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는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방향을 잃는다. 무엇부터 결정해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자신의 선택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특히 단독주택을 고민하는 과정에서는 공사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질문들이 쌓인다. 지점토건축사사무소 이정욱 건축사는 그 질문이 정리되지 않은 단계에서부터 건축주와 마주 앉는다. 그의 설계는 도면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집이라는 결과보다, 그 안에서 이어질 생활을 먼저 묻는 데서 출발한다.
설계는 도면보다 대화에서 시작된다
지점토건축사사무소의 설계 과정은 비교적 느리게 출발한다. 첫 미팅에서 곧바로 평면이나 형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보다, 이정욱 건축사는 건축주가 어떤 생활을 해왔는지, 어떤 불편을 반복적으로 느껴왔는지를 묻는 데 시간을 쓴다. 지금의 집에서 가장 답답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은 어디인지 같은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는 이러한 대화를 통해 막연하게 흩어져 있던 집에 대한 생각이 하나의 말로 정리되는 순간을 만들어간다.
이정욱 건축사는 이 시간을 ‘집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으로 정리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은 분명하지만, 그 집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는 막연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건축주일수록 그 경향은 더 뚜렷하다. 이미 정해진 구조 안에서 살아왔기에, 공간을 스스로 설정해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 지점을 무리하게 채우려 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통해 생활의 단서를 하나씩 꺼내고, 건축주 스스로 자신의 기준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이정욱 건축사는 “설계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도면이 아니라, 그동안 어떤 생활을 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이 충분히 정리되어야 이후의 설계도 흔들리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상담은 짧지 않다. 한 번의 미팅이 몇 시간씩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이 시간을 줄일 생각이 없다. 충분한 이야기가 오가지 않으면 설계는 결국 추측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가정이 반복될수록, 그 선택은 완공 이후의 불편으로 되돌아온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설계 과정에서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건축주가 말로 정리하지 못했던 생활의 기준을 질문을 통해 하나씩 꺼내고, 그 답을 토대로 공간의 성격을 차분히 정리해 나간다. 지점토건축사사무소의 설계가 도면보다 대화에서 시작된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소규모 주택에서 더 선명해지는 기준
지점토건축사사무소는 주거, 그중에서도 소규모 단독주택을 중심으로 작업해왔다. 이정욱 건축사는 규모가 작을수록 설계자의 판단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선택 하나하나가 곧바로 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공간을 무작정 넓히기보다 어떤 장면을 남길지, 기능을 더하기보다 어떤 여백을 유지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잦고, 그 선택의 결과는 곧바로 일상 속에서 체감된다.
그는 단독주택이야말로 생활의 밀도가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라고 본다. 아파트처럼 이미 짜인 구조 안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생활 방식에 따라 공간의 크기와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규모 주택일수록 설계는 더욱 신중해진다. 구조와 마감을 논하기에 앞서, 어떤 삶을 담을 것인지부터 분명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정욱 건축사는 “소규모 주택은 작은 선택 하나가 곧바로 생활의 편안함으로 이어지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설계 과정에서 그만큼 더 세심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집을 특별하게 보이게 만드는 데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지나도 불편이 쌓이지 않는 구조를 고민한다.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더라도, 살수록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공간을 목표로 한다. 그는 종종 “완공 사진보다 중요한 건, 몇 달 뒤 생활이 어떠냐는 질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집의 기준은 언제나 생활의 리듬을 방해하지 않는 집이다.
현장과 생활 사이에서 찾는 균형
지점토건축사사무소의 작업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양양, 예산, 세종 등 서로 다른 환경의 대지를 경험하며 설계를 이어왔고, 이정욱 건축사는 그 과정에서 같은 조건의 땅은 하나도 없다는 점을 반복해서 확인해왔다. 진입 방식과 조망, 햇빛의 방향과 주변 풍경까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설계는 늘 현장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현장을 직접 걸으며 대지의 높낮이와 주변 시선을 확인하는 과정 역시 설계의 출발점으로 중요하게 여긴다.
다만 현장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기준이 있다. 생활을 우선에 두는 판단이다. 대지가 가진 조건을 해석하는 목적 역시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생활이 가능한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는 설계 과정에서 ‘무엇을 더할지’보다 ‘무엇을 남길지’를 더 자주 고민한다. 모든 기능을 빠짐없이 담기보다, 꼭 필요한 장면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구조를 정리하는 데 집중한다는 설명이다. 이정욱 건축사는 “대지의 조건은 모두 다르지만, 그 안에서 어떤 생활이 이어질지를 고민하는 기준만큼은 늘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은 다르더라도 판단의 출발점은 언제나 생활이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기준은 설계 전반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는 설계 초반부터 모든 답을 미리 정해두지 않는다. 몇 가지 가능성을 열어둔 채, 건축주가 충분히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남긴다. 이 과정에서 건축주는 단순한 의사결정자가 아니라, 자신의 생활을 함께 설계해가는 주체로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된다.
진천 단독주택 ‘여름방학’은 이러한 설계 방식이 잘 드러나는 사례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마당과 다락, 보호자가 자연스럽게 시선을 둘 수 있는 구조는 생활의 흐름을 먼저 상상한 결과다. 이정욱 건축사는 완공 이후에도 건축주와의 소통을 이어가며, 실제 생활에서 느끼는 점들을 듣고 이를 다음 설계에 반영한다. 그에게 설계는 도면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공간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과정까지 포함된 일이다.
앞으로도 그는 주거를 중심으로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다만 규모를 키우기보다, 한 집 한 집의 완성도를 지켜가는 방향에 가깝다. 도면을 먼저 그리기보다, 그 공간에서 어떤 생활이 이어질지를 충분히 묻는 일. 건축이 특별한 결과로 기억되기보다, 시간이 지나도 불편 없이 사용되는 환경으로 남기를 바라는 이유다. 지점토건축사사무소가 그리고 있는 건축의 방향은 언제나 그 지점에 머물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