제외하면 당시 산 재료들을 아직도 쓰고 있을 정도다. 그림에 따라 다르지만, 요즘은 대개 캔버스의 바탕 작업을 2-3회 바르고, 원하는 색을 전체 혹은 부분에 칠한 뒤 다른 색을 아주 두텁게 바른다. 그러면 나이프로 흔적을 남길 때, 색의 변환과 무질서의 발자국들로 남긴 질서는 듬성듬성 하든 섬세하든 간에, 중복되지 않는 특유의 고유성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낯섦에도 흥미를 느낀 그는 영국 TERRA VIRTUA LIMITED사와 최근 NFT(대체불가토큰) 계약을 논의하며 새로운 전시소유형태 변환에도 발을 들인 상태다.

대작의 웅장한 소리 선사할, 오는 11월 갤러리UHM 초대전 예정

김경혜 박사의 평론처럼 “깊고 컴컴한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의 이행”을 볼 수 있으며, 자연공학박사 장부규 교수가 언급했듯 “소리의 파장을 기호화된 도상화의 이미지로 표출”하는 석 화백은 작품 활동 외 예술기여형태에서도, 웅장하고 두터운 기반을 덧입힌 후 자유로이 긁어내는 그의 작업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작게는 마산대 아동미술교육과 교수시절부터 학생들과 부대끼며 화구를 지원하고 밥을 사 먹이던 습관에서, 시대를 앞서간 한국아동미술학회장으로서 미술창의교육 프로그램 기획, 그리고 올해 38회까지 개최된 현대미술 대표행사인 <대한민국 남부국제현대미술제(NICAF)> 임원 활동까지 사람을 좋아하는 그는 다방면으로 활동해 왔다. 소장하는 작품보단 판매된 작품들이 더 많으며, 새 전시일정이 잡히면 신작들로만 채우는 습관이 있는 일중독자인 그의 목소리는 일흔을 지척에 둔 요즘도 여유롭고 낙천적이다. 

한편 그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학생들과 같이 밥을 해 먹으며 밤샘 작업을 이어갔던 석 화백의 열정과 털털함이 당시 수업을 들었던 졸업생들에게 아직 남아있는 듯 하다. 수십 년에 걸쳐 찾아오는 졸업생들과의 일상도 인생의 행복이라는 석 화백은 2019년 개교기념식에 즈음하여 마산대에 대학발전기금 5천만 원을 기탁하고, 지난해 1월 정년을 맞아 기념공로패를 받은 후에도 명예교수로서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다. “행복한 화가, 즐거운 그림”의 마음가짐으로 최대한 건강을 유지해, 작품 2백 점을 더 완성하겠다는 그는 NFT외에도 새로운 분야라면 뭐든 도전해 발전하는 창작자로 남겠다고 전한다. 올 11월 24일부터 12월 15일까지, 서울 용산 갤러리UHM에서 열릴 석 화백의 초대전에서는 근작들과 앞으로 2개월여 동안 작업할 ‘자연의 소리 이미지’의 다채롭고도 감각적인 형태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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