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 건축으로 법과 제도, 도시 구조를 재해석하다
초고층 건축으로 법과 제도, 도시 구조를 재해석하다
  • 임승민 기자
  • 승인 2026.01.12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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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사무소 앙코르 김수자 대표
건축사사무소 앙코르 김수자 대표

건축사 30년…초고층 주거와 상업건축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건축사사무소

건축사사무소 앙코르는 부산의 건축을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이름이다. 상업지역 초고층 주상복합과 호텔, 대규모 도시 프로젝트를 꾸준히 수행해 온 앙코르는 단순히 ‘높은 건물’을 설계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법과 제도, 도시 구조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하고 설계해 왔다.
 
건축가의 길 30년, 초고층으로 축적된 실무의 힘
건축사사무소 앙코르는 2004년 설립된 법인 건축사사무소로 김수자 대표건축사는 1996년 20대 후반에 건축사 자격을 취득한 직후 개인 사무소를 개설하며 실무를 계속 이어왔다. 
“IMF 직후 사무소를 개설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죠. 일이 없으니까 빚이 쌓이고, 어느 순간 8천만 원이 되니까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하지만 그 시기를 버티게 한 것은 ‘일’이었다.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나면서 조금씩 회복했고, 실무를 할수록 건축은 점점 더 재미있는 일이 되었다고 말한다.
“학교 다닐 때는 건축이 이렇게 재미있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실무를 하면서,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재미있어지더라고요. 지금은 50대 후반인데, 이임주 부사장도 고등학교·대학교 동기고, 미국에서 20년 가까이 실무를 한 남건수 소장님도 같이 계시지만, 다들 여전히 건축이 재밌습니다.”
그렇게 어느덧 김 대표의 건축 경력은 약 30년에 이르며, ‘앙코르’라는 이름의 법인으로 활동한 지는 20여 년이 넘는다.
앙코르는 설립 초기부터 상업지역을 중심으로 한 초고층 공동주택과 주상복합, 호텔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주로 수행해 왔다. 2004년 준공한 부산 센텀파크를 계기로 초고층 주거 건축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으며, 이후 자연스럽게 고층·고밀도 건축 분야에 특화된 설계 경험을 축적해 왔다.
김 대표는 “특별히 방향을 정했다기보다 프로젝트가 쌓이면서 초고층과 상업지역 건축을 많이 맡게 됐다”며 “그 과정에서 도시 맥락과 밀도, 법과 공간을 다루는 설계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축적됐다”고 설명한다. 
앙코르가 초고층 건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개업 초기 우연히 찾아온 한 프로젝트 덕분이었다. 서울 사무소와의 컨소시엄으로 초고층 아파트 설계를 경험한 이후, 관련 프로젝트가 연이어 들어왔다.
“직장 다닐 때는 사실 20층 내외가 최대였어요. 그런데 오픈하고 나서 한 번 초고층을 해보니까, 그 경험이 다음 일을 부르더라고요. 한 번 해봤다는 게 그렇게 중요합니다.”
이후 앙코르는 상업지역 주상복합, 호텔, 복합개발 등 고밀·고층 프로젝트를 주력으로 현재까지도 도시 중심부의 고밀도 주거와 복합건축을 주요 작업 영역으로 삼으며, 초고층 건축에 대한 전문성을 이어가고 있다.

70층 초고층에서 제도까지…도시 구조를 현실에 맞게 재편하다
앙코르의 대표적인 성과로는 최근 해운대구청 인근에 인허가를 완료한 70층 규모 초고층 주거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다. 당초 이 프로젝트는 49층 3동 안이 검토됐으나, 공사비와 도시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고층·집약 배치로 방향을 전환했다. 클라이언트 역시 단기적인 분양 수익보다 해운대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조성을 원했고, 그 결과 70층 2동 계획이 확정됐다.
이 배치는 주변 환경 개선 효과도 가져왔다. 기존 3동 배치 시 인접 단지와 과도하게 밀착됐던 문제를 해소하고, 건물을 전면으로 정리하면서 일조와 개방감이 오히려 개선됐다. 일부 민원은 있었지만, 설계 의도와 도시적 효과에 대한 설명을 통해 이해를 얻었고, 현재는 착공을 준비 중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사전협상제도를 통한 대표적인 사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앙코르는 주변이 이미 주거지역으로 변화한 상황에서 준공업 용도로 남아 있던 부지를 사전협상제도를 통해 용도 변경했고, 토지 가치 상승분에 대해서는 기부채납 방식으로 시에 환원했다. 이는 특혜 논란을 근절하면서도 도시 구조를 현실에 맞게 재편한 사례로 평가된다.
김 대표는 “준공업시설로 존치될 자리가 아니었고, 제도를 통해 도시와 민간이 함께 이익을 나누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봤다”며 “분양 역시 어려운 시기임에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진행돼,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었던 만큼 보람도 컸다”고 설명한다.
앙코르는 이처럼 초고층 설계 역량뿐 아니라, 복잡한 인허가와 제도 해석을 통해 도시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주요 성과로 축적해 왔다.
김 대표는 주변에서 자신을 ‘인센티브의 여왕’이라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그의 목표는 용적률 확대가 아니라 높이의 자유를 통한 경관 개선이다. 실제로 상업지역 높이 규제 지침의 문제를 제기해 1년에 걸친 논의 끝에 제도 개선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법을 활용하는 건축…“초고층은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
김 대표는 건축에서 법을 “지켜야 할 최소 조건”으로 규정한다. 건축법은 반드시 준수해야 하지만, 그 안에 내재된 가능성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건축사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건축법에는 50년 전, 30년 전, 10년 전에 만들어진 규정들이 혼재해 있는데, 빠르게 변화한 도시와 사회를 따라가지 못하는 조항들도 많다”며 “검증 없이 관성적으로 적용되는 법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김 대표의 건축적 태도는 ‘초고층화’에 대한 인식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동일한 용적을 여러 동으로 쪼개는 방식보다, 규모 있는 건물을 적절히 집약해 배치하는 것이 도시와 환경에 더 합리적이라는 판단이다. 용도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주거용 건축물인 경우에는 “100평짜리 10층 건물 9동보다 300평 규모의 30층 건물 3동이 지상 공간을 더 넉넉하게 만들고, 마당과 외부 공간 활용, 주차 효율, 경관 측면에서도 좀 더 유리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초고층 건물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역시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김 대표는 실제 일조권 검토 사례를 언급하며 “49층 5동보다 70층 3동이 학교 일조, 통경축, 조망 측면에서 오히려 더 나은 결과가 나온 경우도 있었다”며 “문제는 높이가 아니라 배치와 질서”라고 강조한다. 집중된 피해를 줄이고 도시 전체로 영향을 분산시키는 설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행 건축법에 대한 아쉬움도 짚었다. 도로 사선 제한이었던 건축법 제60조는 미관 문제로 개정됐지만, 정북 방향 이격을 규정한 제61조는 여전히 일반주거지역에서 들쭉날쭉한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대표는 “대지 형상에 따라 삐쭉삐쭉한 건물들이 반복되는 현실은 도시 경관 측면에서 분명한 한계”라고 말한다.
김 대표의 건축 철학에서 핵심은 ‘법을 지키되, 최대한 활용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특히 건축법 제60조(건축물의 높이 제한)와 제61조(일조 등의 확보를 위한 건축물의 높이 제한)에 대한 문제의식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60조는 개정됐지만, 61조는 아직도 주거지역 경관을 망치는 주범이에요. 땅 모양대로 삐쭉삐쭉, 한 동 안에서도 10층, 40층이 섞여 있는 건물들이 양산됩니다.”
몇 년 전 부산시 디자인 정책 논의 과정에서 김 대표는 해법으로 건축법 제5조, 즉 ‘조화롭고 창의적인 건축에 대한 법 「적용의 완화」’ 조항의 적극적 활용을 제안했다. 특혜 시비를 우려해 활용되지 못했던 제도를 건축위원회를 통해 정상적으로 작동시키자는 취지였다. 이 제안은 부산시건축사협회 건축바로세움센터장으로 활동하며, 박형준 시장 체제의 ‘3대 디자인 혁신 방안’에 특별건축구역 도입 외에도 건축법 제5조 「적용의 완화」가 포함되도록 제안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소극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김 대표는 “제도는 이미 준비돼 있지만, 두려움과 관성이 변화를 막고 있다”며 “AI와 기술이 도시를 빠르게 바꾸는 시대에 건축 역시 더 과감한 속도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하나. 최근 김 대표는 재개발·재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문제를 발견했다. 김 대표는 주거지역에서도 「적용의 완화」와 높이의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용적률이 낮은 주거지역에서 동 수를 줄이고 높이를 올리면, 오히려 훨씬 쾌적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부산 전역이 재개발로 덮이고 있지만, 결과물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비슷비슷한 ‘바지저고리형’ 배치와 배면 경관의 방치라는 것이다.
 
“클라이언트의 성공을 제 일처럼 생각합니다”
앙코르는 클라이언트와의 소통을 단순한 요구 반영이 아닌, 프로젝트의 성공을 함께 책임지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대표는 “여성 건축사가 지금처럼 많지 않던 시절부터 일을 해왔다”며 “그럼에도 초고층, 대규모 프로젝트를 맡겨준 클라이언트들에게 항상 감사함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낀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클라이언트가 요청한 안이 있더라도, 더 나은 해법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제안하는 편이다. “해보지 않았던 방식이라도 도시와 프로젝트를 위해 더 좋은 길이라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가보자고 말씀드린다”며 “때로는 ‘간이 크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부분 성공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한진 CY 사전협상 사업은 부산에서 처음 시도된 사례였고, 생활숙박시설인 더 에이치 스위트 역시 제도 변화 이전에 새로운 유형을 선도한 프로젝트였다.
김 대표의 소통 방식은 설계를 넘어 제도 개선으로까지 확장된다. 상업지역임에도 과도하게 낮은 높이 제한으로 인해 건폐율만 높아지는 도시 계획에 문제의식을 느낀 그는, 부산시와의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높이 관련 지침 개선을 이끌어냈다. “용적률을 더 달라는 것이 아니라, 높이를 유연하게 조정해 경관과 환경을 개선하자는 취지였다”며 “1년 가까운 논의 끝에 실제 제도 개정으로 이어진 것은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회고한다.
최근에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 대표는 “부산 도심 대부분이 재개발·재건축 구역인데, 기존 방식은 배면 경관이나 도시 전체의 모습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정북 이격 규정으로 인해 들쭉날쭉한 스카이라인, 창 없는 배면, 단절된 외부 공간이 반복되는 현실을 문제로 보고 있다.
이에 김 대표는 재개발 사업에서도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높이와 배치를 과감하게 재구성한다. 실제로 해운대 일대 한 재개발 프로젝트에서는 기존 20여 개 동 계획을 70층 규모 3개 동으로 재편해, 마당 하나 없던 단지에 대규모 공원 같은 외부 공간을 계획하고 있다. “조합은 물론이고, 도시 환경 측면에서도 훨씬 나은 안이다”고 그는 말한다.
앙코르는 “재개발·재건축은 단순히 많이 짓는 사업이 아니라, 앞으로 도시의 얼굴을 결정하는 작업”이라며 “그래서 더 어렵게 고민하고, 더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클라이언트의 이익과 도시의 질을 동시에 높이기 위한 이러한 태도가, 앙코르가 프로젝트마다 반복적으로 선택하는 소통 방식이자 설계 전략이다.

“부산 건축, 이미 성장했고 더 앞서갈 준비가 돼 있다”
부산에서 오랜 시간 건축 활동을 이어온 김 대표는 지역 건축사사무소들의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 성숙해졌다고 말한다. 특히 대규모 재개발과 도시 재생 사업에서 부산의 건축사사무소들이 실력과 경험을 이미 입증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서울 대형 사무소’ 중심의 관행이 남아 있는 현실이 아쉽다고 지적한다.
김 대표는 “부산의 건축사들은 단순한 도면 제공자가 아니라 도시의 변화를 직접 설계하고 실행해 온 주체들”이라며, “지역의 경험과 실무 능력은 이미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한다.
김 대표는 지역 상생의 전제는 ‘보호’가 아니라 ‘실력의 정당한 평가’라고 말한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건축사들은 도시의 맥락, 환경, 주민의 생활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합니다. 이 점은 서울 사무소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우리만의 강점입니다. 그 강점이 공정하게 평가받아야 지역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김 대표는 앞으로 부산이 서울을 ‘따라가는 도시’가 아니라, 기준을 제시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부산은 이미 가능성을 증명했습니다. 이제는 지역의 전문성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고, 공정한 경쟁 구조가 마련된다면 충분히 앞서 나갈 수 있습니다.”
김 대표가 꿈꾸는 부산의 미래는 분명하다. 지역의 건축사들이 도시의 성장과 변화를 주도하고, 젊은 건축가들이 ‘굳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마련되는 도시.
“지금 부산에는 재능 있는 건축가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도시에서 정당하게 인정받고, 스스로 도시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부산은 더 이상 제2의 도시가 아니라, 새로운 건축 패러다임을 이끄는 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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