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이제 하나의 산업을 넘어 현대 기술사회를 움직이는 기반 기술이 됐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물론 자동차, 데이터센터, 로봇, 의료기기, 우주항공까지 거의 모든 첨단 산업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가천대학교 반도체설계학과 오현석 교수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대학의 역할 역시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반도체 이론을 이해하는 인재가 아니라, 실제 산업현장에서 직접 Chip을 설계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엔지니어를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전자공학과 회로, 시스템에 대한 관심에서 반도체 분야에 발을 들였다. 이후 산업 현장에서 제품과 시스템을 직접 개발하며 반도체 기술이 제품의 성능과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특히 하나의 반도체가 완성되기까지 RTL 설계와 기능검증, 합성, DFT, Physical Design, STA, GDSII 등 복잡한 설계 과정이 이어진다는 점은 그의 교육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첫줄 맨 왼쪽 오현석 교수)
그는 “학생들이 이론을 배우는 데서 끝나지 않고 실제로 반도체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산업에서 사용하는 설계 방법론과 EDA 도구를 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학생들이 RTL에서 GDS까지 전체 설계 Flow를 경험하도록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 교수는 자신의 연구와 교육 여정을 “반도체를 아는 인재를 넘어 실제로 반도체를 설계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AI 시대, 반도체 설계자는 시스템 전체를 이해해야
오현석 교수는 현재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큰 변화로 AI와 응용 분야에 최적화된 반도체의 부상을 꼽는다. 과거에는 CPU 성능 향상이 산업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GPU와 NPU, AI Accelerator 등 특정 목적에 최적화된 반도체의 중요성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생성형 AI 확산으로 연산량과 데이터 이동량이 급증하면서 반도체의 성능 역시 연산속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오 교수는 AI Semiconductor, HBM, Advanced Packaging, System-Level Optimization을 앞으로 주목해야 할 핵심 영역으로 본다. 연산성능과 전력효율, 메모리 대역폭, 패키징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바라보고 최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래의 반도체 설계자는 회로만 알아서는 부족하다. AI 알고리즘과 컴퓨터 아키텍처, 소프트웨어, 시스템 구조까지 폭넓게 이해하고 이를 하드웨어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오 교수는 “앞으로의 반도체 경쟁은 단순한 미세공정 경쟁이 아니라 누가 AI 시대에 가장 적합한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는가의 경쟁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러한 변화는 그의 교육 방식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학생들은 Digital Logic과 Electronic Circuits 등 기초과정을 거쳐 Digital·Analog IC Design, Computer Architecture, SoC, RISC-V를 배우고, 이후 AI Semiconductor와 Verification, DFT, Physical Design, HBM, AI 기반 EDA 등 실무 영역으로 확장해간다.
오 교수는 교육에서 Theory 40%, Practice 60%의 방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학생이 직접 RTL 코드를 작성하고 Simulation과 Synthesis를 수행하며 Timing Violation과 Verification Error를 해결해 보는 과정이야말로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는 “정답을 알고 있는 학생보다 문제를 스스로 찾아 해결할 수 있는 학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산업과 연결된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엔지니어를 만든다
오현석 교수는 반도체 분야에서 산학협력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본다. 기술 변화의 속도가 빠른 만큼 대학과 기업이 긴밀하게 연결돼야 학생들이 실제 산업현장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지향하는 산학협력은 단순한 특강이나 취업 설명회가 아니다. 기업이 실제 현장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대학 프로젝트로 제안하고, 교수와 학생이 함께 해결하는 방식이다. 이를 교육과 프로젝트, 인턴십, 취업으로 이어지는 구조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다.
특히 가천대학교가 판교와 가까워 팹리스와 시스템반도체 관련 기업들과 연결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는다. 오 교수는 앞으로 팹리스와 EDA, IP, Foundry, Packaging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과 교육과 연구의 접점을 더욱 넓혀갈 계획이다.
(맨 왼쪽 오현석교수)
그가 미래 반도체 인재에게 가장 강조하는 역량은 특정 Tool 사용 능력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힘이다. 설계 기술과 EDA Tool은 시간이 지나며 바뀌지만 문제를 분석하고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는 깊이를 갖추면서 AI, Software, Architecture, Circuit, Device, Packaging 등 주변 영역을 폭넓게 이해하는 ‘T자형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술 외적으로는 Curiosity, Persistence, Collaboration, 즉 호기심과 끈기, 협업 능력을 중요하게 본다. 수백 명, 때로는 수천 명이 함께 하나의 반도체를 만드는 산업의 특성상 결국 좋은 엔지니어는 다른 사람과 함께 답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기술을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오현석 교수는 앞으로 대학의 반도체 교육이 AI와 반도체 교육의 결합, 전체 설계 Flow에 대한 이해, Project-Based Learning 중심으로 더욱 변화해야 한다고 본다.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시험을 치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 결과를 발표하며 서로 Review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그리고 있는 교육의 방향은 Classroom → Project → Industry → Global이다. 대학 강의실에서 시작된 배움이 프로젝트와 산업현장을 거쳐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국내 반도체 경쟁력을 위해서도 대학과 기업, 정부의 역할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학은 실제 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야 하고, 기업은 현장의 문제와 기회를 대학에 제공해야 한다. 정부는 EDA Tool과 Server, IP, PDK, MPW·Tape-out 등 대학이 개별적으로 구축하기 어려운 설계 인프라를 장기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오 교수가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말은 “기술을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AI가 빠르게 발전하고 많은 업무가 자동화되더라도 새로운 시스템과 반도체 구조를 만들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정의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는 가천대학교 반도체설계학과 학생들이 단순히 좋은 회사에 취업하는 것을 넘어 “10년 후 대한민국의 새로운 반도체를 설계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The future needs AI. AI needs semiconductors. And the semiconductor industry needs you.”
오현석 교수는 학생들이 미래를 예측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미래를 직접 설계하는 엔지니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오늘도 교육과 산업현장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