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빛깔 낮은 채도로 우리의 산군 호랑이의 포복과 부활 그리다
흑백 빛깔 낮은 채도로 우리의 산군 호랑이의 포복과 부활 그리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21.05.1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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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깨어나 빛나는 안광처럼, 한반도 범의 에너지 넘치는 포효”
포산 김태형 화가
포산 김태형 화가

대한민국현대미술전 대상과 최고상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연이어 석권한 ‘호랑이 작가’ 포산 김태형 화가는 한반도 호랑이 초상화 전문으로 불리며, 호랑이의 기백, 분위기와 생동감을 선명하고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화가다. 모든 호랑이 아종 중에서도 가장 크고 강한 북방러시아 혈통인 이들은, 여느 시베리아호랑이들처럼 포획과 개량 끝에 각국 정상의 선물이나 동물원 인기품종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김 화가는 동물원답사와 오랜 관찰을 통해 낮이면 우리 안에서 어슬렁거리던 이들에게도 밤이 되면 과거 산군으로 활약하던 안광의 기백이 남아 있으며, 영하의 겨울이면 은신과 매복을 거듭하며 포효하는 기운을 지녔음을 알아냈다. 무자비한 서식지파괴 속에서도 살아남은 산군의 후예들에게, 김 화가는 장막을 뚫고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을 조명 삼아 그들의 빛나는 눈과 생생한 털빛에 흑백 빛깔로 경배를 보낸다.

가장 우리다운 정서로 선명도 높여 그린 대한민국 호랑이의 초상

목탄과 아크릴 혼합재료로 한국 호랑이의 생생한 진면목을 나타낸 포산 김태형 화가는, 내년 흑호해 임인년을 앞둔 올해도 호랑이 그림이 제철이라고 한다. 유년기부터 호랑이를 좋아해 동물원을 즐겨 찾았다는 김 화가는, 미술교육과 인물화를 병행하는 중에도 꾸준히 호랑이를 잘 표현하는 기법 연구에 몰두해 왔다. 그리고 백에서 흑에 이르는 과감한 명도를 발전시켜, 포복하는 호랑이의 영역만큼 확장해 가고 있다. 김 화가에 따르면 고양잇과 동물 중에서도 유일하게 눈빛으로 인간을 압도한다는 호랑이 중에서도, 백두산의 능선을 넘는 우리의 한국호랑이는 표범 몸집의 동남아계열이나, DNA 동일아종이지만 보호종으로 개량된 중국, 러시아 호랑이들과는 다른 개념의 위엄을 갖췄다. 노호하는 공명의 목청과 얼어붙게 만드는 눈빛, 어둠을 가로지르는 아우라가 그가 보는 호랑이만의 위엄이다. 

그래서 물리적 빛, 소리, 파동으로 구분되는 에너지를 호랑이의 외관에 나타내려면, 재료의 특성과 기법을 많이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고 한다. 또 공기를 진동시키는 호랑이의 에너지는 실제로 대면해야만 느낄 수 있기에, 김 화가는 흐린 날 창틈으로 들어오는 빛의 채도처럼 대비되고 어두운 배경에서도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흑과 백의 단색작업을 표현수단으로 정했다. 그리고 우리 땅의 호랑이는 그림과 문학, 역사서마다 특유의 위엄과 기운의 상징으로 기록되어 왔기에, 그는 이처럼 우리다운 정서를 지닌 한국호랑이의 생태와 이미지 자체를 표현하고자 했다. 굳이 황호와 백호를 구분하지 않는 것은, 화려한 채도보다 미약한 영역의 빛에서 흑백으로 묘사된 털 결이야말로, 오직 밤에만 볼 수 있는 범만의 형형함을 강력하게 이미지화하는데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그려 존재감 알리고, 웅장한 규모로 용맹함을 부활시키다

김 화가의 호랑이들은 마치 눈앞에서 털갈이를 하는 듯, 한 올 한 올 부드러운 호피무늬와 털 결을 지녔다. 그는 호랑이에 대해 단순한 피사체가 아닌 영감을 주는 존재로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동물원이 셔터를 내린 밤에 호랑이의 규모와 진면목을 관찰하고자 관계자들로부터 비공식 관람협조를 구하며, 언젠가는 동족인 시베리아호랑이도 러시아에서 관찰하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또한 김 화가는 “이들의 생태를 자주 관찰하다 보니, 품종개량 후 열성인자가 나타나 용맹한 기운을 잃고 태어난 동물원의 호랑이들이 꽤 많다”고 하며, 이들에게도 애정을 갖고서 사시 대신 맑은 눈빛으로 고쳐 그려내기도 했다. 그 외에도 더 극사실적인 호랑이의 분위기와 기법을 내기 위해, 변색과 황변반응이 적으며 기존 재료와 혼합이 잘 되는 채색 재료를 연구하느라 첫 개인전이 늦어졌다는 그는 앞으로도 소박하지만 끈기 있는 도전으로 내면의 호랑이 기운을 온전히 나타내고자 한다. 

호랑이의 호환을 두려워하면서도 경이를 느끼고, 효심 깊은 호랑이 동화를 접하며 자란 한국인의 정서답게, 그의 웅장하면서도 정감 가는 호랑이 그림은 에너지를 원하는 젊은 사업가와 개업의사, 인테리어에 관심 많은 여성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 2018년 가로수길 갤러리오에서의 개인전 <기억... 존재... 그리고 부활>은 이처럼 호랑이가 한반도를 맹수의 기운으로 물들이던 시절의 추억을 나타냈으며, 희미해진 공존 기억은 혼합 매체로 넓은 캔버스에 와서야 활력적으로 오버랩 된다. 독창성을 인정받아 문화체육부장관상의 영예를 안은 <The Sound of Silence#3> 또한, 호랑이의 안광을 배제하고 상대적으로 덜 호랑이다운 요소로 호랑이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의 침묵하듯 다문 호랑이의 입, 얼굴 측면 부각은 심플하면서도 전 세계를 통틀어 한국에만 있다는 ‘생각하는 호랑이’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우리 민족의 수호신이자 오랜 친구, 호랑이의 진면목을 그리고자 때로는 한계에 도전하기도 한 그는, 요즘 내년 검은 호랑이의 해를 위한 대작들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호랑이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려면 도구와 소재처럼 규모도 중요하다고 설명하는데, 대체로 100호-300호 규모를 갖춰야만 누구나 마음속에 갖고 있을 ‘호랑이’라는 존재감과 용맹함을 시각적으로 납득하기 때문이다. 마치 호랑이를 관찰하고자 특별한 마음가짐으로 맨손 등반을 감수했다는 옛날 호랑이 화가들처럼, 21세기 현대에도 이처럼 진정한 호랑이의 초상화를 위해서는 호랑이를 부활시키겠다는 큰 배포가 필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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