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지고의 선비정신 입각한 묵향으로 한국서예문화 발전에 한 획 긋다
순수지고의 선비정신 입각한 묵향으로 한국서예문화 발전에 한 획 긋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1.08.1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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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법의 미학으로 한국 서예예술발전과 비림박물관 수비작가 양성 기여”
효계(曉溪) 박성호 서예가/서산장학재단 이사장, 한국서예비림협회 명예총재
효계(曉溪) 박성호 서예가/서산장학재단 이사장, 한국서예비림협회 명예총재

서산 태안, 해미읍성, 그리고 충남 예산의 문화유산을 돌아볼 때, 우리는 서예대가이자 서산향토문화연구소장으로서 서예문화발전과 민족의식고취에 앞장선 어느 대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학자 가문에서 태어나 일찍이 선비정신에 눈을 뜬 그는 사회활동과 서예를 통한 문화유산기록, 후학양성에 평생을 바친 서예가 효계 박성호 선생이다. 한국 최초의 서예 비석숲인 예산 한국서예비림박물관에는 후학들의 작품이 입비되어 있고, 자신의 팔순잔치도 태안향교의 <한문서예 팔순 서예전>으로 대신한 서예 대가인 효계 선생은 얼마 전 온라인 강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안다위서예실에서 붓을 들며 유튜브 <초고속 한문서예비법>으로 서체를 획마다 쉽고 편안하게 임서하는 법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그의 눈빛은 여전히 청년처럼 형형하다.

여초 선생의 수제자로 태안의 서예문화 중흥과 지역발전 앞장서다

매년 정기 서예문인화전을 개최해 후학들을 숙련시키고, 전국 서예공모전에 입상한 후학들에게 국제교류전을 주선하며 한국 서예문화발전의 입지를 세운 서예인 효계 박성호 선생의 삶은 선비가 진중하게 갈아 온 묵의 향에 비유할 수 있다. 2003년 개관한 안다위서예실에서 여전히 서법을 다지고 있는 그는 정통성 있되 경직되지 않은 지도자이다. 올해로 유튜브에 <초고속 한문서예비법>을 30강 이상 업로드한 효계 선생은, 요즘 시국에도 비대면 영상강의를 통해 많은 이들이 확고하고 바른 서예정보를 언제 어디서든 편리하게 배우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처럼 우리 전통문화를 사랑하고, 랜선 너머로도 잔잔한 묵향을 맡을 수 있음을 보여준 효계 선생은 문화의 변방이지만 도리와 의로움을 아는 군자들의 도시,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한학자 가문이었기에 학창시절 의로운 마음으로 학생들과 4.19를 주도하며 무기정학을 감내한 것을 계기로, 그는 어릴 적 꿈인 외교관 대신 수의과에 진학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효계 선생의 삶에 다시 한 번 터닝 포인트가 된 계기는, 우리의 얼을 서예로 살려낸 필생의 대작 광개토대왕비문을 완성한 동방연서회 창립자 겸 명필 여초 김응현 선생과의 만남이다. 영문학 전공자면서도 전통서법과 서도 수련에 힘써 안진경, 구양순에 이어 한위시대의 서법까지 통달한 은사의 가르침으로, 수의학도인 그가 1990년도부터 관심을 갖게 된 분야는 서예를 통한 한국 전통서법의 연구복원과 임서였다고 한다. <효계예서천자문>, <생활한자>, <오청취당 시 서체집> 등을 출간한 효계 선생은, 한글과 한문의 다섯 서체, 문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재들을 양성하며 서화회 회원들에게 기회를 주고 서예낙후지역마다 재능기부를 아끼지 않았다.

서예학도와 서예역사기록 위해 조성된 국내 최초의 한국서예비림박물관

한국의 서예학도들이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 추사체를 비롯한 아름다운 서체들 6백여 점이 석각된 한국서예비림박물관(관장 우민정)의 수비작가들 중에는 효계 선생과 한국서예비림협회의 영향을 받은 제자들이 많다. 1992년 중국서법가협회로부터 국내 최초로 중국역사박물관에 초청받은 한국서예비림협회가 중국 공묘 서안비림박물관의 유서 깊은 천년비정에 감흥을 얻어, 2002년 한국에 선을 보인 비림박물관은 협회장을 역임한 효계 선생에게도 보물 같은 역작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우 관장의 작품을 비롯한 유명 서예인들의 작품들이 매혹적인 석각의 양식과 함께 전시되고 있으며, 전서, 예서, 행서, 초서, 해서로 해석한 명문장들의 서체들이 각화(刻畵), 석경(石經), 묘지(墓誌)를 포함한 오서의 다양한 필법에 의한 입비들로 채워져 있다. 또한 역사적 인물인 한석봉, 김생을 비롯해, 명필로 이름난 세종, 정조, 흥선대원군, 안평대군은 물론 김구, 이시영, 손병희 등 독립운동가의 서체, 역대 대통령들의 서예작품도 볼 수 있다. 나아가 국내 중진작가, 해외 유명작가들, 현존 작가들의 한글, 한자 서체 작품들과 함께 통일을 기원하는 통일비림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가히 서예역사박물관으로서 깊이와 입지를 겸비한 장소라고 칭할 만하다. 효계 선생 또한 비림박물관이 지역문화중흥과 민족서예문화 기록의 장으로 활용되길 바라며, 모든 방문자들이 박물관의 정취 속에서 해/예/전서의 정태적 흐름에서 행/초서의 분방하며 동태적인 서체의 분위기를 고루 만끽하기를 바라고 있다. 

시서화로 표현된 향토문화 지킴이의 아름다운 행적과 봉사정신

한국서화공모전심사위원, 대한민국통일서예비림협회 공모전·초대전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효계 선생은 한국서예비림협회 명예총재 외에도 한국갑자회, 세계중국서화예술협회 명예주석에 이어 서산장학재단의 창립자 故성완종 씨의 이사장직을 이어받았다. 효계 선생은 지금도 3백억 원의 사재를 쾌척해 2만 5천명의 학생들을 도운 그의 선행을 부각하며, 세간의 오해를 풀고자 최선을 다해왔다고 한다. 이러한 효계 선생의 의로운 기질은 1974년 서산시청 5만 군민을 모은 문세광규탄궐기대회, 향토민방위대정신교육강사와 새마을학교강사활동, 서산시청앞 정화사업 등 효계 선생의 활동을 눈여겨 본 故정주영 회장의 권유로 13,14대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점, 정치판의 현실을 깨닫고 귀향하여 다시 생업과 봉사활동, 서예무료강습을 시작한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해미읍성의 인지도가 높아진 것도 서산문화재추진위원장 시절 서산시 해미읍성축제장 기획으로 지역축제와 문화축제를 결합한 그의 애향정신 덕분이었다. 

효계 선생의 이타적 정신은 54년 전 서산JC를 창립하며 당대에 드물었던 불우이웃 동물병원 무료진료 시작, 이웃 겨울생필품과 식량, 장학금지원 활동에 힘써온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고매한 길을 걸어 온 효계 선생의 운필도, 굵기를 잘 조절하며 이어지는 특징으로 인해 마치 효계 선생의 삶의 궤적을 꼭 닮았다. 획에서의 절주감은 가늘면서도 곡면의 입체감이 깃든 필심으로 기세를 보이며, 서체는 꼬리로 향하는 선이 고우면서도 거둠과 강도마다 장단의 변화와 먹의 힘이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서산문화원과 태안도서관, 운산주민자치센터, 태안향교명륜서실, 서산중앙서실을 비롯해 지역 곳곳에 남아 있는 효계 선생의 운필들은, 앞으로 그 어떤 편액 현판보다도 효계 선생의 이 고결한 묵향 같은 삶을 입증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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