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처럼 스며들어 암각화처럼 신령한 흔적 남긴 전통의 재해석들
산수화처럼 스며들어 암각화처럼 신령한 흔적 남긴 전통의 재해석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2.04.1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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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화구로 동양화의 여백을 채우면서 관찰자의 작가정신 구축하다”
장영희 화가
장영희 화가

미술계에서 탄탄한 입지를 지닌 대구미술협회는, 수학한 스승을 그저 답습하기보다 혼재된 양상의 창작이나 아카데믹한 획일화를 벗어나는 작가들이 매우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다. 그 중 41세로 첫 회원전의 문을 두드린 이래, 국내외 교류전과 단체전, 개인전과 회갑전까지 꾸준한 행보 속에서 지난 해 대한민국미술대전 한국화부문 특선을 수상한 장영희 화가는 대구미술계의 자랑이자 귀감이 되는 인물이다. 이미 경북미술대전과 정수미술대전, 한국미술대전, 국제종합예술대전 등을 섭렵한 장 화가는, 미대와 미술대학원 출신이 아니면서 한국화를 배워 서양화 기법으로 해석하는 독창성, 먹과 유화물감의 조화로 무용총과 천마도 벽화의 음각과 신령한 동물들의 압도적 형상을 깊은 인상으로 그려낸다. 그가 스스로의 힘으로 대가의 5부 능선을 넘어섰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련의 성과는 올해 그의 더 큰 도약을 예상하게 만든다. 

아카데믹한 경로보다 고전의 얼과 문양의 정서 구축해 국전 특선 등극
지난해 초, 한지와 캔버스, 벽화의 하이브리드를 통해 트레이드마크 같은 개성적 화풍, 섞거나 따로 표현된 먹의 깊이와 유화의 다양성이라는 독창적인 표현양식을 지닌 장영희 화가의 국내 미전 중 최고 권위인 국전 특선 수상은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놀라는 이들은 장 화가가 여느 국전 수상자와 달리 스승 남강 김원 선생의 진경산수를 거쳐 서양화가 최돈정 선생의 조언으로 수학한 이래 독학으로 화풍을 다져왔기 때문일 것이고, 당연히 여기는 이들은 그가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우리 고유의 문양과 산수의 절경 표현방식을 가장 직관적인 유화기법으로 ‘로컬라이징’한 선구자임을 충분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과거의 단순한 재현도, 혼자만의 파격도 아닌 장 화가의 창의성은 한 마디로 “붓으로 새긴 벽화와 캔버스 위의 암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1990년대는 화선지 위에 농묵으로 절경을 재현하고, 2000년 대 들어 혼합재료와 먹빛을 더해 천년재래 전통문양을 시도하던 장 화가는, 마침내 풍경의 토속과 기복문화, 패턴의 조화와 액션페인팅의 역동성에 접어들며 우리문화를 새롭게 바라보는 작가주의를 제시하기 시작했다. 특히 오방색과 진경산수로 양분된 한국화의 공식에, 묵의 농담 대신 음각과 양각의 선을 활용한 독창적 세계관을 제안하는 그의 기법은 마치 탁본으로 복원된 문화재의 숨결을 눈앞에 소환한 듯 신비와 경이로움을 더한다. <흔적> 연작을 마지막으로 화선지에서의 몽환적 번짐 효과와 고대 암각화 패턴을 벗어나며 창의성에도 재도약이 필요함을 역설한 장 화가는, 2020년 100호 대작 <기린>에서 유화와 스크래처, 뿌리는 기법만으로 암각화·벽화의 유적느낌 재현까지 이뤄낸다. 마침내, 그는 ‘천마’처럼 국전의 벽을 넘을 뿐 아니라 그 위에 자신의 이름 석 자까지 깊게 새긴 것이다. 

점묘와 암각화의 서사와 상징성 있는 대작으로, 회화보다 문화 그려내다
그의 이러한 시도에는 다양한 소재와 기법을 확립하려던 각고의 노력과 작가주의, 실험정신이 중첩되어 있다. 한국화와 서양화, 유채와 수채, 그리고 분채를 적절히 활용한 기법은 다른 작가들에게도 볼 수 있지만, 장 화가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판화 같은 색채 문양에는 사진을 찍고 스케치하며 소재를 모으는 과정에서 갈고 닦은 특유의 문화적 알고리즘과 시퀀스가 있다. 사실 그동안 <침수정>, <사인암>의 여백의 미로 가득한 정통 수묵담채와 달리 2001년 <설경>에서 보여준 양화의 은근한 수채 느낌에 이어, 이듬해 2002년 화선지 위에 수묵채색의 탈을 쓰고 르네상스와 인상주의가 결합한 서양의 유화기법을 재현한 <엉겅퀴>로 ‘극점프’를 해낸 기재를 보여준 장 화가로부터 경이로움을 느낀 사람들도 많았다. 그 밖에도 <한국의 미>, <향수>, <얼> 등은 장 화가가 화선지를 혼합재료로 변형시킨 단계이며, 이어서 <흔적>으로 캔버스 위에 화선지의 담채 느낌을 내는 시도 끝에, 장 화가는 접히거나 퇴색한 종이의 조악한 질감마저 패턴으로 재현해 오브제로 덧입히는 데 성공했다. <봉황>과 <달뜸/달짐+둥지> 연작은 신수와 동물의 형상을 비구상이나 일러스트처럼 표현한 것으로, 같은 피사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톤을 내는 사진을 관찰한 끝에 이를 그림에도 적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고전 화풍에도 액션페인팅으로 환상적인 배경을 연출할 수 있음을 입증한 수작들이다. 그간 종이에 물을 먹여 뒤로부터 색을 배어나게 했었다면, 색을 입힌 시점마저 바꿀 정도로 기발한 액션페인팅 기법을 활용하게 된 점도 이 시기 실험의 성과다. 동물의 표현방식에서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자연이미지>, 형태의 단순화 및 길이와 형상의 과장, 축약을 거친 <화원>, 배경 여백을 패턴화하고 꽃과 개구리의 실사를 나타낸 <봄의 향기>, <7월의 노래>까지, 그에겐 동일 작가의 작품이라 보기 힘든 개성이 확고하다. 이제 표현기법이 더 다양해져 유화와 먹으로 보여줄 것도 더 많아졌다는 장 화가는, 대작으로 만족할 성과를 거둔 후 코로나로 인해 미룬 개인전을 올해는 반드시 성사시킬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서의 수상은 PARIS-Echange Coree Athena 입상과는 다른 종류의 감동”이라고 표현하는 그는 “누군가의 왜곡된 소장욕구로 인해 몇몇 그림의 절도까지 겪은 당혹스러움도 있었다. 요즘 수많은 전시제안이 있지만 서두르지 않으련다. 서울에서도 큰 규모의 전시공간을 확보해 원본의 경이로운 느낌을 충분히 전달하고자 하니, 이번 개인전은 기대하셔도 좋을 것이다”라고 확고하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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