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선수에서 체육교육자와 스포츠행정가로, 다시 대한민국 생활체육의 개척자를 거쳐 세계 생활체육운동의 중심에 서기까지. 관해(觀海) 장주호 총재의 70년에 가까운 체육 인생은 한국 현대체육사의 한 갈래와 맞닿아 있다. 그가 평생 강조해 온 것은 메달도, 기록도 아니었다. 스포츠가 인간의 몸을 단련하는 행위를 넘어 규칙과 존중, 공정과 책임을 익히게 하는 ‘사회적 교육’이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미국에서 접한 ‘Sport for All’의 철학을 1960년대 한국 YMCA 현장에 옮겨 심고, 어머니 수영교실과 아기 수영교실을 열어 생활체육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시대에 시민을 체육의 주체로 세웠다. 이후 IOC 생활체육위원으로 20년간 활동하고 세계생활체육연맹(TAFISA) 총재를 세 차례 역임하며 한국에서 시작한 실천을 세계적인 운동으로 확장했다. 이제 한국생활체육총연맹(SAKA)을 이끄는 그는 다시 출발점에 서 있다.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의 건강한 선순환, 전문 지도자 양성, 국제적 연대, 그리고 스포츠를 통한 성숙한 시민사회. ‘생활체육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주호 총재가 여전히 현역으로 남아 있는 이유다.
폐허 위 YMCA에서 시작된 새로운 체육, ‘선수가 아닌 국민’을 바라보다
장주호 총재의 출발점은 유도였다. 대한유도대학에서 수학하고 유도선수로 활동한 그는 육군 유도사범을 거쳐 1960년 호주유도연맹 초청으로 한국인 최초의 호주 유도사범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의 체육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꾼 것은 ‘선수’로서의 경험보다는 미국 YMCA와 스프링필드대학에서 만난 새로운 체육철학이었다.
196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간 장 총재는 YMCA 체육지도자 교육과 스프링필드대학에서 체육의 또 다른 얼굴과 마주했다. 그곳에서 체육은 뛰어난 선수를 선별해 기록을 겨루게 하는 제도가 아니었다. 어린아이에서 노인까지 누구나 스포츠에 참여하고, 그 폭넓은 저변에서 뛰어난 재능이 자연스럽게 엘리트선수로 성장하는 구조였다. 그는 이를 올림픽운동과 생활체육운동이 서로 떨어진 두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하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현장 실습에서 목격한 ‘기저귀 수영교실(Diaper Swimming Class)’은 특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두세 살 아이들을 어머니가 안고 물에 들어가 자연스럽게 물과 친숙해지도록 하는 모습이었다. 귀국한 장 총재는 이를 한국 YMCA에 접목했다. 어머니 수영교실과 아기 수영교실을 만들고 유치원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수영과 체조를 경험하게 했다. 장 총재는 훗날 어린 시절 YMCA에서 생활체육으로 수영을 시작한 선수들이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미국에서 목격했던 시스템의 가능성을 다시 확인했다고 회고한다.
당시는 한국전쟁의 상흔조차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시기였다. 종로 YMCA 역시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미국 YMCA 국제위원회의 지원과 모금으로 체육관이 다시 세워졌다. 국내에 변변한 실내 체육시설이 많지 않았던 시절, YMCA 체육관은 수영장을 포함한 손꼽히는 근대식 체육시설이었다.
여기에서 장 총재는 하나의 선택을 했다. 체육계 일각에서는 YMCA의 시설을 엘리트선수 육성의 거점으로 활용하기를 원했지만 그는 일반 시민에게 문을 열었다. 무료 수영강습을 시작하고 여성과 어린이, 장애가 있는 시민들이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그렇게 YMCA는 단순한 체육시설을 넘어 한국 생활체육운동의 초기 실험장이자 ‘시민을 위한 스포츠’의 산실이 됐다.
그가 훗날 ‘생활체육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 이유는 거대한 조직을 먼저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체육의 주어를 ‘선수’에서 ‘국민’으로 바꾸려 했기 때문이다.
아기 수영교실에서 IOC까지…한국의 생활체육을 세계의 언어로 확장하다
장주호 총재에게 생활체육은 단순한 건강관리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는 체육을 시민교육의 가장 현실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로 바라본다. 스포츠에는 룰이 있고, 상대가 있으며, 규칙을 어기면 제재를 받고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야 한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될수록 사회의 법과 질서, 책임과 예의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생활체육을 국민건강 정책에만 가두지 않고 ‘선진 시민을 만드는 교육’으로 확장해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 그의 활동 무대 역시 넓어졌다. 경희대학교 체육과 교수와 학장을 지내고 대한유도회 제24대 회장을 맡았으며, 한국체육과학연구원장과 대한올림픽위원회 사무총장·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조직위원회 사무차장으로 경기운영과 대회 조직에 관여했다. 선수와 지도자, 학자와 행정가를 모두 경험한 이력은 훗날 그가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을 어느 한쪽의 논리로만 바라보지 않는 토대가 됐다.
특히 IOC와의 인연은 장 총재의 생활체육 철학을 세계무대로 옮겨놓았다. 그는 IOC 생활체육위원으로 약 20년 동안 활동했다. 통상적인 위촉 관례를 넘어 장기간 위원으로 활동하며 올림픽정신을 일반 시민에게 확산시키는 국제 생활체육운동에 참여했다. 장 총재 스스로도 이 시기를 세계 체육계에서 자신이 ‘생활체육 인사’로 자리 잡게 된 결정적인 과정으로 평가한다.
이 경험은 자연스럽게 세계생활체육연맹(TAFISA)으로 이어졌다. 장 총재는 한국의 여러 체육계 인사들이 TAFISA의 지도력을 확보하도록 가교 역할을 했고, 이후 직접 세계생활체육연맹을 이끌었다. 2013년 네덜란드 엔스헤데에서 개최된 TAFISA 세계총회에서 총재로 선출된 뒤 연임을 거듭하며 세계 생활체육의 주요 의제를 주도했다.
2017년 서울에서 열린 제25차 TAFISA 세계총회에서는 ‘TAFISA Mission 2030’을 채택했다. 생활체육을 단지 운동 참여율을 높이는 정책으로 보지 않고 건강, 교육, 사회통합, 환경, 평등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발전시키려는 선언이었다. 이후 세계걷기대회와 Active City 프로젝트, 대륙별 생활체육연맹과 전통스포츠대회 등으로 실천의 범위를 넓혔다.
그가 일생 동안 이야기해 온 ‘Sport for All’은 그래서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다. 엘리트체육의 정점에 올림픽이 있다면, 그 토양에는 수많은 평범한 시민의 스포츠가 있어야 한다는 철학이다. 200명이 농구를 즐기는 곳에서 뛰어난 한 명의 선수가 나오고, 그 선수가 전문적인 훈련을 거쳐 국가대표가 되는 구조. 장 총재가 생각하는 선진 체육 시스템은 바로 그 순서에서 출발한다.
“엘리트와 생활체육은 뿌리부터 다시 봐야 한다”…한국 체육 시스템을 향한 노장의 고언
2026년의 장주호 총재는 세계생활체육연맹 총재 자리에서는 물러났지만, 체육계의 현안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오히려 더욱 선명해졌다. 현재 세계생활체육연맹 명예총재이자 한국생활체육총연맹(SAKA)을 이끌고 있는 그는 한국 체육이 다시 ‘왜 체육을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장 총재가 가장 강하게 지적하는 부분은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을 바라보는 제도적 구조다. 과거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 조직이 분리돼 운영되다가 통합된 이후 각각의 역할과 목적이 충분히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는 엘리트스포츠와 국민 생활체육, 학교체육이 각각의 정체성과 전문성을 갖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분리’는 서로를 단절시키자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역할을 명확하게 한 뒤 다시 연결하자는 주장에 가깝다. 생활체육의 넓은 저변에서 운동을 좋아하고 재능을 보이는 아이가 나오고, 학교체육을 거쳐 전문선수로 성장하며, 선수생활을 마친 이후에도 다시 평생스포츠의 세계로 돌아오는 순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철학은 그가 60여 년 전 YMCA에서 아기 수영교실을 만들던 순간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어린아이에게 운동을 시키는 목적이 처음부터 메달을 따게 하는 데 있어서는 안 된다. 스포츠 자체를 좋아하게 만들고, 다양한 종목을 경험하게 하며, 그 과정에서 재능을 발견한 아이에게 전문적인 성장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 동시에 대부분의 시민에게 스포츠는 평생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지켜주는 생활문화로 남아야 한다.
한국생활체육총연맹(SAKA)이 최근 지도자 양성에 무게를 두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장 총재는 생활체육이 일부 동호인의 여가활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국민운동처럼 사회 전체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이를 현장에서 이끌 전문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SAKA는 국제연대와 생활체육 포럼, 지도자 육성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생활체육의 사회적 저변을 다시 넓혀가고 있다.
그에게 지도자는 단순히 운동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스포츠의 규칙과 철학, 페어플레이와 공동체 정신까지 전달하는 사람이다. 결국 생활체육의 수준은 시설의 숫자가 아니라 시민과 가장 가까운 현장에서 체육의 가치를 전하는 지도자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미다.
다시 세계를 향하는 ‘생활체육의 아버지’…스포츠로 더 나은 사회를 꿈꾸다
장주호 총재의 시선은 이제 다시 국제무대를 향한다. 그가 최근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 가운데 하나는 세계무도대회다. 유도 9단이자 대한유도회장을 지낸 무도인으로서 자신의 경험과 TAFISA를 이끌며 구축한 국제 네트워크를 결합해 세계 각국의 무도 종목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을 한국에서 만드는 구상이다.
세계무도대회는 단순히 누가 더 강한지를 가리는 경기대회와는 성격이 다르다. 유도와 태권도를 비롯해 각 국가와 지역에서 발전해 온 다양한 무도는 기술의 체계인 동시에 오랜 역사와 철학을 품은 문화유산이다. 장 총재는 세계무도대회를 생활체육과 전통스포츠, 문화가 만나는 새로운 국제교류의 장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도 여러 무도단체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대회 추진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그가 여전히 세계대회와 국제포럼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명예 때문이 아니다. 평생 추구해 온 생각을 다음 세대가 이어갈 수 있는 ‘구조’로 남기기 위해서다.
장 총재는 한국전쟁 이후 제대로 된 체육관조차 찾기 어려웠던 시대에 YMCA 수영장의 문을 시민에게 열었다. 어린아이와 어머니에게 수영을 가르쳤고,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물속에서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후 둔촌동에 한국사회체육센터를 세워 시민 생활체육의 공간을 확장했고, IOC와 TAFISA를 오가며 한국에서 실험한 ‘모두를 위한 체육’을 세계의 언어로 바꾸었다. 그는 둔촌동에 보다 전문적인 생활체육 시설을 세우기 위해 별도 법인을 만들고 해외 체육시설을 참고한 설계를 도입할 만큼 시민체육 공간 구축에도 공을 들였다.
시간이 흘러 그의 직함은 선수에서 교수로, 행정가에서 세계연맹 총재로, 다시 명예총재와 한국생활체육총연맹 총재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긴 궤적을 관통하는 하나의 문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스포츠는 모든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 장주호 총재가 말하는 생활체육은 건강수명을 늘리기 위한 운동 프로그램만을 뜻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스포츠를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고, 경기의 룰을 통해 사회의 규칙을 배우게 하며, 경쟁 속에서도 상대에 대한 존중을 익히게 하는 일이다. 그렇게 성장한 시민들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고, 그 가운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국가대표가 되어 다시 사회에 영감을 주는 것. 그 선순환이 그가 평생 그려 온 ‘Sport for All’의 완성형이다.
80대 후반에 이른 지금도 장주호 총재는 자신이 시작했던 생활체육운동에서 한 발도 물러나 있지 않다. 오히려 긴 시간을 지나왔기에 한국 체육이 어디에서 시작했고, 어디에서 길을 잃었으며, 다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더욱 집요하게 이야기한다.
또한, 장주호 총재는 한국 체육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국내 체육행정의 조직 체계 역시 국제 스포츠계의 원칙과 기준에 맞춰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요청으로 국내 체육행정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자문한 경험이 있다는 그는, 특히 국가올림픽위원회(NOC)의 정체성과 역할을 보다 명확하게 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 총재는 오랜 기간 올림픽 조직과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활동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올림픽위원회의 의사결정 구조는 올림픽 종목단체를 중심으로 그 고유한 역할과 전문성이 분명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며 “생활체육을 포함한 다양한 체육 영역의 확대도 중요하지만, 각각의 조직이 맡아야 할 기능과 권한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국제 스포츠 질서에 부합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국제 기준과 동떨어진 조직 운영이 지속될 경우 국제 스포츠계에서 한국 체육의 자율성과 대표성을 둘러싼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그의 우려다.
동시에 그는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을 대립적인 영역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모든 사람이 스포츠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는 유네스코의 정신과 올림픽 운동이 지향해온 ‘스포츠 포 올(Sport for All)’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생활체육 역시 독자적인 전문성과 체계를 갖춰 발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생활체육을 한국에 뿌리내린 개척자에서 세계 생활체육운동을 이끈 국제 스포츠행정가로, 그리고 다시 한국 체육의 다음 세대를 고민하는 원로로. 그의 삶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좋은 스포츠란 무엇인가. 장주호 총재가 지난 수십 년간 내놓은 답은 분명하다. 소수의 챔피언을 만드는 스포츠를 넘어, 모든 사람이 스포츠를 통해 더 건강하고 더 공정하며 더 성숙한 삶을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생활체육의 아버지’가 여전히 다음 시대를 향해 뛰고 있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