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로 영웅과 비너스의 생명을 구현한 21세기 피그말리온의 사진용접
3D로 영웅과 비너스의 생명을 구현한 21세기 피그말리온의 사진용접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2.03.17 15: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육·해·공 시리즈의 끝, 바다테마에 세계관을 여는 마음으로 접근하는 중”
정기웅 조각가
정기웅 조각가

2019년 5월 갤러리 코사에서의 초대전 <L`s go>는 평면에서 입체로 도약하는 조각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정기웅 조각가가 그의 ‘생명’이라는 방대한 주제로부터 우리 삶과 생활 속의 소주제를 매끄럽게 탐색한 과정을 나타낸다. 출력된 사진을 재조합한 사진조각으로, 현대조각미술의 3D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정 조각가는 평면에서 홀로그램으로만 접할 수 있는 시선의 입체변화를 보다 적극적인 3차원 격자 프레임으로 재구성해 생동감을 극대화한다. 생명 시리즈에서 하늘과 바다, 땅을 주제로 인체의 비례는 유지하되 중력과 밀도에 변화를 준 그는, 미술과 컴퓨터조형분야를 가르치는 대학 교수로 임용된 올해는 개인전 대신 교육과 함께 학생들에게 예술과 인생, 창작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많은 지혜를 주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H에서 L로, 그리고 HERO의 오마주까지 가상의 인격체는 진화한다

컴퓨터 모델링 시뮬레이션으로 만든 신체이미지를 투명 폴리카보네이트 소재에 길고 가늘게 나누어 붙이되, 실제 인체비율 그대로 전시공간에 모델링해 현실감을 극대화하며 CG처리된 블록버스터 영상캡처를 보는 듯 생동감 넘치는 조각. 현대 사진조각을 추구하는 정기웅 조각가의 작품들은 땅에서, 그리고 허공 위에서 감각과 양감, 역동성으로 재구성된 인체 파편들의 카논(Canon)이다. 이 재구성된 오브제들은 피조물의 새로운 세계관을 끌어당기며, 멀리서, 정면에서, 그리고 측면에서 볼 때 각각 다른 차원의 느낌을 주는 이 기법은 생명에 대한 성찰에서 나왔다. 서울시립대 환경조각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정 조각가는 생명과 육체의 속성을 모습과 형상에서 찾으며, 여기에 성별로 구분된 M과 F, 합일체이자 생명의 씨앗인 H를 만들어 단순화와 압축으로 간결하고도 색다른 형상을 이뤄냈다. 그리고 공간을 비워내 만든 음영으로 인간의 다른 형태를 조합해, LIFE를 태동시켰으며, 삶의 요약인 L을 테마로 보다 역동적인 파쇄와 재조합으로 날고, 달린다. 이카루스처럼 자유로우며 피그말리온처럼 피사체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정 조각가는 2013년 경 실제 사진의 입체모델링을 시작으로, 2018년 개인전 <THE GENESIS OF ‘L’>에서 L아담과 L이브를 소개하며 디지털 모델링의 시대를 알렸다. 물론 연산툴로 대상의 조립은 수작업만으로 할 때보다는 수월해졌지만, 그렇다고 소재의 빈곤까지 기술로 커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정 조각가 역시 이미지와 대상의 표정을 구현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특정 인물의 성향을 본뜬 가상 인물을 위한 특별한 육해공의 세계관을 준비했다. 디지털프린트와 폴리카보네이트 패널들로 구성된 이 새로운 인물들은 2019년, 콘셉트와 세계관 속에서 3D로 성큼 걸어들어와 DG코믹스 세계관의 영웅 슈퍼맨으로, 운동선수와 공군처럼 허공에서 칼날 같은 밸런스와 투명하고도 몽환적인 양감을 지닌 가상의 인격체로 오마주 된 ‘현실 속 영웅’ 세계관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정에서 동으로, 도구기술 혁신이 창작에서 동어반복의 벽을 깬다

2019년 서울국제조각페스타 대상수상자인 그는 2020년도 개최가 코로나로 취소되며, 지난해에 초대작가로 ‘하늘 시리즈’를 선보였다. 또 슈퍼맨 캐릭터에 영웅과 동네백수라는 비범과 평범의 이미지를 교차해 넣은 것은, 차가운 건축소재이자 견고한 평면소재인 슬래트를 벌집 구조 같은 입체와 격자의 조합으로 바꾼 소재변형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사진의 용접’이야말로 기술 발전이 인간을 닮게 표현하는 기법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오히려 인간에게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영역으로, 그는 인체비례의 분해와 재조합에 일체의 공포요소 없이 슈퍼맨의 역동성, 이탈리아 영화 여배우에게 느껴지는 관능미를 풍부하게 배열한다. 특히 미술의 기반은 인체묘사에서 나오기에, ‘육해공’ 시리즈를 통해 정적이던 입체작업이 동적으로 극점프하면서 그의 L아담과 L이브는 더 많은 배경을 갖게 된다. 그의 다비드와 성모마리아는 골판에 데이터를 적용해 3D로 추출한 형상을 층별 도면으로 만든 뒤, 플로터로 1:1사이즈에 맞춰 딴 도면을 정확한 측량대로 붙인다는 면에서 현대적인 대작이라 할 만 하다. 하나의 작품에도 6개월 이상 소요되는 것은 구상과 조합은 물론, 출력 후의 수작업에도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물을 두른 사람을 대리석 조각으로 표현하다 수제자들이 야반도주했다는 18세기의 프란체스코 케이롤로와 달리, 메타버스와 NFT가 현실로 들어온 21세기의 그는 운이 좋은 편이다. 동년배들보다 빨리 컴퓨터에 동화된 덕분에, 강원대 교수로 임용되어 미술과 컴퓨터조형분야를 그래픽툴로 강의할 기회를 얻은 정 조각가는 “조형에서도 기술과 도구의 발전이 표현의 혁신을 가져온다”며 순수예술가를 키우는 커리큘럼과 재료·소재상의 개척자정신 사이에서 중용을 제안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여전히 3D작업자들은 인간을 구현할 때 ‘불쾌한 골짜기’를 피해가려 노력하는 와중에, 그는 피조물에 옷을 입히고 문양을 더하며 광택을 덧대어 세계관이라는 무대에 세우는 예술을 택했다. 정 조각가는 전업작가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제자들에게도 기술의 진보라는 대안적 희망을 제시한다. 무료파일이 있어도 기꺼이 공연예매를 하는 케이스처럼, 미술에서도 사진보다는 실제 전시와 영상으로 진가를 보여주어 새로운 생존을 모색하겠다는 정 조각가는 ”올해 개인전은 쉬는 대신 교수로서 전임자의 업무를 잘 이어받고 창작자로서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바다 시리즈’도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