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공간은 눈에 보이는 디자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곳을 찾는 사람과 운영하는 사람, 브랜드가 전하고자 하는 가치와 실제 사용 방식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될 때 비로소 공간은 자신만의 이유를 갖는다. 에테르 스튜디오는 병원과 상업공간, 호스피탈리티를 중심으로 기획과 디자인, 설계, 시공을 아우르는 실내건축 디자인 스튜디오다. 일정한 스타일을 반복하기보다 클라이언트와 충분히 대화하며 공간의 목적과 취향, 브랜드의 성격을 읽어내고 이를 각각의 프로젝트에 맞는 디자인으로 풀어낸다. 강두엽 대표를 만나 사람과 브랜드, 공간을 잇는 에테르 스튜디오의 디자인 철학과 앞으로의 방향을 들어봤다.
사람과 브랜드를 읽고 공간으로 풀어내다
‘에테르(AETHER)’라는 이름에는 서로 다른 요소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람과 공간, 소재와 브랜드는 저마다 다른 성격을 지니지만 하나의 장소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 한다. 모든 프로젝트에 같은 디자인을 반복하기보다 공간의 목적과 클라이언트의 취향, 브랜드의 성격을 먼저 이해하는 것도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만큼 에테르 스튜디오는 첫 단계부터 대화에 많은 시간을 들인다. 첫 미팅은 통상 2~3시간 동안 진행되며 원하는 스타일이나 색상뿐 아니라 개인의 취향과 브랜드의 방향, 주요 고객층, 운영 방식, 구성원의 수, 선호하거나 피하고 싶은 소재까지 폭넓게 살핀다. 정해진 질문보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표현과 반응을 살피고, 클라이언트 스스로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던 취향까지 설계의 단서로 끌어낸다.
이렇게 파악한 내용은 평면과 레퍼런스, 3D 디자인을 거치며 구체화된다. 강 대표는 주요 설계 과정을 직접 검토하면서 첫 미팅에서 확인한 의도가 설계 전반에 일관되게 반영되는지 살핀다. 소방과 냉난방, 보안, 간판, 조경, 가구와 스타일링 등 여러 분야도 함께 조율해 각각의 요소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도록 관리한다.
강두엽 대표는 “클라이언트가 말씀해주신 요구사항을 그대로 옮기는 것보다 대화 속에 흩어져 있는 여러 정보를 하나의 공간으로 정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표현 하나에도 원하는 방향이 담겨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처음 나눈 이야기와 설계 결과가 어긋나지 않도록 계속 확인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공간의 성격에 맞는 자연스러움을 만들다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세밀하게 읽어내는 과정은 같지만, 실제 공간을 풀어가는 방식은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상업공간에서는 브랜드와 사업의 성격, 주요 고객층과 서비스, 체류시간과 직원의 운영 동선을 함께 살피며 시각적인 인상을 넘어 사람들이 왜 이곳을 찾아야 하는지, 공간이 브랜드와 비즈니스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까지 고민한다.
의료공간에서는 의료진의 동선과 수납, 장비, 방음과 프라이버시 같은 기본 조건을 우선하면서 환자가 느낄 수 있는 긴장과 불편도 살핀다. 여기에 상업공간에서 쌓아온 브랜딩 경험을 접목해 의료시설이 가진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난 디자인을 제안한다.
호스피탈리티는 머무는 시간이 긴 만큼 주거공간에 가까운 편안함과 세밀한 디테일이 요구된다. 동시에 멀리서도 찾아올 만한 이유와 경험을 만들어야 하기에 건축과 조경, 시설 관리와 운영 방식까지 폭넓게 살핀다. 분야마다 고려할 요소는 다르지만, 서로 다른 프로젝트에서 축적한 경험은 새로운 공간을 해석하는 자산으로 이어진다.
그 중심에 놓인 공통된 기준이 바로 ‘자연스러움’이다. 강 대표가 말하는 자연스러움은 특정 소재나 스타일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용자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공간의 비례와 색감, 질감과 빛이 조화를 이루며 사람이 그 안에 편안하게 적응할 수 있는 상태에 가깝다.
대표 프로젝트인 하이엔드 스테이 ‘모우네’와 ‘미르치과’는 이 같은 생각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모우네는 주변 자연환경을 설계의 중요한 조건으로 삼아 건축과 인테리어가 자연보다 앞서 드러나지 않도록 계획했다. 기존 대지의 큰 나무를 공간의 일부로 남기고 블랙과 다크 그레이, 우드와 식재, 통창과 중정을 활용해 실내와 자연이 이어지도록 했다.
반면 미르치과는 ‘사려 깊은 환대’를 중심으로 환자의 심리와 이용 경험에 초점을 맞췄다. 우드와 베이지, 버터 옐로우로 편안함을 더하고 코발트 블루를 포인트로 사용해 신뢰와 전문성을 표현했다. 접수와 대기공간부터 복도, 파우더룸, 좌석 주변 콘센트까지 실제 이용 과정에서 필요한 세부적인 편의까지 살폈다. 서로 다른 두 프로젝트지만 사람의 움직임과 감정을 먼저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설계 원칙을 공유한다.
강두엽 대표는 “제가 생각하는 에테르의 중요한 기준은 자연스러움입니다. 사람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고 마음이 편안해야 하며, 색과 질감, 빛까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유행을 이해하되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시간이 지나도 그 공간에 자연스럽게 남아 있을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디자인 너머, 오래 남는 가치를 설계하다
사람의 경험을 세밀하게 살피는 이러한 기준은 시공 과정에서도 이어진다. 에테르 스튜디오는 설계 단계부터 예산과 시공 가능성, 공정을 함께 검토해 디자인과 실제 구현 사이의 간극을 줄인다. 예산이 정해져 있다면 이용자의 손과 눈이 많이 닿는 곳과 브랜드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부분, 완공 후 변경하기 어려운 요소에 우선적으로 비용을 배분하고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영역에서는 전체 분위기와 기능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합리적인 방법을 찾는다.
원하는 디자인이 명확한 경우에도 고가의 자재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다른 소재나 공법이 있다면 함께 제안하고, 착공 전에는 평면과 3D 디자인, 주요 소재와 설비 조건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공사 과정의 변수를 줄이고 예산의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
강 대표가 특히 중요하게 보는 것은 완공 후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구조와 기초 작업이다. 시선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마감재지만 공간의 내구성과 장기적인 품질은 그 안쪽의 작업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에테르 스튜디오는 비용만을 기준으로 공정을 조정하기보다 처음 정한 시공 원칙을 지키는 것을 우선하며, 일정 규모 이상의 프로젝트에는 3년의 무상 A/S 기간을 적용하고 보증기간 이후에도 필요한 보수에 대응하고 있다.
앞으로는 하이엔드 스테이를 넘어 호텔과 리조트 등 여러 기능이 결합된 호스피탈리티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패션·리빙 브랜드와의 협업도 확대하고자 한다. 장기적으로는 건축과 인테리어를 하나의 흐름으로 설계하고 브랜드 기획과 공간 운영 컨설팅까지 연결할 수 있는 조직을 구상하고 있다.
설계 과정에 AI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디자이너의 감각과 판단을 대신하기보다 기획과 자료 조사, 디자인 표현과 클라이언트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을 높이는 도구로 활용해 공간의 본질과 세부적인 완성도를 고민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겠다는 구상이다.
강두엽 대표는 “완성된 공간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마감재지만 그 안쪽의 구조와 기초가 공간을 얼마나 오래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결정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같은 기준으로 완성하는 것이 저희를 믿고 맡겨주신 분들의 선택에 책임지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지금의 설계 기준과 소통 방식을 지키며 오래 사용해도 편안하고 가치가 남는 공간을 만들어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