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리안이 이론화하고 두스부르흐가 새롭게 변형 구축한 컴포지션의 새로운 성찰
몬드리안이 이론화하고 두스부르흐가 새롭게 변형 구축한 컴포지션의 새로운 성찰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2.03.17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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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적 추상의 직각체계와 동적 사선구조를 융화시킨 독자적 색면구성”
화가 최재석 작가
화가 최재석 작가

예술공동체인 데 스틸(De Stijl, 1917-1931)을 이끈 두스부르흐는 수직과 수평, 삼원색을 바탕으로 한 몬드리안의 조형이론에 영향을 받았으나, 몬드리안의 이념에 한계를 느껴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이런 두 화가의 이념적 대립 안에서, 최 작가는 색면의 닫힘과 열림, 그리고  이탈과 연결을 추구하면서도 색면의 ‘섹션’, 색선의 ‘독립’의 이념이 큐브와 테트리스만큼 달라진 색면추상에 확고한 자기 의견과 이론을 정립하여 모종의 접점을 찾아 달려가고 있다. 개념주의와 색채론에 도면 같은 구성 실험을 시도한 최 작가의 작품에는 순수한 조형요소와 원리로만 보이는 기존의 추상작품과는 다른 도시적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아마도 작가가 전공한 도시건축적 개념이 그림에 나타나지 않았나 본다. 몬드리안도 뉴욕이라는 도시를 접하고 이전과 다른 조형적 패턴을 추구했다. ‘보는’ 것보다 ‘읽는’ 과정이 더 어려운 비대상/비구상을 향해, 최 작가는 올 봄 선보이는 갤러리 H(인사동) 개인전에서, 자신만의 확장성으로 21세기 추상주의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군더더기를 뺀 개념주의의 선과 색에 새로운 관계성을 논하는 추상

3월 30일부터 4월 4일까지 갤러리 H(인사동)에서 개최되는 최 작가의 첫 개인전에서는 근대예술운동을 전공하고 교직에 몸담으며 수 십 년간 추상회화와 색채철학의 관점에서 실험한 작품의 일부가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전공이 건축이지만 내용을 들려다보면 서양 근대예술운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색채실험과 조형이론을 바탕으로 개념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네덜란드 근대예술운동 중에서 데 스틸을 접한 최 작가는 몬드리안의 이념을 계승함과 동시에, 몬드리안의 이념을 극복하고자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 두스부르흐의 정신에도 주목해 왔다. 네덜란드의 근대건축과 회화분야의 접점에 주목한 최 작가는 백여 년 전 단순화된 선과 색면의 관계성을 탐구한 화가들처럼 무엇을 그릴지 고민했다고 한다. 특히 그는 색채의 발생에 대한 이론을 접하면서 뉴턴의 프리즘을 통한 색채 분리를 강하게 부정하면서, 색채 발생은 빛의 분리가 아니라 빛의 작용으로 인한 결과라고 강조한 괴테의 색채이론에 빠져들었다. 특히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색채론에도 주목한 최 작가는 자신의 확고한 색면추상 이론을 세우고 관련 논문과 단행본을 발간하며, 그 과정에서 이전의 추상 개념과 다른 색선과 색면의 관계성을 실험하고 있다.  


만나지 못한 직선과 사선의 밸런스와 융화를 추구한 색면, 색선의 첫걸음

바우하우스와 대척점에 있던 데 스틸을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두스부르흐처럼, 최 작가는 몬드리안과 두스부르흐의 기법을 참조하되, 선과 섹션의 분리된 구조가 배경의 일부 혹은 전부를 벗어나 새로운 경계를 이루는 구성의 변화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 작가는 자신의 잠재의식에 있던 개념주의가 아이의 그림처럼 간단한 몬드리안의 색면추상에서 무수한 선과 색면 하나 하나가 비(非)대칭성을 이루면서도 확고한 독립성과 관계성을 날카롭게 읽어내는 과정에서, 자신의 오랜 망설임을 깰 창작의 방향성을 찾게 된다. 그는 선의 평형관계 안에서 색을 어떻게 배치할지를 고민한 몬드리안처럼, 캔버스와 화면 안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몬드리안의 이념과 두스부르흐의 이념을 융화시키려 색면과 색선의 이탈과 부유, 그리고 연결을 통하여 새로운 관계성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최 작가는 콤포지션의 색을 절제하면서 배경 혹은 양감의 요소였던 흰색 사선을 경계의 일부로 도입하게 된다. 그리고 단순하되 겹치지 않는 선과 면의 조직이라는 전제는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까다로웠지만, 몬드리안식의 선과 색의 거리감을 존중하되 그 사이의 섹션을 뺀 비색선과 색면, 색선을 시도하여 새로운 영역의 의미를 찾는 구성 실험을 하였다. 또한 절제된 색감에서도 찾을 수 있는 ‘색채의 다양화’의 역설은 흰색 자체에도 언어적 미묘한 구분이 있다는 비트겐슈타인적인 관점이다. 더불어 말레비치의 평면 변형 효과처럼 쉽게 식별되는 적색과 청색 표현에도 색상의 질감과 어느 위치에 색을 칠해야 합당할지를 고뇌했다고 한다. 

색면 추상의 다양성이란 때로는 남발보다는 절제를 통해 강조된다.

동경과 뉴욕의 갤러리를 찾아다니던 과정에서, 새로운 시도라 생각한 것을 누군가가 이미 수십 년 전에 시도했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도 그의 절제된 주제의식에 영향을 주었다. 이것이 그가 지금까지 그려온 작품 중 색을 분리한 프리즘이론의 대안을 제시한 괴테의 색채론과 관련된 작품은 다음 전시로 미루고, 데 스틸 계열 작가들의 철학을 재해석한 색면추상 작품들만, 이번 전시에 내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림이라기보다는 색과 선의 철학이라는 몬드리안의 재해석, 작가들 간의 첨예한 이론 대립 속에서 색선과 색면의 해방을 그린 최 작가의 콤포지션은 여전히 관계성을 지향한다. 45도 사선의 규격을 넘어 다양해진 각도, 앵글에서 빠져나온 불규칙함으로 칠해진 이 사각형들이 진지한 색면 실험으로 보이는 것은, 그 각각의 비스듬함 속에서도 모두 다양한 방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최 작가의 중용적 색면추상은 기본과 반복에서 새로움을 찾는 시도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강하게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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