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지만 견고한 잠자리 날갯짓처럼, 치유의 메시지로 묘사된 자연의 소리
여리지만 견고한 잠자리 날갯짓처럼, 치유의 메시지로 묘사된 자연의 소리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1.10.12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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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자연 속 빛과 착시효과로 증폭된 작은 날개와의 희망어린 공존”
이성옥 작가
이성옥 작가

1996년 용인에 작업실을 차리고 기하학적 작법으로부터 자연의 상징성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조각가 겸 설치미술가 이성옥 작가는, 15년 전부터 ‘자연의 소리’를 주제로 각기 다른 소재와 소주제를 통해 환경과 생명에 대한 메시지를 금속 작업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지난 9월 인사아트센터 4층에서 열린 개인전 <자연의 소리_Sound of Nature-Healing>전에서, 이 작가는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에 레이저 커팅과 그라인더, 스크래칭 기법으로 형태를 조성하고 일루전, 홀로그램의 느낌으로 가을의 상징적인 희망과 추억을 나타낸다. 18세기 계몽주의에 반기를 든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처럼, ‘자연의 소리’를 상징하는 잠자리와 나비의 여리지만 견고한 날갯짓 소리는 힐링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작가는 빛의 증폭을 활용한 이번 전시에서도, 오래 전 경험한 가을의 기억과 노스탤지어의 감성을 차가운 금속성 재질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로도 섬세히 구현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행복한 가을맞이 소리, 자연 향한 그리움과 잠자리의 날개로 은유

지난 9월 15일부터 27일까지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이성옥 작가의 새로운 <자연의 소리> 테마는 ‘힐링’이다. 잘 보존된 자연에 인간의 손길이 닿을수록, 잠자리, 나비, 반딧불이 같은 자연의 소리들이 사라져가는 아쉬움을 비관적인 시각보다는 그리움-노스탤지어의 정서로 나타내는 이 작가는, 사뭇 환경적인 메시지를 자연과 인간의 공존가능성 제안으로 풀어나간다. 사라져가기에 간직하고픈 자연을 향한 메시지를 표현하고자, 이 작가는 역설적으로 차갑고 냉정한 분위기의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를 레이저 기법으로 커팅하며 아주 얇고 가녀린 잠자리의 날개선을 재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주 오래 전 1m에 달하는 큰 사이즈였음에도 지구 기후변화에 맞게 생존하고자 작아진 잠자리지만, 인류는 각기 다른 근육으로 연결되어 정밀하고 항상 펼쳐진 4개의 잠자리 날개로부터 프로펠러와 동력 플라이어의 영감을 얻었었기에 나 또한 잠자리의 날개를 이번 테마의 소재로 삼았다”는 이 작가는, “잠자리의 그 여린 날개가 대양을 건너고 종족을 퍼뜨리는 생명력의 원천이자 가을의 상징이기에, 이번 가을 전시의 메신저로도 적절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벽면과 천장을 작품의 캔버스 겸 배경으로 활용하고 있는 이 작가는, 이번에도 원의 중첩과 다각도에서의 해석이 가능한 키네틱 아트 성향을 토대로 홍콩 하버씨티몰 전시에서 격찬 받은 거울효과가 담긴 <연못 시리즈>의 연장선을 보여주며, 공중의 원형 모빌로 차가운 금속성을 영롱한 비눗방울과 천상의 세계로 전환하고 있다. 또한 빛과 인간의 시선에 따라 메탈 빛 잠자리, 나비의 형상들을 그림자 착시효과에 따라 불규칙한 군집성으로 배치하여, 흐드러지듯 가을이 오는 행복한 소리의 감성까지도 시각화하고 있다. 

황금의 들녘과 노을, 오로라처럼 찬란한 시간의 여정 담은 힐링타임

이미 나비 작품으로 얇은 스틸표현의 달인이 된 이 작가에 따르면, 그가 표현하는 잠자리의 그물망 같은 날개는 “거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여림과 강함을 겸비하고, 하찮아 보이지만 귀중한, 그리고 파괴와 보존처럼 서로 상반된 관계 속에서 소중함과 깨달음을 인지하게 만드는 메타포”라고 한다. 그가 그리움의 메타포로 삼은 잠자리 날개를 4개가 아닌 2개로 표현한 후, 그림자 효과로 반추시켜 4,6,8개 그 이상의 멀티 레이어로 신비로움을 더한 결과물은 현장에서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얇지만 견고한 금속 소재의 한계를 넘고자 한 이 작가는 커팅과 그라인더 등 다른 기법 상으로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조각의 형태 위에 붓으로 유화를 그리거나 붓글씨 한 획을 긋듯, 이 작가는 스틸 표면에 강약을 둔 스크래치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강도와 방향이 더해진 이 흔적들은 수확 철을 앞둔 밭처럼 친근하며, 빛을 가하면 반사되어 착시와 홀로그램 느낌도 나기에 가을의 노스탤지어 표현에는 더없이 좋았다고 한다. 마치 해가 지는 노을과 뜨는 일출, 그리고 백야의 오로라처럼 다양한 자연의 아름다운 빛깔은, 이 작가가 2년 전부터 단색조의 금속에 색을 도장하고 스크래치의 일루전 효과를 내면서 배가되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이 작가는 이번 전시가 관객이 직접 체험하는 현장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작품들은 강도와 투명도를 높이는 코팅과 그라데이션으로 한계를 줄인 도장으로 제작되고, RGB LED컬러를 넣었기에 조명효과에 따라 색채와 느낌이 서서히 변해 간다. 이어서 이 작가는 이번 작품들의 메시지를 제대로 감상하도록 관객들에게 아트벤치를 제공했으며, 오래도록 편히 앉아 응시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색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함으로써 아늑한 힐링을 원하는 대중들의 공감을 얻었다고 한다.

빛과 금속의 레이어링 결과에 만족, 다음 시도는 소리의 미디어아트

1984년 첫 개인전을 치른 이래, 다양한 변화를 겪은 이 작가의 ‘자연의 소리’ 테마는 15년에 걸쳐 포괄적인 대작을 지향하는 편이다. 그가 보여준 중첩은 화합이자 물아일체이며, 조화로움이다. 빛을 통과한 잠자리의 날개 사이로 수없이 겹치는 그림자들은 레이스를 연상케 하는 화려함으로 어디든 갈 수 있는 힘찬 날갯짓도 암시한다. 이 점이 바로 이 작가의 페르소나인 날개 달린 곤충이 스노우볼이나 모래시계에 갇힌 피조물이 아닌, 잃어버려선 안 될 우리 자연의 소중함을 은유하는 근거이자 희망임을 보여준다. 그 중 돔을 활용해 3D도면과 격자 작업으로 이뤄낸 오차 없는 과감한 대작이자 나비의 날개 이미지와 원형 파빌리온, 스틸 연못의 거울효과를 조화롭게 표현한 홍콩 하버씨티몰에서의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이 호평에 힘입어 새로운 <자연의 소리> 모빌 대작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선보이고, 지난 해 광주미술관 개인전에서 각종 아트페어와 조각페스타까지 다양한 전시에 참여한 이 작가는 9월 23일부터 모산미술관 심포지엄에도 참여했다. 한편 2019국제조각페스타의 운영위원장으로서 공공미술, 설치조형미술에 조예가 깊은 이 작가는, 빛과 금속의 착시효과와 레이어링을 아트벤치의 여유로움과 조화시킨 이번 전시를 계기로 미디어아트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고 한다. 심해의 조명과 밤하늘의 불꽃놀이 같은 형상의 스크래치 음각연출로 미지의 공간을 가을날 ‘반딧불이의 밤’처럼 매혹적으로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입체적인 자연의 연못을 실내공간에 섬세하게 재현한 이번 잠자리 날개 연출에 이어, 나비와 개구리, 새, 바람의 소리들을 영상과 함께 벽면에 설치하는 작품도 기획 중이다. “살아있는 자연의 노이즈는 도심의 힐링이 된다”는 이 작가는, 창조적이되 사계절과 삶처럼 자연스레 흘러가는 작품을 하는 편안한 작가, 솔직함과 공감대로 다른 이의 감성에 와 닿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로 남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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