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보다 하루하루 일상에 꽂혀, 작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연결한 그림
목표보다 하루하루 일상에 꽂혀, 작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연결한 그림
  • 임승민 기자
  • 승인 2020.12.28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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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인간군상을 매혹적으로 바라본 어느 화가의 성실한 일상에 관한 보고서”
강미자 화가
강미자 화가

유명 작가주의 영화평론가와 국내 최정상 예능개그맨은 성공 비결에 대해 한 마디로 정의한다. “목표 없이 성실하게 살아온 하루하루”라고. 미술레슨/학교/대회와는 일체 인연이 없었지만 사후에 캐나다의 국민화가로 유명해졌고 영화 <내 사랑>의 실존인물이기도 한 모드 루이스는, 몸이 불편하고 화구를 살 돈이 부족해 쓰레받기와 대문, 창틀을 캔버스 삼아 매일 반려고양이와 좋아하는 스위트피, 사과꽃, 마을 사람들의 일상 등을 그렸다. 이처럼 대단치 않은 일상일지라도 성실히 살아온다면 행복을 연결해주는 고리가 된다는 것, 작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연결해주는 동반자이자 열쇠가 바로 그림이라는 것을 알 만큼 현명한 예술가, 30년 취미인 미술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고 있는 강미자 화가를 만나 그의 그림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진주시에서 캔 진주(珍珠) 같은 화가, 강미자 화가의 아름다운 일상
한국미협 소속이면서도 지역교류전과 초대전, 아트쇼, 지방단체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데생 시작 30여 년 만에 진주갤러리아백화점에서 1회 개인전을 연 강미자 화가는 화가보다 가정주부로 활동한 시간이 길다고 한다. 집안 어르신들을 모시며 미술활동을 하고 화가들과 교류하며, 짬짬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까닭도 시간관리가 필수인 주부라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이다. 작업실에 매일 규칙적으로 출근할 여건이 되지 않아 집에서 그림을 그리던 강 화가에게, 현대인의 일상을 들여다 본 ‘군중 연작’을 시도할 수 있는 통찰력은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그의 <군중 1>은 다양하고 복잡한 현대를 각기 다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며 삶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현대인을 나타냈다. 여기서 인간군상들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기에, 무리를 지은 인간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준다. 또한 <군중 2>에서는 그런 인간관계에서도 간혹 예측불가한 상황이 벌어지며, 가면을 쓰거나 다른 인격을 보여주어야 하는 인간을 다소 익살스런 변형으로 나타내는 동시에 온전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화자의 비애도 나타낸다. 이러한 강 화가의 그림은 물론 작가에게도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많아, 강 화가는 자신의 그림에 얽힌 삶과 일상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전한다. 별 문제 없는 조용한 일상이 소중해 작은 휴식 시간마다 그림을 그리곤 했지만, 뭔가 목표의식을 만들어야 그림이 쌓일 것 같아 언제부터인가 지역교류전과 단체전에 모습을 드러내던 강 화가. 그는 화가란 시기별 작품으로 인생설계를 해야 한다는 통념을 깬다. 그는 그림 자체에만 충실하던 하루하루를 통해 역사를 만들어낸, 그야말로 ‘일상성’이 만들어낸 값진 진주 같은 화가이다.

직업은 주부, 제 2의 직업은 화가, 전공은 초등교육, 부전공은 미술
진주교육대학원의 1회 입학생이자 초등교육을 전공한 그의 부전공은 미술이다. 슥슥 그린 그림 중 하나가 열두 살 때 선생님의 눈에 들어, 자기도 모르게 출품돼 입상한 즐거운 경험 덕분에 그는 그림에 호기심이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중학교 미술부에 들려다 수년간 데생과 구성으로 다져진 친구들의 그림과 자신의 그림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공부에만 전념했다. 그러다가 은사인 교육사회학과 성용환 교수와의 만남으로 4B 데생을 시작해, 그때까지 자의로 미술학원도, 대회참가도, 미술전공도 한 적 없던 그의 인생은 그림이라는 돌파구를 만난다. 누군가의 수제자가 아니라는 점은 약점일수도 있지만 강점이 되기도 했다. 류(類)나 파(派)를 가늠할 수 없는 무림 속 천둥벌거숭이 같은 그의 화법은 참신하게 받아들어졌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파쇄하고 마음에 들면 선물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 왔던 강 화가를 놀라게 한 일은 그렇게 손을 떠난 그림이 많다고 하자 아까움을 감추지 못하며 “지금이라도 있는 그림을 전부 모아 전시하라”는 주변의 권유였다. 집이 곧 화실이기도 한 ‘집순이 화가’인 그가 진주갤러리아백화점 1회 개인전을 연 이래, 기적은 계속됐다. 개인전 제안이 또다시 들어왔으며, 누구나 다 그리기에 이제는 꽃 그림을 중지하려 하자, ‘작가 냄새’가 있는 강 화가만의 꽃 그림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만류가 쏟아진 것이다. 그 덕에 비록 코로나19로 2020년에는 전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지만, 강 화가에게는 “매년 개인전을 1회씩 개최할 것, 그러기 위해 그림을 매년 10점씩은 그릴 것”이라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기쁘게 지킬 이유가 생겼다. 

꾸준한 삶, 꾸준히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인간들의 삶으로 만든 그림
강 화가는 여전히 꽃과 풍경을 사랑하지만, 2년 전부터는 화폭에 사람의 흔적, 인간군상을 채우게 되었다고 한다. 마음 가는대로 스케치와 밑작업, 색을 정하면 뭔가 드러나는 구체적인 형상은 언제나 사람의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 덕분인지 강 화가의 작품에는 늘 해석하는 관객의 자유가 보장된다. 선 하나도 의미를 부여하면 살아나듯, 보이는 인간의 삶을 아끼는 강 화가의 시선에 따라 인간군상들은 서로의 삶에 개입해 감정표현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주변과 자신을 분리시키는 작가주의나, 문명과의 탈출을 선언하는 괴벽(怪癖)은 조석으로 어르신들에게 상을 차려 올리는 주부이기도 한 그의 숙명은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모든 창작행위는 소중하지만, 일상을 유지하며 가족, 타인과 대면하는 것을 사랑하는 그에게는 인간관계 속에서 무언가 배우는 일들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그림 하나에 몰두하겠다는 꿈이 있으며, ‘강미자 스타일’을 만들겠다는 작은 소망 정도는 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규명할 자기 스타일을 연구하고자, 지난 2년 간 단체전 제의만큼은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고 한다. ‘멍석’을 깔아주면 도무지 목소리가 안 나온다는 소박한 여인, 하지만 그의 일상이 쌓여 ‘화가 강미자’를 만들어 주었다. 교육을 전공했으나 그림을 평생 배운다는 입장의 그에게 이보다 아름다운 타이틀이 또 있을까. 이렇듯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하루하루로 작은 일상을 연결해 365일을 알차게 채우는 강 화가. 성실함과 꾸준함이 미덕이 된 시대일수록, 그의 붓이 가진 힘을 응원해 본다. 미술전공자가 아니지만 76세에 붓을 잡아, 80대 들어 취미수집가 루이스 칼도어와 큐레이터 오토 칼리어의 눈에 띄어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진출한 안나-메리 모지스를 보라. 무릇 그림은 사람이 알아보고, 일상은 역사가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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