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사무소 호시절 권유정 대표는 건물을 짓는 일보다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의 삶을 먼저 바라본다. 가족의 형태와 나이, 장애 여부, 생활 방식이 달라도 누구나 자신이 머무는 공간에서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권 대표의 건축 철학이다.
“제가 생각하는 호시절의 건축에는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그 공간을 소유했든 임대했든, 머무는 동안만큼은 ‘나는 여기에서 안전하고 건강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건물이 아닌 사람의 삶을 설계하다
권 대표가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자신이 설계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만족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가족의 단독주택을 설계한 뒤 “아이들이 이 집에서 정말 잘 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건축사로서 큰 성취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에게 건축은 단순히 공간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사람의 생활과 감정, 관계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건축은 인간의 삶을 다루는 일입니다. 사람을 관찰하고 심리나 인문학적인 부분도 함께 공부해야 합니다.”
그는 젊은 건축인들에게도 기술과 표현 능력만큼 사람을 이해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더욱 세심하고 배려가 담긴 공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 건축사의 길을 잇다, 후배 건축학도와 함께하는 멘토링
대표가 실무를 시작하던 시절만 해도 여성 건축사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성 건축사들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있으며, 그는 이러한 변화 뒤에는 먼저 길을 닦아온 선배 여성 건축사들의 노력이 있었다고 말한다.
권 대표 역시 그 길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현재 대한건축사협회 서울특별시건축사회 여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여성 건축학도들을 위한 멘토링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시건축사회 여성위원회는 여성 건축사의 활동을 지원하고 세미나와 심포지엄 등 여성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건축을 전공하는 여학생들의 진로와 취업을 지원하는 멘토링 사업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특히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WISET과 연계한 ‘취업탐색 멘토링’을 통해 현직 여성 건축사와 건축학·건축공학 전공 여대학(원)생을 연결하고 있다.
서울시건축사회 여성위원회 소속 여성 건축사들로 구성된 멘토팀은 ‘아키어벤져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건축사사무소를 직접 운영하고 현장을 경험해온 건축사들이 멘토가 되어 학생들의 진로 고민을 듣고, 취업과 실무에 필요한 정보를 나눈다.
멘토링은 단순한 직업 소개에 그치지 않는다. 건축사사무소의 실제 업무는 어떤지, 졸업 후 어떤 경로로 실무를 쌓아야 하는지, 건축사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현실적인 이야기를 공유한다. 건축사사무소와 관련 기관 탐방, 실무 경험 공유, 진로 상담 등도 함께 이루어진다.
“학생들은 실무자들에게 직접 고민을 이야기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저희 건축사들도 학생들을 보면서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하고 돌아보게 됩니다. 서로가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대표는 건축을 공부하는 여학생들이 진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한다. 먼저 현장을 지나온 여성 건축사와 연결되어 경험과 정보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길을 설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학이나 건축공학을 공부하며 이러한 멘토링에 참여하고 싶은 여대학(원)생이라면 WISET의 온라인 플랫폼 ‘W브릿지’에서 매년 진행되는 ‘취업탐색 멘토링’ 모집공고를 확인하면 된다. 모집 기간에 서울시건축사회 여성위원회 ‘아키어벤져스팀’을 선택해 신청서를 제출하면 심사를 거쳐 멘티로 참여할 수 있다. 모집 시기와 자격요건은 해마다 달라질 수 있어 WISET 및 W브릿지의 해당 연도 공고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이러한 활동은 단순히 한두 명의 학생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선배 여성 건축사가 자신의 경험을 후배에게 전하고, 그 후배가 다시 현장에서 경력을 이어가며 새로운 여성 건축사로 성장하는 선순환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개발보다 조화와 인간다움을 생각하는 건축
권 대표는 앞으로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이 더욱 커져야 한다고 본다. 도시와 부동산 개발 과정에서 경제성과 효율만 강조되다 보면 도시의 정체성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소외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발도 중요하지만 지켜야 할 것은 지키면서 가야 합니다. 도시와의 조화, 그리고 한국이라는 공간이 가진 정체성도 중요합니다.”
그가 만들어가고 싶은 호시절의 건축 역시 이러한 생각과 맞닿아 있다. 노인이 혼자 살든, 장애가 있는 사람이 살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살아가든 누구도 공간에서 소외되지 않는 건축이다.
건축사사무소 호시절이 추구하는 좋은 건축은 화려함보다 사람에게 집중한다. 자신이 머무는 공간에서 위로받고 안전함을 느끼며 저마다의 좋은 시절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고 자신이 먼저 걸어온 길의 경험을 다음 세대와 나누는 것. 그것이 호시절이 만들어가고 있는 건축의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