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사실주의와 낭만주의 사이로, 현대사 인물의 족적을 품격 있게 고증하다
극사실주의와 낭만주의 사이로, 현대사 인물의 족적을 품격 있게 고증하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2.01.18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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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적 기록예술의 행보에 한국무역협회 역대 회장 초상화 작품 더하다”
오동희 화가/오동희초상화갤러리 관장
오동희 화가/오동희초상화갤러리 관장

초상화가를 아름다운 인물화가보다 인물의 삶을 기록하고 그의 족적을 반추하여 되짚는 보존가이자 예술 창조자로까지 격상시킨 한국의 초상 전문화가, 오동희 화가는 최근 한국무역협회(KITA)의 역대 회장단 초상화 작업을 마쳤다. 2016년 서초구 반포동에 재개장한 4층 규모의 오동희초상화갤러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화업을 지속하던 오 화가는,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초상화를 완성한 데 이어 지난해 가을부터 정치와 경제의 유력인사를 모은 역대 회장단 초상화 작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김수환 추기경, 구인사 1대 큰스님과 같은 세계 각국 종교적 성인들과 문화예술 인재들의 초상화에서 개인의 성향과 업적을 조명하는 표현기법으로 국내 정상의 경지를 보여준 그가, 이번 작품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은 바로 치열한 현장에서 한국 경제를 조율해 온 정재계 인사들의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다. 

다양한 시대의 아이콘들을 한 폭의 그림에 요약하는 관찰자적 성향

학구적이지만 엘리트주의에 빠지지 않고, 자유로우나 품위를 지켜가는 인물화, 그래서 더 아름다운 초상화의 고결한 가치를 발굴하고 정의하는 오동희 화가는 그의 50여 년 화업에 있어서 색상이 아닌 인상과 영혼을 복제하는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보수적인 유럽 화단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신고전주의 작가의 우아함을 인정받았고, 한결같은 리얼리즘 기법에 따른 부드러운 톤, 온화한 표정으로 인물의 품격을 나타내는 화풍으로 사진보다 더욱 깊은 인물의 감성묘사에 강한 작가다. 모든 초상화가들이 평생의 대업으로 삼는 역대 대통령초상화 작업 후, 오 화가는 지난 해 매우 의미 있는 작업으로 기록될 한국무역협회 역대 회장단 초상화 의뢰를 받았다. 오 화가는 한동안 문화계 인사와 천주교 어농성지 헌정 초상화작업처럼 삶의 고결한 궤적을 담는 작업을 해 왔는데, 이번에는 치열한 경제현장을 진두지휘한 인재들의 삶을 사진에서 초상화로 옮기는 역할이었기에 품위와 내면의 깊이를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초상화란 경매에 오르는 컬렉티브 아이템이 아닌, 누군가의 삶을 복원하고 기록하는 그림이므로, 캐리커처가 아닌 사실주의 인물화에서는 얼굴과 신체의 비례, 미세한 표정과 자세로 그의 인상을 간결하게 묘사해야 한다. 이 점에서 서양유화의 궁정예술가적 음영과 세밀함은 가져오되, 실사에 가까우며 위엄보다는 인물에 대한 존중과 성향 재현을 중시하는 동양초상의 세필선묘법, 수없이 터치하며 자연스런 골상의 명암을 드러내는 서양화의 기법이 더해진 오 화가의 기술은 강세를 보인다. 그의 복식과 장신구, 머리모양과 같이 디테일한 부분의 철저한 검증, 해부학적 지식이 더해져 비례의 안정감이 느껴지는 표현은 초상화의 안정감을 더해준다.

초상화의 품격에 한국 정재계를 아우르는 중역들의 깊은 인상을 담다

MIFA 아트페어, 파리아트페어에서 호평 받았으며 상설갤러리이자 국내 첫 공식초상화전문갤러리이기도 한 오동희초상화갤러리를 운영하는 오 화가는, 이번 작품과 여러 그림 박람회와의 연관성에도 깊은 관심을 보인다. 1946년 창립된 한국의 주요 경제5단체인 한국무역협회의 대표사옥 COEX는 한국 화가들에게 박람회, 전시회의 대명사이자 귀한 요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작자로서도 의미가 있는 한국무역협회장들의 역대 초상화작업은 한국 무역업체들의 업력증진에 힘쓰는 단체의 역대 회장을 표현하는 작업이자, 해외순방에서 장관급 의전을 받아온 회장단 총 18인의 이미지를 담는다는 면에서 정치와 경제 주역을 따로 담아왔던 역대 초상화작업과는 다른 접근을 해야 했다. 

오 화가의 화폭에 담긴 회장단의 명단은 1-2대 김도연(대한민국 초대 재무부장관), 2-4대, 8-14대 이활, 4대 임문환, 5-6대 최순주(제3대 국회부의장), 6-7대 강성태(상공부장관), 15-17대 박충훈, 17대 김원기, 17대 유창순(15대 국무총리), 18대 신병현, 18-20대 남덕우, 21대 박용학, 22-23대 구평회(현 구자열 회장의 아버지), 24-25대 김재철(동원그룹 명예회장), 26대 이희범(8대 산업자원부장관), 27대 사공일(33대 재무부장관), 28대 한덕수(제38대 국무총리), 29대 김인호(9대 국무총리직속 공정위위원장), 29-30대 김영주(제 10대 산업자원부 장관)에 이른다. 이미 오 화가는 2016년 윤운혜 루치아, 정광수 바르나바 부부로 대표되는 천주교 어농성지 순교자 8인 초상헌정과 벽화작업처럼 하나의 주제 아래 여러 인물의 얼굴을 남기는 복원작업을 수차례 성공적으로 이뤄냈기에, 단일작업이 아닌 대작으로서 초상화 고증 분야에서 쌓아 온 오 화가의 입지와 신뢰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인생은 짧지만, 초상화는 영원히 남아 기록될 역사의 한 면을 채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젊은 시절 미술관을 구두 뒤축이 닳도록 드나들며 예술혼을 충족해 온 오 화가의 생기 넘치는 삶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예술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그는 완벽주의를 추구하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예술의 일부로 승화시킨다는 초상화 작업도 사랑한다. 작업과 강의를 병행하는 그는 지난 9월 회장단 초상화를 의뢰받아, 10월부터 아침 8시마다 출근해 작업에 착수하여 예정일자인 1월 중순보다 빠른 11월 경 채색을 마쳤다고 한다. 그리고 노프레임이 유행하는 요즘, 오 화가는 이와 반대로 12월 한 달 간 그림을 액자에 배치하며 인물과 배경이 조화를 이루는지, 각기 다른 역대 회장들의 업력과 삶이 충분히 담겼는지를 예술가적 관점에서 고심하며 후시 수정보완작업에 신경을 썼다고 한다. 

특히 고인이 되어 더 이상의 자료를 구할 수 없거나, 단 한두 장의 사진이나 흑백사진, 해상도가 낮은 자료사진들로 모든 인물들의 인상과 밸런스를 맞추어야 했기에 시대별 고증과 연령별 얼굴 골격의 변화를 독학으로 연구한 오 화가의 노하우가 이번 작품 구성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덧붙인다. 격동의 한국사에서 현장의 경제인으로서, 때로는 정계에 진출해 자신의 경험을 경제 연합체들과 공유해 강직하게 정책에 반영했을 이 회장단들의 삶에 몰입해, 언제나처럼 적재적소의 섬세한 그림으로 나타내는 데 총력을 기울인 오 화가는 덕분에 이번 작업의 성취도가 높다고 한다. 그리고 화자의 내면적 욕구와 성취감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번 작업으로 이목구비와 자세, 표정에 그러한 인생을 압축하듯 담은 자신의 시도가 인물의 성품에 잘 담겨져 후대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라는 소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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