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 파스텔톤으로 캔버스 위에 흘러내리는 세월의 단상
형광 파스텔톤으로 캔버스 위에 흘러내리는 세월의 단상
  • 오상헌 기자
  • 승인 2020.07.17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술은 내 삶의 전부, 나를 표현하는 그림이 없으면 세상에는 나도 없다”
김혜규 화가
김혜규 화가

서양화를 아우르는 현대한국화, 그리고 한지와 캔버스, 수채와 아크릴의 파격적 소재 결합에서 구상과 비구상을 넘나든 김혜규 화가의 작품이 요즘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 그는 뉴욕에 머무를 때 1920년대 이후 모더니즘으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아 한국미술에서 현대적 요소를 이상적으로 접목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김 화가는 지난 6월, 전통 있는 숙명미대 청파회의 33회 동문전에 지난해부터 시도해온 새로운 기법이 들어간 <공간과 흐르는 시간>을 선보였다. 나이가 들수록 미술 작업에만 전념할 수 있기에 온전히 자신만을 표현하는 데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 한결 밝고 행복해진 목소리를 들려 준 김혜규 화가의 근황을 소개한다.

현대 한국화의 새로운 길, 거침없이 요철과 세월의 흐름도 헤쳐가다
1991년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한지에 워터컬러를 입힌 수채화와 요철한지를 이용한 콜라보 작품을 선보인 김혜규 화가는 현대 한국화의 톨게이트에 진입할 때마다 새로운 작가로서의 마인드를 대가로 지불한다고 한다. 그 개척정신에 대한 보답으로 아크릴과 워터컬러, 먹으로 요철지에 표현한 평면부조에 가까운 추상화 기법을 차례차례 삶의 운행기록마다 남긴 김 화가는 이제 10년마다 한 번씩 주행속도가 빨라진다는 인간의 나이 먹는 속도까지 작품의 소재로 삼게 된다. 자연물과 각종 생명체로부터 소재를 찾았으며, 좋아하는 오브제인 물고기의 형태를 심상과 형상에 대한 인상과 변형요소로 나타내 더욱 독창적으로 재구성한 김 화가는 이제 추상화와 서양화의 더욱 자유로운 속도무제한 공간에서 붓의 시동을 건다. 겹겹이 입힌 바탕작업 위의 두터운 요철감으로 실물이 더 아름답고 오묘하던 김 화가의 작품들은 1993년 미국의 ‘아트 스튜던트 리그오브 뉴욕’에서 공부할 때 화가 조지아 오키프처럼 사물을 모방이 아닌 확대와 재창조로 매우 다양하게 해석한 개성적 작가들을 접하면서 더욱 확실한 정체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예술이라 불리는 것은 복제가 아닌 창작이라는 점, 작가는 사회성과 시대성을 나타내는 유형도 있지만 무엇을 대표하고 연합해 종속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 김 화가의 주체성을 만들어 주었다. 이후 김 화가는 구상과 비구상의 중간계에 있었으며, 이제부터는 비구상으로 내면세계에서 작가 자신이 느끼는 바를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고 확신을 담아 말하고 있다. 또한 전시회 그룹으로 한국미협과 청파회, 수채화작가회, 창조회에 속해 있으면서도 서로 소재와 재료, 성향이 다른 이들 속에서 변화할 수 있었다는 것도, 김 화가가 어딘가에 정체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힘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간과 공간의 급격한 변화, 그 흐름에 귀를 기울여 붓을 든 작가
최근 김 화가는 지난해부터의 새로운 시도를 청파회 동문전을 위한 그림에도 담았다. 청파회는 숙명여대 미대 내에 가장 오래된 단체로, 1회부터 6회까지 김혜규 화가가 회장을 연임했고 동문전은 올해 33회를 맞이했다. 김 화가에 따르면 평면작업이면 동서양의 화풍과 재료를 가리지 않고 뭐든 제출할 수 있어 마음이 가는 동문전이라고 한다. 
청파회에서는 아크릴과 워터컬러로 눈 오는 풍경, 나무로 우거진 정경 같은 자연환경 소재의 작품도 시도했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물감과 표현수단을 써 왔기에, 관객들이 그림을 그릴 때 작가의 생각과 자신의 감상이 일치하지 않음도 개의치 않는다는 김 화가는 예술에서 ‘왜?’라 묻지 않고 각자 마음껏 받아들이는 것도, 정치경제처럼 딱 떨어지는 분야와의 차이점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번 <공간과 흐르는 시간>은 이 시대의 시간과 공간의 빠른 변화에서 느낀 심상으로 색과 채색방법에 변화를 준 추상화이다. 변화는 색의 번짐만으로는 부족해, 캔버스 위에 묽은 아크릴을 기울여 흘러내리는 기법으로 채색하고, 조금 진한 형광 파스텔색을 그래피티 기법처럼 뿌려 원형을 나타내 세상을 보는 작가의 관심을 상징으로 드러내고 있다. 김 화가는 앞으로 이 기법으로 개인전을 준비할 것이며, 급작스럽게 들이닥친 비대면시대의 혼란도 집과 작업실만 오가는 작가들에게는 일상의 연장에 불과한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언급한다. 한편, 김 화가는 6월 24-29일부터 인사아트센터 본전시장 1층에서 개최된 청파회 33회 동문전에서, 동료들과 함께 좋은 작품들을 선보였다고 전했다. 
동문전에는 김 화가의 <공간과 흐르는 시간>과 고 박소영 화가의 <자연. 이미지>, 박희수 화가의 <목자>, 김용남 화가의 <접시꽃 핀 호수>, 단영옥 화가 <돌로미테 시우시>, 유정인 화가의 <아침햇살아래>, 양화정 화가의 <자연-생명의 빛>, 김유경 화가의 <가을>, 심현순 화가의 <선의변주(동과정)>, 권용자 화가의 <Time Brushing>, 선우복영 화가의 <감사>, 안화실 화가의 <Bottle I>, 김진숙 화가의 <갑마장 가는 길>, 한귀원 화가의 <세월3>, 이영수 화가의 <Natural Image>, 김근정 화가의 <Story of Ten_반석>, 김효진 화가의 <화양연화(花樣年華)>등 17인의 30점이 함께 전시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