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을 아는 신사들의 아지트, 찰스바버샵
멋을 아는 신사들의 아지트, 찰스바버샵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1.09.16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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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바버샵 정철수 원장
찰스바버샵 정철수 원장

자로 잰 듯 반듯한 가르마와 포마드로 손질해 깔끔하게 쓸어 올린 앞머리. 60~70년대를 풍미했던 남성들의 클래식한 헤어 스타일링이 ‘뉴트로(New-tro)’ 열풍과 함께 돌아왔다. 새로움과 고풍스러움을 함께 담아낸 뉴트로 문화는 이미 젊은 세대의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메가트렌드 중 하나. 그 중에서도 헤어스타일링 뿐 아니라 복고풍 맨즈 그루밍의 흐름을 다각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인 ‘바버샵(Barbershop)’은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이번호 <월간 인터뷰>에서는 무려 56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국 남성 헤어 스타일링의 역사와 함께해 온 인물, 그리고 과감한 도전과 함께 국내 바버샵 열풍을 선도하고 있는 인물인 ‘찰스바버샵’의 정철수 원장을 만나봤다.

남성 헤어 스타일링의 역사, 56년 경력의 베테랑
남자들의 스타일링에 있어서 ‘헤어’는 무엇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다. 상대적으로 외모를 관리할 수단이 부족한 남자들에게 있어 얼굴형과 이미지, 상황과 장소에 맞는 헤어 스타일링은 남자의 멋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북미와 유럽에서 출발해 최근 4~5년 사이 강남과 홍대 일대에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한 ‘바버샵(Barbershop)’은 바로 이러한 남성들의 니즈에서 탄생했다. 커트와 면도, 스킨케어는 물론, 얼굴과 체형에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컨설팅해주기도 하는 남성들의 문화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한 것이다.

젊은이들의 성지라 불리는 홍대에 위치한 ‘찰스바버샵’은 지난 2015년 7월 첫 문을 연 이래 국내에 바버샵 문화를 알리고, 그 열풍을 주도하는 첨병 역할을 해왔다. 특히, 정철수 원장은 그간 조선호텔에서 20년, 신라호텔 6년, 힐튼호텔 4년 등 국내 유수의 호텔 이발소에서 근무하며 정·재계에 걸친 수많은 저명인사들의 헤어 스타일링을 전담해왔던 인물로서 그 실력을 당당히 인정받은 명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정 원장이 업계에 뛰어든 것은 그가 아직 고등학생이던 16살 무렵. 전북 정읍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운 집안 형편 속에 공부보다는 운전이나 목공 같은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명절을 앞두고 동네 이발관의 일을 조수로서 돕게 되었고, 그 매력에 빠져 이용사로서의 길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이후 1968년 서울로 상경한 그는 여러 유명 이발관을 오가며 무수한 실전 속에서 기술을 쌓았고, 그 와중에도 최신의 트렌드를 공부하거나 고급 기술을 연마하는 데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던 정 원장이 바버샵에 도전하게 되기까지는 여러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다. 당시만 해도 이발소, 이발관이 퇴폐 영업의 온상으로 치부되며 이미지가 급격히 안 좋아지던 때였고, 정 원장 개인적으로는 일하던 호텔 이발소가 내부공사 문제로 문을 닫게 되며 갈 곳이 마땅치 않아진 것이었다. 이에 그는 고민 끝에 미국으로 떠날 결심을 하게 됐다. 바버샵이 열풍이던 미국으로 이민을 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던 것이다. 그런 정 원장을 붙잡은 것이 그의 오랜 단골이었던 고객이었다. 그는 홍대에 소재한 자신의 건물에 자리를 마련해주겠다며 정 원장을 잡았고, 그렇게 2015년 7월 홍대 찰스바버샵이 탄생했다.
정 원장은 “조선호텔 근무 당시 단골이었던 외국인이 제 이름을 듣고 지어준 영어 이름인 ‘찰스’를 따 ‘찰스바버샵’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당시는 국내에 몇몇 바버샵이 등장해 운영은 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버샵에 대해 잘 모르던 때였습니다. 더군다나 바버샵의 이용료가 일반적으로 여느 미용실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었기에 젊은 세대들로서는 방문하기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저는 ‘사람들에게 바버샵을 알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오픈 초기 3일간 1천 원, 이후 1년 동안 1만 원의 이용료를 책정했습니다. 그리고 방문한 고객들에게는 최소 1시간 이상의 시간을 할애해 제가 지금껏 쌓아온 모든 기술과 서비스를 선보였습니다. 그것이 고객들의 만족을 불러오고, SNS, 블로그 등을 통해 전파가 되면서 지금과 같은 인지도를 얻게 된 것 같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바버샵 문화의 부흥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정철수 원장은 일반적인 미용실과 다른 ‘바버샵’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남성들의 머리에 특화되어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용실에서는 여성들의 긴 머리는 잘 다루지만, 상대적으로 짧은 남성의 머리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머리의 길이에 따라 커트 방법이나 스타일링도 당연히 달라져야 하고, 머리를 자르고 난 뒤의 자연스러움도 그에 맞춰 고려되어야만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 그는 “바버샵에서도 속칭 바리캉이라고 부르는 ‘클리퍼’를 사용하긴 합니다. 하지만 이 바리캉만으로 스타일링을 하는 것은 처음엔 괜찮아 보이지만, 나중에 머리카락이 자라고 나면 지저분해 보인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저희는 정말 필요한 부분에만 클리퍼를 곁들이는 정도로 활용할 뿐, 이발의 전 과정을 오로지 가위로 작업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커트 한 번에 무려 3,500번 이상의 가위질을 필요로 하는 만큼 고되고 힘든 작업이지만, 가위와 빗을 가지고 작업해야만 사람마다 다른 두상의 모양과 굴곡에 맞춰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고, 이발이 끝난 후 고객 분들의 만족도도 훨씬 높습니다”라고 전했다.

물론 이러한 커트 기술은 단순히 가위질을 고집한다거나, 많이 한다고 해서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철수 원장과 같이 오랜 경험과 그 과정에서 쌓아온 노하우가 충분히 축적되었을 때에만 체득할 수 있는 기술인 것이다. 때문에 정 원장은 이러한 기술을 쉽사리 전수할 수도, 전수하기에도 어려운 최근의 상황에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는 “최근 후진 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단순히 말이나 글로써는 전할 수 없는, 적어도 4~5년은 함께 보고 경험하며 배워야하는 것이기에 어려움이 적지 않습니다. 불과 몇 개월의 시간 동안 기술의 외양만을 흉내 낸 정도로는 고객을 만족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이 계속된다면 대중들의 바버샵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꿈을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정진하길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정철수 원장의 목표는 ‘찰스바버샵’을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바버샵의 명가로 키워나가는 것, 그리고 배움을 원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함으로써 국내 바버샵 문화를 부흥시키는 데에 일조하는 것이다. 땀 흘려 얻어낸 값진 성공의 의미를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 세대가 추구해야 할 가치의 진면목을 찾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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