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적 이미지보다 회화의 눈으로 지금 이 순간 거리 풍경을 기억하다
디자인적 이미지보다 회화의 눈으로 지금 이 순간 거리 풍경을 기억하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0.09.24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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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회화는 작가만의 열정이 담긴 조형 언어로서 작은 풍경화에서조차 사람이 공존한다”
양종석 작가
양종석 작가

요즘 지자체마다 수십 년 전 지역사진 공모가 유행이다. 이를 본 사람들은 똑같은 거리에서도 사람들의 차림새와 간판이 미묘하게 달라진 것을 신기해한다. 고미술상과 작가들의 고즈넉한 주점과 다방으로 가득하던 인사동이 조금 더 바쁘고 화려한 거리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 본 양종석 작가는, 10여년 전부터 훗날을 위해 지금 이 순간으로 기억될 거리와 풍경을 그리고 있다. 전통적인 수채화에서 수많은 풍경화의 공식을 깨고, 사람들의 걸음과 웃음소리로 가득한 거리풍경이라는 현대 미술을 추구하는 작가, 그는 오직 자신만이 나타낼 수 있는 지금의 풍경을 펜과 붓으로 관찰하고 기록해, 오는 10월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회화 조형언어의 변화는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장소로부터

한 작가가 광화문, 인사동과 삼청동, 남산타워와 서울역, 한강변에 앉아 있다. 서강대 대학원 신방과, 홍대 미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 졸업,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과 경인미술대전 심사위원장 등 다양한 미전의 심사위원을 거치고, 이브갤러리 관장을 15년 간 역임했으며 미술학원장 경력까지 있는 그는 교단과 예술모임 대신 거리를 택한 양종석 작가다. 높은 명성을 누림에도 아직 자신의 구상과 추상드로잉은 완성되지 않았다며 ‘10여년 차 수채화 학생’이라 자신을 소개하는 작가는 그가 있는 거리의 명물이 된 지 오래다. 흔히 풍경화는 진경산수에서 풍경수채화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거나 작은 뒷모습만 묘사하는 것이 정설이었는데, 이는 풍경과 인간의 공존을 화폭에 올리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가 처음 거리로 나온 10여 년 전만 해도, 제 2의 부동산처럼 상업화된 갤러리미술 분위기를 깨고 디자인과 구분되는 순수미술의 현재를 그려야겠다는 결심을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작가는 본래 주특기였던 추상화도 퓨전요리처럼 레시피의 기본기가 완성되어야 바리에이션을 할 수 있는 분야라고 한다. 또 추상화도 같은 것을 찍어내서 트레이드마크화하면 어느 순간 답보상태가 되기 때문에, 그는 창작자의 아이디어와 재료라는 싸움에서 펜으로 밑그림을 그린 뒤 수채로 채색하는 방법을 택했다. 유화와 앙포르멜 서정추상화, 다양한 추상표현주의도 추구했으나 수채화구를 잡은 작가가 2012년부터 발표한 수채풍경화들은 관객을 사로잡는 요소가 많다. 

작가는 장식이 아닌 순수미술, 디자인이 아닌 순수회화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을 담는 작업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유령도시’가 아닌 인간이 살아가는 현장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정밀한 건축설계도를 그리는 데 쓰는 독일제 펜으로 풍경화의 금기였던 간판 글씨를 쓰고, 사람의 이목구비와 머릿결까지 나타낸다. 그리고 작은 그림을 이어 붙여 마치 파노라마 촬영이나 사람 시야 같은 원경도 구사한다. 인사동 거리 사진을 찍어가는 작가는 많아도, 작가처럼 그때그때 사람들과의 흔적을 그리고자 자리를 펴고 대낮에 앉았다 가는 작가는 드물기 때문이다. 여기서 작가는 석고데생부터 철저히 다져 온 고전미술의 기술을 다양하게 활용했으며, 전봇대의 전깃줄, 직장인들의 발걸음과 신호를 기다리는 4차선 도로의 승용차들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작가의 눈으로 묘사해 냈다. 

이렇게 낮 동안 머릿속 필름에 스케치로 저장해 그림으로 인화한다는 작가는, 사람을 둘러싼 사물과 건물의 스토리에도 관심이 많기에 풍경에서 뭔가를 없애거나 과장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색연필과 콩테, 연필, 펜, 물감으로 따뜻하게 그린 작가의 풍경화는 누군가의 잘 꾸민 대저택보다는 구립미술관과 전시장에서 사랑을 받는다. 한편, 작품들을 ‘일기’라고 표현하는 작가는, 재구성(데포르마시옹) 추상을 한 단계 넘어선 새로운 구상, 현재를 기억하는 사실적인 그림들을 감성과 실존의 가슴으로 묘사하고 재구성하는 추상화도 고려하고 있다. 이러한 참신함에 반한 ‘거리작가 양종석’의 팬들은 올 3월 초 코로나사태로 취소된 초대전이 아쉬워, 거리로 나간 그를 다시 전시장으로 불러냈다. 오는 10월 28일, 1백 평 규모의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특별관에서 열릴 그의 개인전에서는 시간과 장소를 리얼하게 기록한 풍경그림들의 화려한 이야깃거리로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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