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를 영원으로 기록하는 시간, 그 생생함에 멈추어 바라본 세상
찰나를 영원으로 기록하는 시간, 그 생생함에 멈추어 바라본 세상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1.07.15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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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여명도, 디바의 열정도, 호흡을 함께 한 순간 나의 일부가 된다”
포토그래퍼 김건우 작가
포토그래퍼 김건우 작가

사진이라는 예술은 촬영과 인화 중심이었다가 이제는 디지털 미디어 아트와의 재창조와 접점이 생긴 지금도, 프레임 안에 들어간 찰나의 순간포착이 생명이며 전제가 되는 분야다. 이번에 소개할 아티스트 역시 이 찰나의 순간을 예술로 만드는 작가이다. 사진 작가등록 만 4년 차, 그리고 작품 활동 7년 차, 포토그래퍼 김건우 작가의 프레임에는 필름카메라부터 DSLR카메라까지 시대별로 유행한 카메라 바디를 다뤄 온 30여 년 내공이 숨겨져 있다. 취미로 시작해 구도와 테크닉을 거의 독학으로 이수하고, 공연사진과 풍경 중심의 다양한 주제로 세상을 바라본 그의 뷰파인더는 지금까지 개인전 9회, 그룹전과 국제교류전 50여 회로 기록된다. 낮에는 체육교사로 일하고, 밤과 주말, 방학에는 포토그래퍼가 되어 세상 곳곳의 흔적을 기록하는 김 작가, 그의 기억에 남는 순간들과 흑백 작업의 비중을 높인 이유, 그가 바라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들을 직접 들어보았다. 

자연의 선물, 명과 암의 색감만으로 구분된 사물과 풍경 본연의 모습

포토그래퍼 김건우 작가는 한국미협, 대구미협 미디어파트에 소속된 작가이다. 전업 작가가 많은 포토그래퍼 분야에서 그는 남들과는 다른 출사와 활동시간으로 인해 본업을 하지 않는 시간에 주로 카메라를 들며, 자연물과 계단이라는 소재에 남다른 시각을 할애한다. 대구미술협회 제1전시장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은 흑백과 세피아 톤의 계단, 드넓은 초원을 가로지르는 나무, 밀레의 <만종>을 연상케 하는 어스름한 공기와 완전히 암전된 나무의 실루엣으로 채워져 있었다. 작품설명은 감상자의 몫이라 하며 생략하는 김 작가지만, 그가 이뤄낸 공간은 무심히 지나치기도 하는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시각으로 가득하다. 

대구남산고의 현직 교사이기에 이른 새벽 혹은 야간풍경을 많이 찍는다는 김 작가는 원래 메조소프라노인 누님의 공연사진을 찍다가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 아티스트 팬덤에서 의외로 사진고수들이 많이 배출되듯, 그 역시 지역의 명물 김광석거리를 거닐며, 혹은 오페라, 뮤지컬, 연극 무대의 현장감을 담으면서 부쩍 성장했다고 한다. “좋은 사진만큼 좋은 풍경, 공연과 전시장은 뛰어난 스승”이라고 말하는 김 작가는, 인물사진은 컬러, 풍경과 테마가 있는 사진은 무채색 톤을 선호한다. 그 이유는 흑백이 컬러보다 사진의 심도가 깊어질 뿐 아니라, 오직 명암의 존재만으로 사물을 나타낼 때 진정성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연의 고유성과, 사물 그대로의 편안함에서도 밸런스를 찾는다. “이른 출사에서 안개로 시야가 흐려져 차를 세우고 나갔을 때, 세상의 미명(未明)이 서서히 일출로 밝아오는 순간을 담았다. 그런데 느낌이 좋아 다시 갔을 때 그 순간은 두 번 다시 담을 수 없었다”는 일화처럼, 찰나의 기회를 하늘의 선물처럼 여기며 일상에서 촉을 세우는 그의 모습이 일종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라 할 만하다.

가장 컬러풀한 열정과 고전적인 조화로움을 흑백 톤으로 담고 싶다

자연현상 앞에서 객체를 자처하는 김 작가가 공연인물사진에서 추구하는 것은 이와 반대로 아티스트의 폭발적인 감정적 동화와 격정적 액팅이다. 캐논 5DsR 바디에, 렌즈는 24-105mm F/4L, 70-200mm F/2.8L, 광각 16-35mm F/2.8L 3종 유저인 그는 디지털카메라로 넘어온 후에도, 오랜 습관대로 사진은 우연성과 아날로그의 몫이라 생각하며 포토샵을 따로 쓰지 않는다. 프리미엄 L렌즈는 색수차와 왜곡을 줄여주기에 이러한 그의 취향에 맞는 장비라고 한다. 또한 김 작가는 무언가 마음에 와 닿는 순간마다 프레임 안에 포착해 셔터를 누르면, 다른 작가들처럼 프로젝트로 움직이거나 전문 스튜디오에서 팀을 짜서 작업할 때와는 다른 소재들을 얻게 된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사진출력 방식으로, 광택을 자제하는 캔버스천에 고가의 아사천을 뒤집어 인쇄하면 흑백의 중후함이 살아나는 것이다. 이는 자신에게 적합한 인쇄소와 장비를 매칭하고자 그가 1년에 걸쳐 노력해 얻어 낸 성과라고 한다. 한편, 독학으로도 남다른 구도감각을 지녔다는 평을 듣는 그에게, 요즘의 고민은 초상권이 적용되는 인물사진과 저작권이 발동되는 공연사진을 쉽사리 전시장에 올리지 못하는 것보다 더한 복병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지난해 대구시설공단 도심공원 신년기획전에 소개한 빛바래고 절제된 고택과 숲의 조화는 그가 2년 전부터 다듬어 온 서원 테마의 연장선이었다. 직업상 이동에 한계가 있는 그에게 홈그라운드 대구경북이 서원의 성지라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대안이었지만, 아쉽게도 코로나 19의 여파로 출입이 제한되어 이 테마는 잠시 쉼표를 찍었다. 

더욱이 <여정(삶)>에서처럼 빽빽한 도심의 삶을 홍콩의 맨션 벽면으로 은유했던 해외 사진출사도 당분간 엄두를 못 낼 상황이다. 이런 시기에 김 작가는 작가이자 관람자로서 자신의 전시는 물론, 다른 아티스트들의 활동에 참여하고 유튜브 ‘Geon Woo의 전시장투어’를 운영하며 그만의 갈증을 달래고 충전을 하는 중이다. 지금, 그의 마음속에는 디바들이 부르는 카르멘의 아리아인 <아바네라(Habanera)>의 도시이자 2016년 혼다 전시장에서 열린 SUV 콜라보전에 참여했을 만큼 차를 좋아하는 그에게 감흥을 준, 색다른 카튜닝과 풍부한 색감을 지닌 클래식카의 성지 쿠바가 있다고 한다. “서원 사진은 조만간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열띤 학생들의 움직임과 무대 사진들, 가장 바라는 정열의 도시 쿠바-라 아바나를 직접 방문해서 흑백의 색감으로 포착해 전시장에 올리고 싶다”는 포토그래퍼 김 작가의 눈빛에 아직 매너리즘이란 단어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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